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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0) : 방관자들에게

by R.H. 2010. 11. 17.



<주의! 결말 포함된 스포일러>

끔찍한 야만이 벌어지는  이 섬에서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만종과 철종이라는 두 남자다. 그리고 이 두 사람에게 권력을 부여해 주는 자들은 섬의 할머니들이다. 그녀들이 살던 시대에는 복남이 겪는 것 이상의 폭력과 차별이 그녀들에게 가해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녀들 역시 약자다. 그런데 그녀들은 또다른 약자(복남) 를 학대한다. 이것이 바로 그녀들의 생존방식이다. 폭력과 부당함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폭력하는 쪽에 가담하는 가장 치졸하고 비열한 방식.. 그리하여 자신 역시 강자라는 착각하는 우스꽝스러움.. 

해서, 폭력을 자행하는 만종과 철종보다, 만종의 폭력을 두둔하고 되려 복남을 나무라는 이들이 더 끔찍하고 더 역겹다. 그렇다면 강자의 횡포에  동조하고 지지하고 두둔하는 이런 자기계급 배반형의 인간들이 이 섬에만 있는 것일까?   

정작 자신은 꾸질꾸질하게 살면서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정당을 지지하는 가스통 할배들, 인종차별 얘기 나오면, 한국 사람은 더 그런다며 백인을 두둔해주는 이상한 사람들, 같은 여자면서 여자를 더 깔아 뭉개는 성정체성이 의심되는 여자 마초들.. ('성정체성이 의심된다' 는 표현은 섬의 할머니들 같은 인간들에게 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인간들이 널리고 널려있다.

여튼, 이렇게 평생 섬에서 억압받고, 천대받고 폭력에 시달린 복남은 딸아이의 죽음 뒤, 돌변한다. 언제나 그렇듯 가해자 만종을 두둔하는 할머니들, 사건을 의심하면서도 '그리그리 아는 사이' 기에 어물쩡 넘어가는 형사, 그리고 사건을 목격하고도 여전히 방관하는 혜원.. 이제 복남은 깨닫는다. 자신이 낫을 들고 그들의 목을 베지 않는 이상,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이 영화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소리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참으면 병 생긴다고.

자, 그리하여 이제 피의 복수가 시작된다. 이를 지켜보는 우리 역시 통쾌하다. 그리고 응원한다. '잘한다. 우리 복남이. 그래 저 인간들 다 죽어야해!' 그런데 복수가 후반부로 치닫으면서 껄끄러운 질문이 맴돌기 시작한다. '복남은 친구인 혜원마저도 죽일까?' '혜원은 죽어도 싼 걸까?' 이 질문이 껄끄러운 건 영화 속 인물 중에 우리와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한 것이 혜원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우리를 자극한다. 화나게 한다. 불편하게 한다. 그러라고 만든 영화다. 그리고 말한다. 야만스런 권력자와 이에 동조하는 비열한 자들 만이 아니라, 방관자인 당신들 역시 지금 죽어도 할 말 없다고.. 악이 판치는 곳에서의 방관은 악에 동조 하는 것이기에.. 하지만, 혜원은 속죄의 기회를 얻는다.

혜원이 들른 섬의 폐가에 걸려있는 액자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당할 때, 예수를 외면하고 도망간 제자들은 결국 후회한다. 그리고 예수가 남긴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파하는 행동하는 자가 되어 험난한 속죄의 길을 걷는다. 섬의 희생자 복남의 죽음 이후, 복남을 외면해왔던 혜원 역시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리고 영화의 시작에서 범인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혜원은 스스로 경찰서에 찾아가 범인을 지목한다. 더이상 방관자가 되지 않는 것. 이것이 지금 죽어도 할 말 없는 방관자들에게 주어진 속죄의 기회다.

"사랑하는 해원아... 날 도와 줄 사람이 너 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