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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5-9 Namaste

by R.H. 2009. 9. 7.

 <스포일러 주의>

 

1977년의 섬으로 돌아온 잭, 헐리, 케이트.. 이들은 용케도 진수에게 발견되어 새로운 달마 일원이 되었지만, 사이드는 불행히도 성질 더러운 라진스키에게 발견되어 철창 신세가 된다.

 

이날 밤. 위험에 처한 사이드 문제를 논하고자, 잭은 제임스를 찾아간다. 사이드가 고문이라도 받으면 어찌 될 것인가. 사이드가 자신의 정체를, 다른 로스티들의 정체를 드러내기라도 한다면? 지금 상황은 아주 급박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제임스는 천하 태평하게 책을 읽고 있다. 멋들어지게 윈스턴 처칠을 인용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잭의 태도를 비난한다. 잭의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잭은 그 누구보다도 이타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한 약속은 지키려 노력하고, 곤란에 빠진 사람은 최선을 다해 돕는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선함' 은 도가 지나치다. 이게 문제다. 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는 말. 다정도 병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잭은 로스트에서 이성의 인간으로 대변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잭만큼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감정에 휘둘리는 리더는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잭의 이타심은 자신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도 힘들게 한다. 1시즌에서 잭은 죽어가는 분(Boone) 을 살리고자 마취도 없이 잔인하게 그의 다리를 잘라내려 했다.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여자에 대한 동정심으로 확신 없는 결혼을 감행하고, 결국에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또한, 잭은 섬에서 일부 사람들을 데리고 탈출했다. 하지만 그들의 탈출은 수많은 나머지 사람들을 사지로 내몬 꼴이 되고 말았다.

 

로스트에서는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한다.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은 단순히 '선함' '덕' '이타심' 만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러한 덕목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감정에 휘둘려 우왕좌왕해서는 안 된다는 점. 냉정한 논리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제임스는 감정에 휘둘린 리더의 행동이 어떤 파국을 가져왔는지에 대해 꼬집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잭에게 심하게 대하는 건 뭐란 말인가. 3년 만에 만난 동료에게 첫 날 하는 말투 치고는 너무 사나운 듯.)

 

제임스의 냉정함은 사이드가 처한 위험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리더로서 이 복잡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감정 다스리기의 노력인 것이다. 이타심 이전에 자신의 감정 먼저 정돈해야 하고, 세상을 구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구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