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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4-11 Cabin Fever : 기회는 세 번

by R.H. 2009. 8. 26.

 

<주의! 스포일러>

 

운명 VS 자유의지

 

이번 에피는 로크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로스트에서 운명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면 조언자가 등장한다. (헐리의 운명에선 데이브, 데스몬드의 운명에선 백발 아줌마와 수도원 신부) 이번 에피에서는 로크의 조언자로 세 남자가 등장한다. 갓 태어난 로크를 지켜보는 리쳐드 알퍼드. 이 남자는 로크의 첫번째 조언자다.

 

첫 번째 기회

 

친 엄마에게 버림받고 남의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로크를 찾아온 한 남자. 리쳐드 알퍼드다. 특수 영재 학교 입학과 관련 있다면서 그는 로크 앞에 물건들을 펼쳐 보인다.

 

리쳐드 : Which of these things belong to you?  (어느 물건이 너에게 속한 것이니?)
로크 : To keep? ( 가지고 싶은 거요? )
리쳐드 : No, no, John Which of these things belong to you already? (아니, 너에게 이미 속한 물건들이 뭘까?)

 

로크는 모래가 담긴 작은 유리병과 나침반을 집어 든다. 그리고 책을 쳐다보는데, 순간 칼을 본다. 그리고는 날름 칼을 집어 든다. 우리는 로스트 첫 회부터 알았다. 칼이야말로 로크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물건이라는 것을... 칼하면 로크, 로크 하면 칼 아니던가.  나는 이 장면을 처음 보면서 '로크가 자신의 물건을 제대로 집었군' 이라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그런데. 리쳐드는 매우 짜증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차갑게 칼을 낚아채버린다. 당황스럽다. 그렇다면 로크의 마지막 물건은 책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로크의 모습과 책은 전혀 매치 되질 않는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로크에게 속한(belong) 물건이라 함은 로크에게 이미(already)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즉, 로크의 운명(destiny) 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로크는 자신에게 주어진 물건(운명)을 잡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싶은(to keep) 물건인 칼을 선택한다. 로크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은 살기로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로스트에서 본 로크는 위의 물건들 (모래 유리병, 나침반, 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위의 3가지 물건들은 과학과 이성을 상징하는 물건들이다. 놀랍게도 본래 로크의 운명은 직관의 인간이 아닌 과학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대 반전이다.]

 

두 번째 기회

 

청소년이 된 로크는 학교 생활이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그에게 호의를 베푸는 선생님. 그는 로크에게 여름 과학 캠프에 참여할 것을 권한다. 포틀랜드에 있는 과학과 신기술을 연구하는 회사의 알퍼트 박사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포틀랜드는 벤자민이 태어난 곳이고, 줄리엣을 스카웃한 연구사가 있다는 곳이다. (나중에 그곳에 없는 걸로 판명이 나지만) 그런데 알퍼트 박사라니... 그는 바로 로크가 갓 태어났을 때 창 밖에서 조용히 지켜본 남자이자, 로크의 어린 시절 물건을 가지고 테스트한 바로 그 남자다.

 

[3-20 The Man Behind the Curton 에피에서 벤자민의 출생 장면. 벤자민이 태어난 곳은 포틀랜드에서 32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로크 : I'm not a scientist! I like boxing and fishing and cars. I like sports!
선생님 : You might not want to be that guy in the labs surrounded by test tubes and beakers. But that's who you are, John. You can't be the prom king. You can't be the quarterback.You can't be a superhero. 
로크 :Don't tell me what I can't do.

 

이번에도 로크는 과학을 권유 받는데, 그는 권투, 낚시, 자동차를 원한다고 소리친다. 이번에도 그는 자신의 운명인 과학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와 선택을 따른다.

  

그리고 운명을 대한 거부 결과는 참혹하다. 로크는 친아버지에게 신장을 빼앗기고, 8층 건물에서 떨어지는 변을 당해 하반신 불구가 된다. 또한, 그의 의지, 소망과 달리 그의 삶은 시시한 마트 점원이고, 박스회사에서 동료의 놀림거리일 뿐인 무능력한 사람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한 결과는 끔찍하고 절망적이었다. 이제 세 번째 기회가 왔다.

 

세 번째 기회

 

하반신 불구가 되어 걷지도 못하는 그에게 "Walkabout" 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라고 권하는 이상한 남자. 이것이 로크의 운명이란다. 그런데 이번에 로크는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로크는 자신의 선택과 의지가 철저하게 망가진 뒤 그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이해했다. 이제 섬에서의 이야기를 보자.

 

운명은 지랄 맞다.

 

로크는 어두운 오두막에 제이콥을 만나기 위해 홀로 들어가는데, 그곳에 제이콥은 없다. 대신 잭의 아버지 크리스챤이 있다.

 

존 로크 : You know why I'm here?
크리스챤 :Sure. Do you?
존 로크 : Sure. I'm here because I was chosen to be.
크리스챤 :That's absolutely right.

 

위의 대화에서 로크는  "I chose to be." 가 아닌 수동문장 "I was chosen to be." 라고 말한다. 수동형 문장을 사용한 점에 주목해 보자. 이는 그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운명의 부름을 받아 들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에서 재미있는 점은 로크가 질문하고, 로크가 대답했다는 점이다. 위의 대화를 자세히 보자. 로크가 묻는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아세요?" 크리스챤은 로크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해준 게 없다. 되려 반문한다. " 당신은 압니까?" 그리고 로크의 질문(첫 문장)에 답을 한 것은 결국 로크 자신이다. 삶의 문제를 묻는 것도 나요. 답하는 것도 나요. 깨닫는 것도 나인 것이다..

 

위 장면은 두 가지로 해석 할 수 있다. 첫째, 운명은 쉽게 답하지도 길을 보여주지도 않고, 스스로가 깨닫게 한다는 점이다. 로스트에서 벤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과 유사하다. 벤은 당사자가 원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데, 결국에는 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운명은 당사자가 원해서 따르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에는 운명이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로크가 태어난 순간 그를 섬으로 데려올 수도 있었다. 어차피 그의 친 엄마는 그를 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로크가 어린이였을 때 특수 영재 교육을 한다면서 섬으로 데려올 수도 있었다. 어차피 양엄마는 로크를 귀찮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운명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에는 운명을 따르게 만든다. 이것은 운명의 교묘한 술책이다. 막말로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계속해서 선택하던 로크가 마지막에는 운명을 선택했다. 이것이 과연 로크의 완전한 자유의지일까? 그렇다고 운명의 윽박지름도 아니다. 운명은 얼마나 교활한지...

 

두 번째는 오두막에서 로크가 스스로를 마주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이와 유사한 장면이 3-19 에서도 나오는데, 소이어는 어두운 해적선에서 또 다른 소이어를(로크의 친아버지) 마주한다. 마찬가지로 로크는 어두운 오두막에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대면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화에서는 운명이 얼마나 질기고 독한지 보여준다. 벤의 말처럼 운명은 지랄 맞다. 자신의 운명에 맞서고, 자신에게 주어진 경로를 억지와 오기로 벗어나려 할 때 삶은 불상사와 불행일 뿐이라고 말한다. 로스트 캐릭터 가운데 로크만큼 강한 의지의 인간은 없다. 그런데 그의 의지가 강한 만큼 그의 삶은 처참히 부서졌다. 그의 삶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다. 이는 중요한 시사점이다. 제아무리 강인한 인간도 결국은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위의 세 남자는 이번 에피에 나오는 로크의 조언자들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뚫어져라 응시한다면 한번쯤은 고민해보라. 그 누군가가 당신의 영혼을 향해 당신의 운명을 조언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를 일이니... 그리고 명심하라. 운명은 지랄 맞을 뿐만 아니라 교활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