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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5-11 Whatever Happened Happened

by R.H. 2009. 9. 7.

<강력 스포일러>

 

이번 에피의 제목, "Whatever Happened  Happened"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고,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난다면,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은 애당초 있지도 않은 허망한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1주일 뒤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그 1주일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1주일 동안의 행동 결과로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일은 없다고 가정해 보자. (천국에 가기 위해, 혹은 지옥 가는 것이 두려워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선함이 아니다. 이것은 이기심이나 다름 없다. 따라서 행위의 결과로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일은 없다는 가정을 한 것.)

 

아마, 누군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흥청망청 오만 악행을 하면서 1주일을 보낼 것이다. 반면, 누군가는 이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최대한 선을 행하면서 보낼 것이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떻게 손써 볼 수 없는 확정된 운명이지만, 마지막 시간까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는 분명 우리의 자유의지다.

 

우리 모두는 태어난 순간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운명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확정된 사실이다. (이것이 로스트에서 말하는 '상수' 일지도.)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 막장으로 살 것인가? 악랄한 짓만 해가며 살 것인가? 아니면 최대한 선을 실현하며 살 것인가?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바로 우리의 자유의지다.  (인간의 이러한 선택이 바로 로스트에서 말하는 '변수' 일지도.)

 

결과를 책임 질 필요없다. 진정 원하는 선택을 하라. 선? or 악?

 

이제 로스트로 돌아와 보자. 어린 벤이 총에 맞아 생사 갈림길에 놓이는데, 제임스는 잭에게 수술을 요청한다. 마일즈의 말에 의하면, 벤은 지금 죽을 운명이 아니다. 즉, 잭이 수술을 해주든, 해주지 않든지 간에 벤은 살 운명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케이트가 벤을 디아더스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벤이 죽었을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에 죽을 운명인 찰리를 여러 번 데스몬드가 구해주지만, 어떤 식으로든 찰리는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벤은 어떤 식으로든 살아나게 되어있다.

 

잭의 선택은 (수술해 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벤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잭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걸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망설이고, 주저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 가져 올 결과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행동을 한다 해도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책임은 행동한 자의 몫이다. 그리고 때로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악한 행동을 해야만 하는 괴로운 딜레마에 처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우리의 선택과 자유의지 실현은 골치 아픈 장애물들로 인해, 선하게 살고 싶어도 선하게 살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바로 그 동안 잭을 괴롭힌 선택의 중압감이었다.

 

그런데 지금 잭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필요도 없고, 좋은 결과를 위해 악을 행해야 하는 딜레마를 겪을 필요도 없다. 이 모든 주변 조건들을 완전히 제거된 채, 이제 그는 순수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순수하게 선한 행동을 할지, 순수하게 악한 행동을 할지. 지금 이 순간 그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이 뿐이다. 이전처럼 복잡하게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잭은 내면의 순수한 선에 대한 시험을 받고 있는 것이다.

 


벤의 수술을 부탁하는 제임스의 말을 들은 잭. 이때 흔들리는 잭의 눈빛에는 벤이 죽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마음은 분명 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