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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5- 8 LaFleur

by R.H. 2009. 9. 7.


 


<스포일러 주의>

 

    

현재를 잡아라 (Seize the days)

 

1977년 달마 이니시어티브의 리더 호레이스는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영어식 발음이다. (위키백과) 우리에게는 상당히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에서 인용되어서 유명한 "Carpe Diem" 이 바로 이 호라티우스가 지은 시라고 한다. 카르페디엠은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s)' 라는 뜻의 라틴어다.

 

로스트 5시즌 마지막 회를 보면서 느낀 점인데, 어쩌면 호레이스의 카르페디엠이라는 시가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그 무엇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로스트의 인물들처럼, 우리 역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염려하느라, 정작 중요한 현재를 낭비해버리고 있는 우리 말이다.

 

로스트에서 "과거"와 "미래" 를 오가는 시간여행은 "현재" 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소재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로즈와 버나드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추가하기로 한다. 아래는 호레이스의 "Carpe Diem" 시 전문이다. 

 

Horace Ode I-XI "Carpe Diem"

Ask not - we cannot know - what end the gods have set for you, for me; nor attempt the Babylonian reckonings Leucono? How much better to endure whatever comes, whether Jupiter grants us additional winters or whether this is our last, which now wears out the Tuscan Sea upon the barrier of the cliffs! Be wise, strain the wine; and since life is brief, prune back far-reaching hopes! Even while we speak, envious time has passed: pluck the day, putting as little trust as possible in tomorrow!

세상이 끝나는 날, 신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두었는지 묻지 말며, 바빌론의 점술가들처럼 예측하려 하지도 말라. 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저 받아들여라. 주피터가 우리에게 또 다른 겨울을 선사하든, 이번이 마지막 겨울이 되든, 투스칸해 절벽의 바위가 닳아 없어지든! 현명해지라, 와인을 마셔라; 인생은 짧다. 다가 갈 수 없는 희망은 잘라버려라!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사이에도, 시샘 많은 시간은 지나가 버리니: 현재를 잡아라, 내일에 대한 생각은 저만치 두어라!

에노스 (Enos, 혹은 Enosh)

 

이번 에피에서 제임스는 마일스를 에노스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마일스는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능력을 지닌 중국계 미국인으로, 돈만 아는 태도 불량 인간이다. 그런데 도대체 마일스의 어떤 면에서 에노스라는 별명이 튀어 나온 것인가?

 

에노스. 이 이름 역시 우리에게는 참 낯설다. 그래서 뒤져보니, 에노스는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이란다. 아담과 이브는 카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카인이 아벨을 때려 죽이는 사건 이후 셋째 아들 셋(Seth) 을 낳았다. 그리고 이 셋의 아들이 에노스(Enos) 라고 한다. 그러니까, 에노스는 아담과 이브의 손자다.

 

창세기에서 에노스가 중심인 사건은 없다. 뿐만 아니라, 이 인물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에 대한 단서도 거의 없다. 창세기에서 언급되는 에노스 관련 구절은

 

"Seth also had a son, and he named him Enosh.  At that time men began to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셋 역시 아들을 낳았는데, 그를 에노스라 이름 지었다. 그때 인간들은 주(LORD) 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창세기 4장 26절>

                                                                                                                            

이게 전부다. 도대체 어딜 봐서 마일스의 별명을 에노스라고 한단 말인가. 제임스가 지은 별명 가운데, 이렇게 괴리율이 큰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더 뒤져봤는데, 에노스라는 이름의 뜻은 "Mortal man; sick; despaired of; forgetful"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 나약한 ; 절망의; 잊혀지는] 뭐 이런 뜻이라고 한다.(출처 : http://www.babynamesbase.com/meaning_Enos.html ) 이름치고는 상당히 고약한 뜻이다.

 

참고로, 혹시나 해서 몰몬경의 에노스서도 찾아 읽어 보았으나, 별거 없어 보인다. 몰몬경에서 에노스는 주구장창 기도하고, 죄를 사함 받는 내용이다. (로스트 보다가 참 별 걸 다 찾아 본다.)

 

여하튼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에노스라는 인물은 인류 최초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 운명을 자각하고, 절망한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적 한계를 인식한 에노스 (혹은 에노스로 대표되는 당시의 인간들) 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 운명의 덧없음에서 구원해 줄 신을 부르짖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4장 26절을 다시 자세히 살펴 보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인식하고, 이에 절망한 나약한 인간이 신을 부르짖고 갈구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이러한 에노스의 모습과 마일스와 관련성은?

 

마일스가 자신의 아버지(LORD) 를 찾고 갈구하는 나약한 모습이 이번 5시즌에서 보인다. 마일스가 탐욕스럽게 돈을 밝힌 이유는 자신 안에 있는 공허함과 덧없음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마일스의 인간적 공허함은 채워질 수 없었다. 이것을 채우기 위해서 마일스는 자신의 아버지 닥터 쳉을(LORD) 찾고, 구하고 부르짖어야 한다. 성경에서 에노스가 인간의 공허함과 덧없음을 채우기 위해 신(LORD) 을 찾고, 구하고 부르짖었듯이..

 

LaFleur

 

제임스는 꽃님이로 개명했다. LaFleur 는 "the flower" 라는 뜻의 불어로, 실제 성이라고 한다. 근데 어딜 봐서 제임스가 꽃님이? 겉으로는 틱틱거리는 성격이었지만, 본인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있었던 듯. 원래 외로운 사람이 까칠, 아니 까칠한 척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