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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민수기 16장 : "있는 놈" 이 더 가지려 할 때

by R.H. 2009. 12. 22.


레위 (Levi) 가문은 종교 일을 맡은 집안으로 군역이 면제되었다. 오늘날로 치면, 아무개 성씨네 집안 남자는 군 면제라는 특혜를 얻는 거다. 오늘날에도 병역특혜라는 말만 나와도 눈 뒤집어지는데, 하물며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병역 면제라니... 이거 하나만으로도 레위 집안이 얼마나 큰 특혜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고라(Korah) 는 이런 레위 집안 출신이다. 게다가 레위의 직계 증손자의 아들이다. 종갓집 아들인 셈이다. 애런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추종 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영향력 있는 인물인 것이다. 애런과 모세 역시 레위 가문 출신이지만, 고라와 달리 누구의 아들의 아들... 하는 식의 구체적인 족보 기록은 없다. (고라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등등의 이름이 민수기 16장 1절에 정확히 적혀있다.) 더군다나 모세는 얼렁뚱땅 레위 집안 출신이라고 묻어가는 느낌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그런데 레위 가문을 대표하여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것은 애런이다. 고라 입장에서는 불만이다. 자신이 문중 대표인데, 애런이 제사를 주관하는 모양새니 말이다. 그래서 고라는 제사장 직분을 요구한다.


이런 고라에게 모세는 제안을 한다. 다음날 향로를 가지고 성막(Tent of Meeting) 앞으로 나오라고.. 애런과 모세 역시도 향로를 가지고 가겠다고 하면서.. 한마디로 성막 앞에 모여서 협상을 하자고 한 듯 하다. 다음날, 이들 모두 성막 앞에 모인다. 이 때 모세는 갑자기 사람들에게 소리지른다. 고라 무리에서 떨어지라고... 그러자 땅이 갈라져서 고라 일당은 산 채로 생매장 당한다. 그리고 불이 일어나 고라를 추종한 250명의 핵심 세력이 불타 죽고, 14,700명이 염병에 걸려 죽는다. 이게 민수기 16장의 기록이다. 또 상상 들어간다.


모세는 지략가다. 이디오피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었고, 강감찬 장군의 살수대첩과 같은 홍해대첩을 이끈 전략가다. 이번 사건 역시 모세의 작전이었다. 고라 무리를 일망타진하기 위한 함정..


모세는 일단 그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척 하며 시간을 번다. 그리고 밤 사이 땅굴을 판다. 다음날 고라 일당이 성막 앞으로 모두 모였을 때, 땅굴을 지지하던 판자를 일제히 빼내어 그들을 생매장 시키는 거다. 그리고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고라를 추종하던 자들을 향해 일제히 화력전을 펼친다. 분명 말했다. 본인 상상이라고... 자, 그렇다면 모세는 왜 이런 극단적인 무력진압을 감행했을까?


고라는 충분히 특권을 누리고 있던 사람이다. 게다가 문중 종손이니 그를 따르는 추종 세력 역시 상당하다. 한마디로 리더급 인사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양반 그것도 사대부 종손이다.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단지 자신이 레위의 직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먹고 사는 문제로 난리를 피우면 모세는 무조건 참는다. 물론 화는 낸다. 하지만 혼자서 쭈그리고 앉아 푸념 기도를 늘어 놓으면서 속으로 화를 삭인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런데 많이 가진 놈이 더 달라고 요구하는 건 안 참는다.


오늘날 못 가진 놈이 좀 달라하면, 그냥 강경진압이다. 그리고 많이 가진 놈 더 가지려 하면... 뭐 알아서 내놓는 듯. 여튼, 모세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 원칙이 확실하다. '없는 사람들'이 달라면 주고, '있는 사람들' 이 탐욕을 부리면 가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