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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드리뷰

시그널(2016)-과거가 우리를 부른다

by R.H. 2016. 3. 24.






"사람은 과거에 의해, 과거에 의지하여 과거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삶에 있어서 뒤가 없는 앞이란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과거가 없는 인간은 늘 실종상태임을 의미한다. ...모든 존재의 비의와 신성은 과거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한시 바삐 과거를 복원해야 한다. 매일매일 모래 위에 시간의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윤대녕,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과거의 사건들. 그 안에는 약자들의 고통과 억울함이 있다. 그들은 시간 속에서 늘 실종상태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그 시그널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듣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가진 역사의 강자들은 상처에 민감하지 않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들을 필요도 없다.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상처와 고통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상처와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약자인 우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힘이 없다. 과거를 복원할 힘이 없다. 과거의 억울함이 보내는 시그널을 듣는다 할지라도 그 신호에 응답할 힘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잊는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사람은 살아야하지 않느냐, 는 그럴싸한 유혹의 소리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인셉션의 주인공 코브가 과거의 고통을 기억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살아가기에 시간 속에서 제자리를 맴도는 실종자가 되었던 것처럼, 과거의 그들만이 아니라 고통의 기억을 밀쳐두고 사는 우리 역시 시간 속의 실종자인 것이다.


과거를 복원하는 일.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목숨이 위협받고 누명을 뒤집어쓰며, 온 몸에 부서질 것 같은 질주를 해야하는 것이다. 내 삶이 통째로 흔들리고 부서질 수 있는 일이다. 드라마 시그널이 그 위험을 보여줬다. 과거의 신호에 응답한 댓가는 실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의 무전이라는 환타지스런 설정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설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를 보여줬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죽는지 알면서도 이재한 형사는 달려들었다. 드라마는 그들이 수십 수백번의 시그널을 주고받았다는 암시를 한다. 시간을 맴돌며 끊임없이 실패만을 거듭하며 시간 속에서 방황하는 실종자로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끝없는 용기와 포기하지 않겠다는, 끝까지 가겠다는 집념은  마침내 작은 변화를 이뤄냈다. 이제 미래로의 새로운 한발을 내딛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