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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물 속의 칼 (1962) : 구세대 vs 신세대

by R.H. 2010. 6. 21.

<스포일러 주의>
 
 
운전하는 여자가 기어를 바꾸자 남자는 못마땅해한다. 여자의 운전 솜씨가 탐탁치 않다. 그리고는 그가 운전석에 앉는다. 한참을 달리던 중 히치 하이킹 하는 젊은 남자가 차를 가로막고, 중년 남자는 위협적으로 젊은 남자 코 앞까지 차를 바짝 몰고 가서는, 급하게 핸들을 꺾는다. 분명 멀리서부터 젊은 남자가 손 흔드는 걸 봤다. 그 전에 충분히 안전하게 차를 세우고도 남았다.
 
즉, 중년 남자는 젊은 남자에게 겁을 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젊은 남자에게 화를 내면서도 차에 태워준다. 게다가 자신의 1박 일정의 요트 여행에도 데려간다. 이는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고 싶은 중년남자의 심리다.

중년 남자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자동차, 요트, 그리고 여자.. 그와 여자의 관계는 수평적이지 않다. 수직적이고, 일방적이다. 한마디로 그에게 여자는 성공한 남자가 갖는 트로피 와이프다.

그리고 중년 남자는 이 모든 것을 능숙히 다룬다. 특히나 그는 요트를 잘 다룬다. 이 말에는 성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배는 여성형(she) 으로 불리고, 게다가 배의 이름은 아내의 이름인 크리스티나를 딴 것이다. 배 안에서 게임을 할 때, 그는 게임을 일컬어 "Living orgasm" 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이것은 더욱 선명해진다.

배 위에서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 사이에는 묘한 경쟁심과 자존심 싸움이 빈번히 일어난다. 중년 남자는 젊은 남자를 어린애 취급하면서, 그의 미숙함을 놀리고, 그가 약해 빠졌다고 비웃는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이거 저거 나름 가르쳐 주기는 한다. 가진 자의 오만한 선심이다. 이에 질세라, 젊은 남자 역시 별거 아닌 것에서 꼬투리를 잡는다. 뜨거운 냄비를 집게로 집는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며 희희덕 거리는 것이다. 하지만 괜히 쎈 척하다가 손바닥만 데이고 만다.

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능숙하게 다루는 유일한 물건이 있으니.. 바로 칼이다. 배가 여성을 나타낸다면, 칼은 남성을 나타낸다. 특히, 공격성과 저돌성.. 그래서 중년 남자는 그 칼이 마뜩치 않다.

결국 이 칼 때문에 사단이 난다. 중년 남자가 툭 던진 칼이 바닷속으로 빠지면서, 이 두 남자 사이에는 몸 싸움이 일어나고, 젊은 남자는 물 속에 빠진다. 그리고 수영을 못한다는 젊은 남자를 찾아 나선 중년 남자...

그런데 젊은 남자는 수영을 할 줄 알았다. 거짓말을 한 것이다. 중년 남자가 바닷속에 뛰어든 틈을 타 젊은 남자는 몰래 배에 올라와,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

이런 식으로 젊은이는 중년 남자의 것을 하나하나 차지할 것이다. 여자의 말처럼, 베짱이 있다면 말이다. 능숙함과 노련함에서는 중년 남자를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그는 젊음과 기지를 발휘해서 중년 남자가 가진 것을 하나씩 건드릴 것이다. 게다가 이 성공은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아마 20년 후 젊은 남자는 지금의 중년 남자가 가진 모든 것을 쟁취했을 것이다. 이미 이 사건 뒤로 중년 남자는 겁을 먹고, 자신감을 상실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