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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3-19 The Brig : 과거청산

by R.H. 2009. 8. 26.

최초 작성일 : 2008/12/14 12:23

 

<스포일러 주의>

 

 

 [죽음 앞에 의연하고, 로크와 제임스를 조롱하는 소이어는 그들 의식 안에 있는 자신들의 일부로서 나약함과 비도덕에 대한 상징이다.]

 

톰 소이어 : 의식 속 어두움에 대한 메타포어  


존 : 이게 도대체 뭡니까?
벤 : 당신이 말해보는 게 어떨까요. 당신이 그를 이곳에 데려왔습니다.
존 : 난 그를 데려오지 않았어요. 어디서 그를 찾았죠? 왜 데려 온 겁니까?
벤 : 이미 말했잖아요. 우리가 데려온 게 아니라고.

  

로크가 문을 열었다. 어두침침하고, 협소한 방에는 그의 아버지가 재갈 물린 채 감금되어 있다. 로크는 당황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런데 벤이 말하길, 로크의 아버지(톰 소이어) 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로크란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말인가?

 

벤 : 존, 당신은 아직도 절름발이에요. 당신이 이 섬에 오기전의 한 남자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서 말입니다. 당신 아버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당신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어요. 왜 당신이 그(아버지)를 이곳으로 데려왔을까요?
존 : "마술 상자" , 벤, 당신이 나에게 설명하는 게 어떻겠소?
벤 : "마술 상자" 는 하나의 은유적 표현입니다.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와 준비가 되었다는 걸 보여주기 전까지 난 당신에게 아무것도 보여 줄 수 없어요. 사람들이 이 섬에서 우리와 함께하고자 할 때 그들은 우리에게 서약의 자유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이 당신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이유죠.

 

톰 소이어, 로크의 아버지. 그러나 원수만도 못한 존재. 섬 밖에서 그는 로크의 신장을 빼앗고, 이용하고, 심지어는 창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지금 섬에서 로크는 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임무가 생겼다. 왜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가? 단순히 로크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이번 화에서 로크의 아버지(톰 소이어)는 재갈 물려 있고, 감금되어 있으며,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에 놓여있다. 여기서 톰 소이어라는 인물을 살펴보자. 그는 평생 남을 속이고, 사기치고, 타인의 삶을 파멸시키는 일만 해왔다. 한마디로 그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절대이기주의, 비열함, 그 자체다.

 

그런데 이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의연하고 당당하기 까지 하다. 이게 말이 되냐는.. 로스트에서 말이 안 되는 상황은 상징이다. 벤이 말했듯이 이 모든 상황은 하나의 은유적 표현이다. 즉, 톰 소이어는 하나의 메타포어다.

 

톰 소이어 : 로크 내면의 나약함, 자기연민의 상징

 

톰 소이어는 로크의 의식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는 내면의 덫이다. 즉, 톰 소이어는 로크 안에 자리잡고 있는 기억의 일부이며, 어두운 과거의 조각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또한, 아버지 품 안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로크의 나약함과 자기연민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모든 상황과 톰 소이어라는 인물을 하나의 상징이라 생각하고 맨 처음 장면을 다시 보면, 톰 소이어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디아더스가 아닌 로크 자신이 맞다. 저 어두운 골방은 바로 로크의 기억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는 어둠의 공간이다. 즉, 톰 소이어는 로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는, 로크의 나아감을 방해하고, 로크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있는 로크 내면의 덫이다.

 

이것이 바로 로크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이유다. 로크는 자신의 내면에 늘러 붙어있는 어두움을 떨쳐내야 한다.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은 스스로를 극복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벤과 디아더스 무리들은 로크에게 아버지를 죽이라고 요구하는가?

 

로크가 디아더스 무리에 합류했을 때 사람들은 매우 흥분했다고 한다. 아마도 로크를 새로운 지도자로 여기는 듯 하다. 그런데 이런 로크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집착이 늘러 붙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아버지에 대한 집착은 로크의 나약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지도자는 나약해서는 안 된다. 지도자는 누군가의 품에 안주하고, 등뒤로 숨는 자가 아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품고, 앞에 나서는 사람이다. 따라서 디아더스들은 로크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모습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 이제 로크가 이들과 함께 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아버지(내면의 나약함)를 떨쳐내야 한다. 그는 제임스를 매개로 한 간접살인을 결심한다. 제임스는 소이어의 본명이다. 이번화에서는 그를 제임스라 부르기로 한다.


 

<로크를 따라나선 제임스는 맨발로 정글을 헤쳐나가고 있다. 그는 지금 성장의 과정을 고통스럽게 거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정의 중간에 발을 식히려 냇물에 발을 담그는 제임스. 그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있는 여정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톰 소이어 : 제임스 내면의 비도덕과 이기심의 상징

 

로크 : 왜 "소이어" 라는 이름을 선택한 거죠?
제임스 : 왜 나인 거요? 왜 당신이 직접 하지 않는 거요?
로크 : 제임스, 제발...
제임스 : 날 제임스라고 부르지 마!

 

제임스는 그의 가정을 파괴시킨 한 사기꾼에 대한 증오를 뼈 속 깊이 새기고자 소이어라는 가명을 가지고 살아왔다. 동시에 자신이 증오했던 그 소이어라는 남자처럼 사기꾼으로 살아왔다. 제임스에게 소이어라는 이름은 절망스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며, 사기꾼으로 살아 온 내면의 비도덕과 이기심 같은 추악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상징이다. 소이어는 제임스의 일부로, 그의 성장을 가로막는 내면의 덫이 되어버렸다. 제임스 역시 소이어를 떨쳐내야 한다. 소이어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있는 모든 부정의 찌꺼기들을 없애야만 한다.


 

<로크가 제임스를 데려온 음침하고 황폐한 해적선. 이 어두운 공간은 제임스의 의식 저편에 있는 공간인데, 그 안에서 또 다른 소이어를 마주한다. 소이어는 자신의 과거와 부정적인 모습들을 나타내는 제임스의 일부다. 즉, 제임스가 스스로를 대면하는 것.>

 

톰 소이어를 죽이는 것은 자신 안의 부정을 죽이는 것

 

톰 소이어를 죽이는 것은 로크와 제임스에게 있어서 과거를 털어내는 과정이다. 내면의 나약함, 자기연민, 비도덕, 이기심.. 이러한 내면의 찌꺼기들을 소탕해야만 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의 어두움에 붙들려 있다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계속해서 그 덫에 속박되어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섬은 로스터들에게 성장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은 힘겹게 그 과정을 거쳐나가고 있다. 로스터들은 자신을 부수고 자신을 송두리째 흔드는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의식은 성장하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그의 어두운 과거를 상징하는 아버지의 시체를 어깨에 들쳐 메고 나아가는 로크.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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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역시도 성장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털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사회의 절망스럽고 추악했던 과거를 말끔하게 청산한다는 것은 로크와 제임스가 자신들의 과거의 찌꺼기를 청산하는 것보다 몇 백 배 파괴적이다.

 

우리 사회는 과거를 말끔히 쓸어냈는가? 그 어둡고도 절망적인, 추악한 과거를... 우리는 과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로크와 제임스처럼 몸은 성장했을지언정 의식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까? 경제성장으로 몸집이 큰 것을 보고 사회의 의식 역시 성장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 고통의 과정을 피하고자 어설픈 과거와의 화해를 하고만 것은 아닐까? 지도자는 추악한 과거와 화해하는 자가 아니라 로크처럼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는 자다.

 

우리는 톰 소이어로 대변되는 나약함, 자기연민, 열등감, 비도덕, 절대악을 쓸어냈느냐는 말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과정을 회피한다면 그 사회는 계속 의식 안에 어두움의 찌꺼기를 품은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찌꺼기를 품고 사는 사회는 썩기 마련이다. 작금의 비이성, 비합리의 광폭함은 아직도 우리가 과거의 어둠을 쓸어내지 못하고 품고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