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5-7 The Life and Death of Jeremy Bentham : 희생과 자살은 다르다.

by R.H. 2009. 9. 7.

 

<강력 스포일러 주의>

 

로크의 진정성은 의심받고...

 

로크는 섬을 나간 사람들을 데려가야 한다. 이것이 지금 그가 섬을 나온 이유이자 임무이다. 그리고 그는 섬을 나오기 전부터 알았다. 그들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로크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즉, 그는 임무 완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며,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섬 밖을 나왔다. 로크가 섬을 나온 이유는 단지 이것 뿐이다. 섬에 남은 동료들을 위험에서 구한다는 미션 말이다. 여기에 단 한치의 개인적 욕심은 없다.

 

그런데 그 누구도 이런 로크의 진정성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 섬 이외에는 갈 곳이 없어서 그런 거냐느니, 사랑을 해본 적 있느냐느니, 당신은 단지 외로운 노인네 일 뿐이라느니... 이런 식의 조롱만이 돌아 올 뿐이다. 로크는 상당히 놀라고 당황했을 것이다. 지금 로크의 미션은 로크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로크의 개인적 불안정과 외로움 때문에 과잉 행동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에 로크는 절망하고, 주저앉는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마지막은 자살이다.

 

그런데 로크가 자살하기 직전 벤이 느닷없이 들이닥치고는 로크의 자살을 막는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몇 분 뒤에 벤이 로크를 살해한다는 것이다. 벤은 왜 자살하는 로크를 말렸을까? 게다가 자살을 말릴 때는 언제고, 바로 죽이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크는 반드시 희생당해야 한다. 자신의 손에 죽는 자살이 아니라, 남의 손에 죽는 희생 말이다.

 

희생과 자살의 차이점

 

희생과 자살.. 이 두 단어는 언뜻 보기에 유사하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희생과 자살이 같은 단어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희생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그것도 나의 개인적 욕심 아닌 집단과 공동체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감수하는 행동으로 이 단어에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반면에 자살은 나의 개인적 욕심(예를 들면 육체적, 정신적 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욕심) 을 충족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 단어에는 포기가 담겨있다. 이 두 단어의 의미는 천지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로크는 불굴의 의지로 이곳에 온 것이지 포기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예수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체포되기 전날 밤 보따리 싸서 도망가지 않았다. 예수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죽음의 자리에 있었다 하여, 예수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마찬가지로 로크는 자신이 죽을 걸 이미 알고 이곳에 왔다. 그 역시 희생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그는 자살을 하려 한다. 그가 자살한다면 그 동안 겪었던 그의 모든 노력과 고난,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단련된 그의 불굴의 의지는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여기서 잠시 로크의 성장 과정을 한번 정리해 보자.

 

제 1단계 : 섬 밖에서의 그의 삶은 "절망" 의 단계다.
제 2단계 : 섬에서 그의 첫 번째 미션은 "아버지 죽이기" 였다. 이를 통해 그는 혼자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제 3단계 : "아버지" 를 극복했으니, 보다 더 큰 존재를 마주 할 준비가 되었다. 이제 그는 운명, 우주, 혹은 신을 대면한다.
제 4단계 : 그는 "희생" 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로크는 지금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마지막 과정에 있다. 그런데 지금 그는 희생과 자살을 혼동하고 있다. 희생은 불굴의 의지이고, 자살은 포기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자살한다면 그는 1단계 절망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포기하면 게임오버가 아니라 게임리셋인거다. 로스트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자살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섬의 룰이다. 이전에 마이클이 절망 속에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어쩌면 이것이 운명의 룰인지도 모른다. 설령 우리가 이번에 삶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삶을 부여 받는다. 운명은 우리에게 끈질기게 성장할 것을, 불굴의 의지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운명은 우리가 이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운명에 갇힌 우리의 선택은 둘 뿐이다. 끊임없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던가, 아니면 성장의 임무를 완수하던가.

 

여기에 포기라는 옵션은 없다. 포기(자살)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착각일 뿐이다. 불행히도 다시 태어나 절망의 첫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포기(자살)한 자가 게임오버라고 소리치고 드러누우려는 순간, 운명은 게임리셋이라고 외치고는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천장의 십자가. 로크의 죽음에는 예수의 희생과 같은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예수처럼 희생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자살한다면 그의 임무 수행은 실패가 되는 것이다. ]


 

'미드리뷰 > 로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스트 5-9 Namaste  (0) 2009.09.07
로스트 5- 8 LaFleur  (4) 2009.09.07
로스트 5-7 The Life and Death of Jeremy Bentham  (0) 2009.09.07
로스트 5-6 316 : 섬으로  (0) 2009.09.07
로스트 5-5 This Place Is Death (下)  (0) 2009.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