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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카드로 만든 집 : 타인의 세계에 들어 간다는 것

by R.H. 2009. 8. 16.



<주의, 스포일러>

 


"People don't die. They go to one home to another. The children who can see but they could use only inside in their dream where there are no words. It is easy to see without words.They see the world as it really wants to be."

 

<사람은 죽지 않아. 집을 옮기는 것 뿐이야. 그 아이들은 꿈에서만 볼 수 있어. 꿈은 말이 없는 세상이지. 말을 하지 않으면 더 잘 보이거든. 그들은 진짜 원하는 세상을 보는 거야.>



샐리는 왜 말하지 않는 걸까?

 

샐리의 아빠는 마야 유적지 복원 작업 도중 사고사 했다. 그리고 그 곳의 한 멕시코인은 샐리의 아빠가 달나라로 이사 간 것이라고 말해준다. 샐리는 지금 현실에서 눈을 뜬 채 말이 없는 세상인 꿈 속에 있다. 그 안에서 죽은 아빠를 보기 원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박사는 샐리가 자폐아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확실히 샐리는 자폐아가 아니다. 순수하고 매우 영적이어서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에 다가가기 위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샐리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단순히 이사가는 것이다. 그녀 역시 이사가고 싶은 것이다. 아빠를 만나기 위해... 왜냐하면 그녀가 현실에서 사는 집은 샐리에게는 어색한 장소다. 멕시코를 떠날 때 샐리가 하는 말에 힌트가 있다.

 

" I don't remember home."

 

아빠가 없는, 그리고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집보다 아빠가 이사 간 달나라에 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달나라에 가기 위해 카드로 집을 만든다. 정확히 말하면 달나라에 이르는 계단을 만든다.

 

샐리의 세계로 들어가기

 

먼저 외부인이 보는 샐리를 보자. 외부 세계 시스템의 대변인인 심리학 박사는 샐리를 자폐아로 규정한다. 그래서 외부 세상의 방식으로 샐리를 '치료' 하고, '샐리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상' 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다. 샐리의 방식이 아닌 외부의 방식으로...

 

샐리는 이런 강압적인 방식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한다. 자신의 몸을 나무 색깔로 칠하고 나무에 숨어 버리는 것이다.

 

샐리의 엄마는 샐리가 자폐아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원래 샐리는 무려 3개 국어나 할 줄 아는 영특한 아이라면서... 샐리의 엄마는 '샐리의 세계'에 직접 들어가려 한다. 박사가 끄집어내는 방식을 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샐리가 왜 카드로 집을 만들었는지, 그 이면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샐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들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샐리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해서 전하려는 이야기가 없다는 뜻은 아니라며 샐리가 만든 카드로 만든 집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가상 현실'속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그녀는 샐리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샐리의 카드로 만든 집 중간에 떨어지는 남자가 있고, 꼭대기에 달이 있다. 그녀는 샐리가 하는 하고 싶어하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녀는 가상 현실의 중간 단계를 거쳐 집 뒤뜰에 실제로 달나라에 이르는 집을 만들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는 '샐리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말을 하지 않는 그 세계에서 샐리의 언어로 샐리와 대화한다. 그리고 샐리는 엄마와 함께 '자신의 세계'를 나와 '현실의 세계'로 되돌아온다.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소통한다는 것은 이렇게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평범함은 위대하다.

 

영화에서 샐리의 엄마는 치료 기관에서 일부 아이들이 소수(prime number)로 대화한다는 걸 발견하고 그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외부의 그 누구와도 대화 하지 않던 그 아이들은 아주 가볍게 그녀를 받아들이고 소수로 같이 대화하고, 쿠키까지 나눠준다.

 

소수(prime number), 자신과 1 외의 숫자로는 나눠지지 않는 배타성과 견고함을 가진 숫자. 그러나 그 배타적인 숫자도 나누어 지는 숫자는 있다. 그 자신과 1 말이다. 그녀는 그 1을 이해한 것이고, 그들의 세계 속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박사는 이런 그녀에게 화를 낸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다른 것이 아니라 신발 끈을 혼자 묶고, 자신의 이름을 말 할 줄 아는 것, 사람과 따뜻하게 포옹할 줄 아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그녀의 행동이 그 아이들을 더욱 더 '그들의 세계' 속에 속박시킬 위험한 행동이라고 역정 낸다. 그리고 매우 의미 심장한 말을 한다.

 

"Nomalness is awesome! " <정상인 게 얼마나 대단한 건 줄 알아요!>

 

사람들은 남보다 특출 나고 두각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평범한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 왜 우리는 평범함의 축복을 고마워하지 않고, 어리석게도 특출남의 고통을 부러워하는 걸까? 샐리는 자신만의 특출 난 세계에서 현실의 평범함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가지면서 영화는 끝난다. 평범함은 감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