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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웨이킹 더 데드 (Waking the Dead) : 죽었으되 죽지 아니하였도다.

by R.H. 2009. 8. 18.

 

<주의 ! 결말까지 포함된 강력 스포일러>

 

영화는 1972~1974년 필딩과 사라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1982~1983년 필딩의 상원의원 출마라는 두 시점을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필딩(Fielding) : 현실과의 타협은 불가피하다.

 

1972년 베트남전이 한창인 때, 주인공 필딩은 해안 경비대원이다. 그가 해안 경비대에 있는 건 징집을 피하기 위해서다. 필딩은 베트남 전쟁이 부당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병역 거부로 감옥에 가고 싶지도 않고, 거리에 뛰쳐나가 피켓을 들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일종의 현실과의 타협. 하지만 그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

 

The thing about Harvard, for somebody from the working class, like, us, coming from that background is that a terrible sense of isolation, of aloneness there.

[우리 같은 노동자 계층 출신인 사람에게 하버드는 끔찍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곳이야.]

 

아버지가 노동조합원인 필딩. 부모가 그에게 필딩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에는 아들의 출세를 염원하는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는 성공을 위해 내달리고자 한다. 그는 서슴없이 자신의 꿈은 상원 의원이고,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출세에만 목을 멘, 성공에 굶주린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그는 정치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본질적인 대변혁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정치라는 주류 시스템 속에 편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신력 있는 인물이 되어야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정치를 소망하는 이유다.

 

사라 : Sometimes meaningless gestures are all we have... Ambition is the ice on the lake of emotion.

  [때로는 무모한 행동들이 우리가 가진 전부이기도 해요. 야망은 감정의 호수 위에 떠있는 얼음과 같은 거죠.]

 

사라 : 현실과의 타협은 굴복이자 패배이다.

 

사라는 시민 운동가다. 사교 파티에서, 필딩이 기득권층 앞에서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짓고 악수하면서 비위맞추는 것과 달리, 사라는 부패한 정치인 면전에다 욕설을 퍼붓는다. 그녀는 부패한 정부와 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필딩과 너무도 다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자주 논쟁을 벌인다.

 

사라와 필딩, 모두 목표점은 동일하다는 점이다. 더 나은 사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하지만 이 두사람이 그 목표점에 도달하는 방식은 너무도 달랐다.

 

결국 사라는 칠레의 독재에 항거하는 투사들을 미국으로 입국시키기 위해 떠난다. 그 곳이, 그 일이, 위험천만하다는 걸 알지만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떠난다. 필딩은 사랑하는 그녀를 붙잡지 못하고 그렇게 헤어지고 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버스 테러로 죽게 된다.

 

필딩 : 드디어 정치에 발을 들여놓다.

 

1982년. 필딩은 드디어 상원의원에 출마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그에게 사라의 환영이 보인다.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가 그의 주변을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필딩은 급기야 그녀가 살아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과연 그녀는 살아 있는 것일까?

 

마침내 선거에 승리한 필딩. 그가 의사당에 발을 들여 놓은 첫 날. 사라가 나타났다. 그녀와의 해후. 눈물. 대화. 포옹.. 하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없다.

 

목표를 향해 내달리다 보면, 처음 가졌던 순수한 동기를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달리는 게 너무 힘들다 보니, 왜 달리는지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사라가 죽은 지 10여 년의 시간이 흘러버린 시점에서, 필딩은 자신이 왜 정치를 하고 싶어했는지를 잊어버린 것이다. 사라의 환영은 아마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치워져 있던 그 순수한 동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라를 향해, 아니 자신을 향해 말한다. Keep Fighting.(계속 싸우라.) 그녀는 처음부터 그의 마음 속에 살아 있었고, 살아 있으며, 살아 있을 것이다.

   

There are times when death seems not the will of God but the venal, ugly act of man that makes us want to raise our heads to the heavens and shout. And these are the times. Shout loud enough to wake the dead.

[한 인간의 죽음이 신의 뜻이 아닌, 타락하고 추악한 인간의 행동에 의한 것일 때가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고개 들어 하늘을 향해 외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죽은 자가 일어 날 정도로 큰 소리로 외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