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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5-10 He's Our You : 야만의 본능 vs 자유의지

by R.H. 2009. 9. 7.

 

<강력 스포일러 주의>

 

잔인함 : 인간의 타고난 야만 본능

 

닭 모가지를 비틀라는 아버지의 불호령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형 대신 일을 처리하는 동생. 어린 시절 사이드다. 사이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죄의식도, 두려움도 없이 닭 모가지를 비틀어 버린다. 꼬마에게서 나오는 살벌한 냉기. 인간의 잔인함은 타고난 본능인가? (이에 대한 이야기는 3-11 에피 에서 불쌍한 고양이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언급) 허나, 사이드에게 이에 대한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그는 아직 사리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어린이니까.

 

자유의지 : 야만의 본능을 제어하려는 인간의 몸부림

 

 

사이드 :  그 남자를 죽이라는 제안을 나에게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겁니까?

벤자민 : 원치 않나요?

사이드 : 내가 왜 그 일을 원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벤자민 : 왜냐하면, 사이드.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하기 쉽지 않은 일들을 당신은 할 수 있으니까요. 당신 삶에서 했던 모든 선택들은, 살인 아니면 고문이었지요. 사실은 선택이라 할 수도 없죠. 당신은 타고난 겁니다. 그게 당신이에요. 당신은 킬러입니다. 사이드.

 

사랑의 집짓기를 하는 사이드 앞에 다시 나타난 벤은 이번에도 사이드에게 살인을 종용하지만, 사이드는 이를 거부한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살인을 하지 않으려는 사이드의 노력인 것. 하지만 결국에는 벤이 제안한 일(살인) 을 하는데, 이때, 사이드의 살인 행동은 조금 복잡하다.

 

어린 시절의 사이드의 잔인한 행동은 '순수한 잔인함' 이었다. 닭 모가지를 비틀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그 일을 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자신의 잔인함을 억누르려 노력하지만, 벤자민의 교묘한 술책에 넘어가 살인하는 것이다. 허나, 이번에도 사이드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그는 분명 벤에게 속아서 일을 저지른 것이니까.

 

사이드의 자유의지, 자신 안의 야만의 본능에 굴복하다

 

1979년의 시간대의 섬으로 돌아 온 사이드. 그는 여기서 천하의 원수 벤을 만난다. 하지만 지금 그가 만나는 벤자민은 아직 순수한 어린 소년에 불과하다. 아버지에게 학대 받는 불쌍한 소년이고, 포로인 사이드를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는 마음 여린 소년이다. 그런데, 사이드는 이 어린 벤자민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그 누가 살인을 종용한 것도 아니다. 벤이 사악한 모습을 드러내서도 아니다. 이번 살인은 사이드가 판단하고 결정한 그의 자유의지다.


 

사이드는 더 이상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꼬마가 아니며, 타인에게 조종당해 속아서 살인을 한 것도 아니다. 이번에 그가 저지른 행동은 온전히 그가 책임이다. 그는 이 행동에 대해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시험에서 본능에 굴복한 자유의지의 모습은 영화 세븐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You were right about me. I am a killer. [네 말이 맞았어. 난 살인자야.]

 

벤의 말처럼, 사이드는 타고난 살인자일까? 답은 '그렇다' 이다. 사이드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도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안에는 잔인함이 숨어 있다.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잔인함과 야만성. 중요한 것은 이 본능을 극복하는 것이다.

 

사이드는 이라크 고문관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거짓말을 일삼아 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이드의 죄를 묻지 않았다. 아니, 되려 사이드에게 고문 당한 여자까지도 그를 용서한다. 그 여자의 말처럼 사이드가 저질렀던 만행은 우리 모두가 저지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이드는 이 여자를 통해 배웠다. 인간의 야만스런 본능(살인, 잔인함, 복수 등) 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 말이다. 그런데 사이드의 자유 의지는 또다시 자신 안의 본능에 굴복하고 만다.

 

사이드, 마지막 시험에서 유혹에 넘어가 버린 인간의 모습인가. 한 고비만 넘으면 되는 것을.


[왼편에는 Canton Rainier (철자 바꾸기로, reincarnation[환생]) 이라는 단어가 적힌 밴. 오른편에는 Illusion(망상) 이라는 단어가 적힌 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