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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1-20 Do not harm 때론 물러서야 한다.

by R.H. 2009. 8. 24.

<강력 스포일러 주의>

 

최초 작성일  2008-08-31 11:51:55 

   

포기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이번화의 핵심 문장은  "You can still back out." <지금이라도 물러설 수 있어.>

 

지난 19에피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분은 회복 불능 상태다. 폐는 짓눌렸고, 다리는 골절되어 피가 몰리고 있다. 숨쉬기 조차도 힘든 상태다. 그런데 잭은 분에게 말한다. "I'm gonna fix you, save you." 
  



플래쉬 백. 섬 밖에서 잭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는 소생 불가능한 여자를  기적적으로 살려냈고,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그녀와 결혼을 하려 한다. 그런데, 잭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 보이고,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잭이 결혼을 결심한 건 그녀에 대한 사랑이 아닌 동정심 때문이었고, 잭의 신실함(commitment) 때문이었다. 잭 자신도 그것을 아는 것 같다. 이런 잭에게 그의 아버지는 말한다.

 

"Commitment is what makes you tick, but the problem is you're just not good at letting go. "

<신실함은 너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지. 단지 문제가 되는 건 넌 물러서는 법을 몰라.>

 
잭은 신실하고 성실하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완벽주의자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살아왔다. 그에게 있어서 포기란 없다. 잭에게 포기란 실패다. 포기하는 것, 물러서는 것이 꼭 실패인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집착한다. 손에서 놓아 주는 걸 하지 못한다. 잭의 성실함과 완벽주의는 집착으로 변질되고, 이는 잭 자신을 옭아맬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고통이 되는 것이다. 잭은 물러설 시간이 있었음에도 결혼을 감행한다.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 이지만, 결국 그의 결혼은 망가지고, 종국에는 그 여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이것은 섬 밖에서의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섬에서 상황. 회복 불능인 분에게 잭은 또 다시 무리한 약속을 한다. 고쳐내겠다 살려내겠다고... 이번에도 잭은 자신이 한 약속에 집착한다. 그래서 심지어 마취도 없이 분의 썩은 다리를 잔인하게 잘라내려 한다. 그의 성실함이 오히려 타인을 극단의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인 분과 잭만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까지도...

 
잭이 다리를 절단하려는 순간 분은 잭을 제지한다. "I know you made a promise. I'm letting you off the hook." 그리고 분은 숨을 거둔다.
 

절대 포기 못하는 것,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는 신실함. 분명 아름다운 가치임에도 이것이 때론 극단의 고통을 가져온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리더는 때론 자신의 약속을 번복하기도 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는 포기와 물러남, 그리고 번복도 필요하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탄생과 죽음

  
이번 에피에서 또 하나 눈 여겨 볼 장면은 클레어의 출산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분이 숨을 거두는 시간에 클레어가 아이를 낳는다. 굳이 분이 죽는 순간 아이가 태어나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답은 '그렇다' 이다.

로스트는 업보와 윤회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이 탄생과 죽음의 순간을 동시에 발생시킨 건 우연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적인 배치다. 삶은 돌고 돈다. 삶과 죽음은 끊임없이 교차되고 반복된다, 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분이 죽는 날 밤 그의 이복 동생 쉐넌은 사이드와 함께 밤을 지샌다. 그들이 함께 있지만 지나치게 진도 나가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분의 죽음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해서 작가가 수위를 조절한 게 아닌가 한다. 혹은 쉐넌에게 너무 모욕적이거나.

 
어쨌든 분은 자신이 사랑하는 쉐넌에게 남기고 싶은 말조차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숨을 거둔다. 철저히 혼자서....죽는 건 혼자인 거다. 같은 시간에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새로운 사랑을 찾고, 그리고 누군가는 홀로 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