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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마이클 클레이튼 (2007) : We're summoned

by R.H. 2009. 8. 18.

 

<스포주의. 결말까지 모두 적혀 있음>

 

영화는 흥분한 미치광이같은 자의 격앙된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사무실을 가득 메운 변호사들과 화장실 구석에서 진땀 흘리는 한 여자. 같은 시각, 마이클 클레이튼은 도박을 하고 있다. 밤새 도박을 한 마이클은 뺑소니 사고를 낸 거물 고객의 억지 소리를 새벽 내내 들어준 뒤, 한적한 도로 위를 내달린다. 그리고 그는 멈춘다. 그는 왜 거기서 차를 멈추었을까. 왜 말들에게로 다가 갔을까. 그런데 이때 그의 차가 폭발한다. 이제 영화는 4일전으로 돌아가, 흩어진 이야기를 재배열하기 시작한다.

 

마이클은 전직 검사고, 현재 대형 로펌 변호사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하는 일은 거물 고객의 뒤치닥거리나 하며, 뺑소니 친 놈의 적반하장 억지소리를 참고 들어주는 것이다. 그는 자조적인 말투로 자신을 일컬어 Janitor (잡역부) 라고 한다. 지금 하는 일이 별로 내키지 않는지, 동생과 함께 부업으로 레스토랑을 시작 했지만. 일은 제대로 되지 않고, 손에 남은 것은 빚더미 뿐이다. 그리고 틈 날 때 하는 취미생활(?)은 도박이다.

 

그의 일상은 이렇게 구질구질하다. 전직 검사, 대형 로펌의 유능한 변호사. 남 보기에 그럴 듯한 번지르르한 삶을 사는 마이클. 그러나 손 댄 사업은 엉망이고, 망나니 같은 동생에, 가진 것은 빚 뿐이며, 취미는 도박인 마이클은 그냥 저냥 살아가는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인체에 치명적인 제초제를 판매한 유노스라는 거대 기업을 변호하는 그의 동료 아서가 법정 사전 심리실에서 옷을 모두 벗어제끼며 난동을 부린다. 그리고 마이클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다. 영화의 시작에서 어느 미치광이의 독백은 바로 구치실에서 아서가 마이클을 향해 하는 말이었다. 아서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쓰레기 같은 이들의 범죄를 막아주는 일이 자기 삶의 목표였던가. 살인자들의 입이 되어주고, 범죄자들의 손발이 되어 주는 대가로 수임료를 챙기고, 그 돈으로 창녀들과 뒹구는 것이 자기 삶의 목표였던가. 아서는 이 모든 일에 진저리가 나고, 본인이 그 동안 해 온 일들에 대해 수치심을 느꼈다. 그리고 불현듯 찾아 온 깨달음에 유노스의 내부 기밀을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유노스측의 법률팀장 케런은 아서를 청부살해 한다. 그리고 유노스는 6년간 끌어 온 이 소송을 피해자들과 합의하는 선에서 마무리 하기로 내부 결정을 내린다. 영화의 시작에서 한 무더기의 변호사들이 하던 일은 바로 이 사건의 합의안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유노스의 기밀 문서를 손에 쥐게 된 마이클. 그는 로펌장 마티를 찾아가 옳고 그름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지만, 마티가 건네준 8만 달러의 수표에 하던 말을 멈춘다. 3년 계약금 8만 달러라는 돈 앞에 진실이 담긴 붉은 표지의 문서는 그의 주머니에 처박히고 만다. 그는 이 돈으로 빚을 갚고, 또다시 도박을 한다. 그런데 마이클이 기밀 문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카렌은 마이클의 차를 폭파시킨다. 하지만 마이클은 카렌 앞에 살아서 나타나 진실을 들추어내고, 사건은 마무리 된다.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 하지만 당연한 일이라 해서 피곤치 않은 건 아니다.>

 

빌딩을 나선 마이클은 택시를 잡아탄다. 어디로 가냐는 기사의 물음에 50불어치만큼 그냥 돌자고 하는 마이클 클레이튼. 그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아서의 깨달음을 정신 나간 소리로 치부한 자신을 질책하는지도. 쓰레기들의 뒤치닥거리에 허비한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 지도... 여하튼 그는 지쳤다.

 

밤새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 운전사가 휴게소의 싸구려 자판기 커피로 피로를 녹이 듯,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담배 한 개피로 피로를 날리 듯, 그는 50불어치 드라이브로 지친 하루를 날리고 있다.

 

엘리트의 제 1 가치

 

영화는 유노스라는 글로벌 대기업의 비윤리와 관련된 소송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기업의 비윤리에는 그다지 초점이 맞춰있지 않다. 회사의 고위 간부로 등장하는 돈(Don) 이라는 인물을 제외하고는 기업을 대표하는 임원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등장하는 돈(Don) 도 별반 비중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유노스를 대표하는 인물은 카렌이라는 법무팀장인데, 그녀는 기업인이 아니라 회사의 법률고문이다. 즉, 그녀는 자본가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입이 되어주는 대변자라다. 다시 말해, 영화는 기업의 비윤리에 대해 열변을 토하지는 않는다.

  

기업의 제 1 가치는 "이윤 추구" 다. 나머지 가치들은 제 1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부수적 도구들에 불과하다. 자본가에게는 말이다. 어차피 그들은 자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열변을 토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엘리트의 제 1 가치에 대한 것이다. 진실, 사회 정의, 윤리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마이클이나, 아서, 케런같은 변호사들은 엘리트다. 그들이 추구해야 하는 제 1가치는 자본가의 가치와는 전혀 다르다. 엘리트가 추구해야 하는 제 1가치가 "이윤추구" 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영화에서 그들은 자본가의 이윤추구를 도와주고, 그들의 범죄를 변호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힘들게 공부하고, 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두꺼운 책에 파묻혀 젊음을 저당 잡힌 이유가 겨우 이것 때문이란 말인가? 이것이 삶의 목적이고, 의미란 말인가?

 

We're summoned

 

아서는 이 기밀 문서를 본 순간, 불현듯 깨달음을 얻고, 이것(진실) 을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버릴 지언정...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지언정...

  

마이클 역시 이 기밀 문서를 보고, 아서처럼 폭로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구차한 삶에 붙들려 진실을 주머니에 쑤셔 넣어 버린다. 그런데 그에게도 아서처럼 깨달음의 순간이 온다. 그가 어슴프레한 새벽에 한적한 도로를 질주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길 위에 있던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마이클은 고민하였기에, 길 위를 내달렸다. 그리고 고민하는 자에게 운명은 가야 할 길의 지표를 내보이는 법이다.

 

케런은 기밀 문서를 보고도, 이를 덮기에 급급한다. 아서를 죽이고, 마이클을 죽이려 했다. 그녀는 감당 못할 자신의 욕망(성공)을 채우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리고 만다. 그녀가 최악의 인간은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인간도 아니다. 그녀 역시 보통의 인간들처럼 나약하고, 서툴다. 인터뷰를 위해 원고를 보며 몇 번이고 연습하는 모습, 아서를 청부살인 시키면서도 "죽이라" 는 단어를 차마 입에서 꺼내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 마이클을 제거하기로 했으면서도 어쩔 줄 몰라 화장실에서 진땀을 흘리는 모습 등에서 서툰 초보자의 망설임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나약하고, 서툰 초보자인 그녀는 성공이라는 욕망을 향해 달렸다. 그 와중에 그녀는 발을 헛디딘다. 욕망에 눈이 어두워, 자신이 그 욕망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삶의 어느 순간에 이르면, 진실 앞에 소환된다. 그때 우리 손에 놓일 저 빨간 표지의 기밀 문서와 같은 진실. 빨간 표지를 넘기려 들면, 세상은 미쳤다고 하거나 죽이려 할 것이다. 표지를 넘길 것인가, 주머니에 쑤셔 넣을 것인가, 아니면 문서를 없애기 위해 감당 못할 짓을 벌일 것인가.

 

"It must stand the test of time. And, Michael, the time is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