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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사무엘상 31장 : 사울의 죽음

by R.H. 2011. 8. 1.
사울의 죽음

Saul took his own sword and fell on it. 사울이 손수 칼을 뽑아 자결하였다. <사무엘상 31장 4절>

다윗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던 두 번의 사건 이후, 사울의 정신은 급속도로 무너져내린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에게 억울함을 호소한다. '내가 사울 당신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 이리 나를 모함하는가, 억울하다." 라며.. 이런 다윗의 호소에 사울은 다윗을 '내 아들아' 라 부르며, 다윗이 다음 왕이 될 것이라고 인정한다. 사울이 어딘가 모르게 자포자기한 듯한 모습이다.

이후 블레셋군이 진을 친 것을 본 사울은 매우 겁 먹고는 무당을 찾아가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내온다. 사울이 매우 지쳐있으며, 정신이 부서지기 일보직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의 세 아들 모두 죽고, 전세가 기울어지자 사울은 자살한다. 이 후 블레셋군은 사울의 목을 잘라 시체를 성벽에 못 박아두고, 갑옷은 벗겨 자신들의 신전에 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길르앗 사람들이 밤에 몰래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빼와 화장해서 야베스에 묻는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이렇게 끝났다..

좋을 땐 누구나 웃을 수 있다

사울.. 그는 과연 어떤 인간이었을까? 그저 다윗을 질투한 미치광이로만 묘사하는 것은 그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하는 건 아닐까.. 다시 그의 청년 시절을 생각해보자.

청년 사울은 겸손한 사람이었다. 사무엘의 지목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의 집안이 별 볼일 없다며 자신을 낮추었다. 그는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왕에 등극했을 때, 그를 지지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면전에서 모욕을 당해도 훗날을 기약하며 참고 또 참았다. 무엇보다 그는 너그러운 아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권력을 완전 장악한 후, 그는 정치 보복을 종용하는 측근들을 말렸다. 이 좋은 날을 즐기자면서..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지닌 지도자란 말인가.. 그런데..

이랬던 그가 사무엘이라는 거대 권력과의 결별 이후, 급격히 변한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별 것 아닌 것에 초조해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울이 미치광이가 되버리는 건 다윗의 등장이었다.

다윗이 단순히 잘난 부하여서 사울이 미친듯이 죽이려든 게 아니다. 잘난 다윗을 처음에는 매우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다윗의 뒤에 사무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다윗에 대한 사울을 감정이 180도 변했을 것이다. 다윗은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준 사람이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한마디로 왕으로 임명되었다는 말이다. 사울과 다윗은 결단코 공존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이들의 싸움은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몸서리치게 비정한 권력 싸움이다.

겸손하고, 인내심 많고, 관용을 베풀던 자가 이렇게 변해버렸다. 좋을땐 누구나 웃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밥그릇이 뺏기고, 자기 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에 마주치게 되면, 겸손은 오만으로, 인내는 초조로, 관용는 불관용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지 않을 때도 웃을 수 있는 자가 진짜 난 인물이다. 

사울이 소소한 세력을 가진 평범한 남자로 살았다면, 꽤 괜찮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좋은 남편, 자상한 아버지, 너그러운 주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그릇에 맞지 않는 자리에 오른 것이 그의 인생에서 최대 실수였던 것일까.. 

빛나는 모습으로 등장해, 파국을 향해 달려가, 종국에는 비극으로 삶을 마친 사울. 이런 그를 자꾸만 두둔해주고 싶은 건 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