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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5-4 The Little Prince :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by R.H. 2009. 9. 7.


<강력 스포일러>



로크 : 분이 죽은 날 밤. 난 그곳에 있었죠. 그리고 있는 힘껏 그것(해치)을 두드렸어요. 난 무섭고 혼란스러웠어요. 그리고 바보처럼 혼잣말하며, 물었습니다. 왜 이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지.
소이어 : 그래서 답을 얻었나요?
로크 : 한 줄기 빛이 하늘로 솟아 올랐소. 그때, 난 그게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이어 : 그랬나요?
로크 : 아니, 그냥 빛이었을 뿐이오.


믿음의 인간 존 로크, 믿음에서 광기를 베어내다


지난 1~2시즌에서 해치 위에서 울부짖던 로크는 한줄기 빛을 보고, 결국 해치 안으로 들어간. 해치 안에서 로크는 알았다. 해치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신이 쏘아 올린 빛이 아니라, 데스몬드가 쏘아 올린 조명이라는 것을... 하지만 여기에서 새로운 사실도 안다. 바로 데스몬드와 잭 섬 밖에서 만났던 사이었던 것. 이들이 이 섬에서 다시 만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정말 모든 길이 이곳으로 이끌고 있는 것인가? All roads lead here...

 

이때 로크의 선택은 후자였다. 해치와 관련된 모든 사건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운명의 부름이자, 신의 시험이라고 확신한다. 겉으로는 데스몬드가 쏘아 올린 조명 빛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신과 운명의 섭리가 깃들여 있으며, 자신의 울부짖음이 응답 받았다고 확신한 것이다. 이 당시 로크는 조명 빛을 신의 응답으로 확신하는 광기 어린 믿음의 소유자였다.


[2-3 에피. 로크는 끊임없이 운명이 자신들을 시험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운명에 부름 받고 있는 것이라고주장한다. 여기서 로크는 잭에게 믿음 속으로 (A leap of faith) 뛰어들 것을 권유한다. 이때 로크의 눈빛은 추호의 의심도 없는 광신도의 그것이고, 잭의 눈빛은 의심으로 가득 찬 믿지 못하는 자의 눈빛이다.]

 

이번 에피를 보자. 지금 로크와 그 일행이 겪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더 혼란스럽고, 더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점점 더 논리와 이성, 과학적 설명에서는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로크는 쿨(?)하게 말한다. 그냥 빛이었을 뿐이라고... 신의 응답도, 운명의 부름도 아닌 우연에 불과했다고 말한. 물론 지금도 로크는 믿음의 인간이다. 이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믿음에서 광기 베어낸 것이다.
    

시간여행, 인간의 욕망과 컴플렉스

   
소이어 : 거기(해치)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까?
로크 : 내가 왜 그러고 싶겠소?
소이어 : 당신 자신에게 다른 선택을 하라고 말해 줄 수도 있잖아요. 당신을 고통에서 구해낼 수도 있고.
로크 : 아니,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고통들이 필요했어요.


지금 섬에서는 시간여행이 벌어지고 있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시청자는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로스트만이 아니라, 시간여행을 소재로 다룬 이야기에 우리는 쉽게 사로잡히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시간여행이라는 단어에 열광하고,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에 홀리는가? 그것은 바로 시간여행이라는 황당무계한 소재가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욕망이란 채워지지 못한 바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컴플렉스라와 같은 성질의 단어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을 포장한다. 그런데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과 컴플렉스를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물론 답하는 사람은 본인의 욕망이 드러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황당무계함과 비현실성에 긴장이 풀리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은 정다양하다. 오만가지의 공상과 상상의 답변들을 쏟아낸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의 답은 뻔하다. 그 답들은 대개 돈, 학벌, 명예, 과거의 실수등과 관련된 "나의 욕망" 충족에 대한 것들이다. , 개인의 이익과 관련된 것 뿐이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인류의 평화와 번영과 같은 공공의 이익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다시 로스트로 돌아와 보자. 소이어의 말은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개인의 이익과 관련된 것이다.

로크. 섬 밖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가. 섬 안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실수들을 저질렀던가. 게다가 지금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런데 지금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절호의 기회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실수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섬을 나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 죽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해치 위에 엎드려 우는 자신에게 당장 달려가 "절대 해치를 열지 말라." 고 말하지 않겠는가? (물론 데스몬드에게는 좀 미안하다. 해치가 안 열리면 그는 숫자 누르기 짓을 계속 혼자해야 한다.) 혹은 해치를 열더라도 버튼을 계속 누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섬에서 로크의 최대 실수는 숫자를 누르지 않아 해치가 폭파된 일이다.) 혹은 위드모어가 키미 일당을 보낼 것이니, 어찌어찌 대처하라고 방안을 지시해 줄 수도 있다.

여하튼 지금 해치 위에서 절규하고 있는 자신에게 얼릉 달려가 힌트 하나만 던져주고 온다면, 로스트의 다른 인물들이 섬 밖에 나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을 다시 섬으로 데려오기 위해 로크가 죽어야 할 이유도 없다. 로크는 자신의 고통, 희생, 죽음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겠단다.


그가 과거의 자신에게 뛰어가지 않는다는 말은 앞으로 계속되는 자신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죽음마저도 감수하겠다는 말이다. 로크는 시간여행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자신의 고통과 희생을 막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섬을 위해, 로스트의 다른 동료들을 위해 죽음도 감수하려 한다.


게다가 되려 자신이 겪어온 고통과 실수들이 자신을 성숙시켰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로크의 정신은 진짜 성장한 것이며, 그의 영혼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전에는 몸만 컸지, 정신은 어린이와 다를 바 없었다. 대머리 중년 나이에도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고,그 품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나약한 로크였는데 말이다.


시간여행이라는 끝내주는 일이 우리에게 벌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킬 것인가? 아니면 인류 공동체를 위 무언가를 것인가? 우리 답은 바로 우리 정신의 단계다. 이것을 알고 난 후 나는 더 이상 시간여행이라는 신나는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천박한 나의 개인적 욕망과 컴플렉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나의 상상들이 민망해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