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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5-5 This Place Is Death : 절망 가운데 홀로 일어나라 (上)

by R.H. 2009. 9. 7.

<강력 스포일러>


3-13 에피 : 건물에서 추락하는 로크. 5-1 : 절벽에서 추락하는 로크. 5-5에피 : 우물에서 추락한 로크


이번에도 로크는 추락하고, 오른쪽 다리를 다친다. 이든에게 총 맞은 오른쪽 허벅지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치다니.. 그의 다리는 성할 날이 없다. 로스트에서 가장 연장자이신데, 참 고생이 심하신 듯.

 

혼자 하라


진수 : 섬을 나가 본 적이 있나요?
로크 : 아니오.
진수 : 내가 당신과 같이 갈게요.
로크 : 그렇게 하는 일이 아니오.
한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진수 : 왜죠?
로크 : 이유는 모릅니다. 그냥 그런 거에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왜 로크 혼자 섬을 나가 사람들을 데려와야 하는가? 리차드가 그리 말했던가? 크리스챤이 그렇게 하라던가? 진수와 같이 섬을 나가면 사람들을 찾아서 모으는데 훨씬 빠르고 쉽다. 그런데 로크는 왜 혼자 해야 한다고 하는가? 게다가 본인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른다.

 

우물에 도착한 일행, 그리고 로크는 이제 우물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이때 소이어는 도르래로 로크를 내려주겠다고 하는데, 로크는 그러면 무슨 재미냐는 싱거운 농담을 하면서 혼자 힘들게 밧줄을 타고 내려간다. 소이어가 밧줄을 내려주면, 빠르고 쉽게 내려갈 수 있는데, 로크는 왜 굳이 혼자 하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애매한 순간에 시간여행이 일어나면서, 우물이 사라진다. 놀란 소이어는 땅이라도 팔 기세다. 그런데 이때 줄리엣은 말한다. "우리가 도울 수 없어요."

 

 

시간여행 덕분에(?) 우물에서 추락한 로크는 다리에 나뭇가지가 박힌다. 이때 등불을 밝히며 나타난 크리스챤이 이전에 왜 로크가 직접 섬을 움직이지 않았느냐고 힐책하자 로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벤이 섬을 움직이는 법을 안다면서, 로크는 섬에 머물러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크리스챤은 언제부터 벤의 말을 들었냐고 짜증스레 말하고는 바퀴 축을 밀라고 한다.

 

로크는 다리를 다쳤다. 일어서기가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자신을 일으켜 달라고 크리스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단다. 다친 사람 손 잡아주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거절한단 말인가.

 

크리스챤이 거절한 이유는 바로 로크는 반드시 이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로크가 바퀴 축을 움직이지 않고, 벤이 하게놔둔 것을 힐난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로크가 "홀로 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때 로크는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을 것이다. 바퀴 축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움직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벤이 자청해서 한다니 속으로는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섬은 그 동안 익숙해진 장소 아닌가. 알지도 못하는 바퀴 축을 움직여서 생기는 뒷감당을 하느니 섬에 남아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 앞의 단독자

 

로크에게 부여된 의미는 정말 많다. 오이디푸스와 아버지, 아브라함의 희생, 니체의 초인론, 존 로크의 경험주의, 제레미 벤텀의 공리주의, 그리스도의 부활 등등. 그리고 이번 에피에서는 키에르 케고르가 말한 "신 앞의 단독자" 라는 단어가 그에게 부여되었다.

 

지금까지 로크에 부여된 의미들은 한 에피, 혹은 한 시즌에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섬 밖에서의 로크는 오이디푸스다. 그런데 섬에서 아버지를 죽인 후, 더 이상 그에게 오이디푸스는 의미가 없다. 또한 섬 밖에서 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한 사람은 아니다. (사실 너무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섬에서 그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된다. , 이전에는 없던 의미가 섬에 들어와서 부여된 것이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런데 섬 안과 밖 모두에서 그의 모습을 관통하는 의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키에르 케고르가 말한, 절망과 외톨이의 인간, 그리고 이를 통해 신 앞에 홀로 마주하는 단독자다.

 

섬 밖에서 그의 절망을 되짚어보자. 태어나면서 버림받고, 아버지에게 이용당하고, 반신 불구되고... 그의 학창시절 역시 왕따 생활이었으며, 곁에는 친구도 애인도 없다. 섬 밖에서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절망" "외톨이" .

 

이런 그가 섬에 들어와 운명(혹은 신) 을 마주한다. 우물 밑에서 그가 돌리는 바퀴는 섬(공간) 과 시간을 움직이는 축이다. 공간과 시간... , 이는 우주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우주...혹자는 이를 운명이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세 단어는 유사, 아니 같은 단어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 뿐이다. 로크가 마주하는 것은 섬(공간)과 시간을 바꾸는 축이다. , 그는 지금 우주, 운명...혹은 신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로크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섬 안과 밖에서의 그를 모두 연결하는 단어. 그것은 절망 속에 홀로 신을 마주하는 자다. 로크는 홀로 일어서야 한다.

 

그가 아버지를 극복해야 했던 것은 그가 홀로 일어서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했던 하나의 숙제였다. 그가 절망 가운데 믿음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것도 홀로 신(운명) 을 마주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했던 숙제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신(운명)을 직접 마주하고 있다. 로크는 반드시 홀로 일어서야 한다. 이것은 로크만의 숙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숙제다. 그리고 이 숙제는 줄리엣의 말처럼 누구도 도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