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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로스트

로스트 1-18 Numbers : 진실 따윈 필요 없어. 내 말 좀 들어줘.

by R.H. 2009. 8. 24.

<스포일러 주의>

최초 작성일 2008-08-28 13:52:45

 

뚱뚱보 헐리는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따뜻한 심성을 가진 캐릭터다. 섬 밖에서 평범하고 펑퍼짐한 삶을 살던 헐리는 한때 수감되어 있던 정신 병원에서 반복해서 들었던 숫자를 복권 번호로 사용하면서 일이 시작된다. 그는 그 번호로 복권에 당첨되지만,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나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헐리는 그 숫자가 저주받았다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숫자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호주까지 간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복권 넘버가 저주받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다. 회계사도, 엄마도, 심지어 헐리처럼 그 번호를 사용했다가 불행을 겪은 남자의 부인까지도... 저주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섬에서 사이드가 루소의 처소에서 가져온 메모에 적힌 그 번호를 발견한 헐리는 다음날 루소를 직접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마침내 루소를 만난 헐리는 그녀에게도 번호에 얽힌 불행을 말하는데... 이제까지 모든 사람들은 헐리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루소는 말한다. "어쩌면 당신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 번호가 저주 받은 걸지도..." 이 말에 헐리는 감격하면서 고맙다고 너무 고맙다고 한다.


숫자의 진실은 모른다. 루소가 한 말은 단순히 헐리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 뿐, 그녀 역시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왜 헐리는 루소에게 고마워할까?


헐리가 찾아 헤맨 건 숫자의 진실이 아니었다. 자신의 말에 동의해 줄 사람, 수긍해 줄 사람, 믿어줄 사람을 찾아 헤맨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에게 철학이나 종교가 말하는 진리가 뭔 대수란 말인가. 나 역시도 내 삶에서 찾아 헤매는 것은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 내 말을 들어 줄 사람, 내 말을 이해해 줄 사람인 것이다.

 
역으로 내가 타인에게 해줘야 하는 것은 설교나 허접한 충고 따위가 아니다. 나와는 다른 타인의 이야기를 진중히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타인에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듣자. 그리고 때론 수긍해주자.

 
이번 에피의 마지막 장면. 찰리는 자신이 섬 밖에서 마약 중독자였다고 헐리에게 털어놓으면서 넌 밖에서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 이에 헐리는 섬 밖에서 억만장자였다는 진실을 말하는데, 찰리는 버럭 화를 낸다.

 
"난 내 영혼을 내보였는데, 넌 고작 농담 따위나 들려주는 거야!"

 한숨 쉬는 헐리. 찰리 좀 믿어주면 어디가 덪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