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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4-08 Meet Kevin Johnson : 배신은 가장 큰 죄다.

by R.H. 2009. 8. 26.

 

<스포일러 주의>

 

죄(업보) - 이기심

 

마이클은 아들과 함께 섬을 빠져 나가기 위해 동료를 살인한다. 그리고 그는 두려워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반성하고 뉘우쳐서 두려워한 게 아니다. 지옥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2시즌 에코와의 대화에서 나옴)

 

우리 모두는 죄를 짓는다. 중요한 것은 죄(혹은 실수)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실수)를 진정으로 반성하는 자세다. 마이클의 두려움은 반성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심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즉, 죽은 다음에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다. 지옥에 가기 싫다는 것 말이다.

  

섬 밖에 나와서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마이클은 결국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데 자동차를 들이박아도, 총을 머리에 쏴도 죽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총에 장전을 했는데 말이다. 그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그래서 벤자민의 첩자로 위드모어의 배에 승선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섬으로 향한다. 사는 게 죽는 것만 못한 마이클은 어떻게 해서든 죽고 싶다.

 

희생- 이타심 : 죄(업보)에서 벗어나는 길

 

로스트에서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라는 가치가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1시즌부터 희생의 필요성과 숭고함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다. 로크가 분을 희생시켜 해치 열기, 데스몬드가 인류(공동체)를 위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말 한마디에 3년 동안 숫자버튼 누르기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기, 찰리가 일행의 구조를 위해 희생하기. 그리고 이번에는 마이클이 섬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불사르려 한다.

 

마이클은 자신과 아들을 위해 살인하고 동료들을 배신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완벽한 이기심 그 자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이해 받을 수는 있다. 그의 행동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 받을 행동이라고 해서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기심에서 파생된 죄를 씻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로스트는 그 답을 바로 "희생정신" 에서 찾고 있다. 왜냐하면 희생정신은 이기심과는 완전히 반대로 완벽인 이타심이기 때문이다.

 


이번 에피에서 마이클이 벤자민과 통화하는 장면에 나오는 위의 장식품. 불상 같기도 하고, 힌두교 신상 같기도 하다.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교와 힌두교 모두 업보와 윤회를 이야기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신상은 마이클의 업보(죄)와 윤회(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에 연관 지어 사용된 소품 같다.

 

그리고 이번 에피에서 마이클은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지만, 죽지 못한다. 이는 업보와  윤회사상과 맞닿아 있다. 업보(죄) 를 짊어진 우리는 태어남과 죽음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해탈할 때까지...

 

마이클은 자신의 죄(업보)로 인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업보로 인한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완전한 희생을 통해 이기심을 극복하고 이타심을 가져야 한다.

 

로스트는  희생이 인간의 성장과 다음 단계로의 나아감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의 단계로 올라가던,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든지 간에 말이다.

 

공동체 의식과 배신 행위

 

로스트는 공동체 의식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십의 딜레마에 대한 고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이라는 공리주의에 대한 고민, "각자 알아서 사는 거야" 라는 식의 삶을 사는 소이어에게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라는 가치를 교육시키는 등등.)

  

로스트에서 살인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 유독 마이클의 살인에 대해서만 강하게 죄를 묻는다. 그 이유는 다른 이들의 살인이 공동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경우이거나, 실수로 인한 것인데 반해 마이클은 자신의 이익(섬을 혼자 나가는 것)을 위해 공동체를 배신하고 동료를 살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이전과 반대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단테는 신곡 에서 배신은 인간만이 저지르는 죄이기 때문에 배신자는 지옥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고 묘사한다. 공동체를 배신하는 행동은 살인보다도 더 무겁고 큰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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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공동체를 배반한 친일 매국노에게 제대로 죄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매국노에게 죄를 묻는 것을 실용성 없는 사회적 낭비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치" 는 실용의 잣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인데 말이다. (실용의 잣대로는 민주주의는 가장 비효율적이고, 비실용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하지 말 것인가?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실용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지는 말자.) 그리고 그렇게 어영부영 반세기가 지나버렸다. 이제 처단해야 할 매국노는 살아있지도 않다. 그리고 남은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를 배신해도 된다는 이상한 사고방식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