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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사무엘상 24장, 26장 : 죽이고자 하면, 죽일 수는 있으나..

by R.H. 2011. 7. 11.
the LORD forbid that I should lay a hand on the LORD's anointed. <사무엘상 26장 11절>
"The LORD forbid that I should do such a thing to my master, the LORD's anointed, or lift my hand against him; for he is the anointed of the LORD." <사무엘상 24장 7절>

사울 왕을 제 손으로 죽일 절호의 기회가 다윗에게는 두 번 있었다. 부하들은 사울을 죽여버리자고 하지만, 다윗은 부하들을 만류하면서 말한다. 사울은 '신께서 기름 부은 자' 이기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기름 부음 받은 자' 라는 말은 왕이 될 자격과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말인데, 다윗은 이러한 사울의 권위를 지켜주고자 한다. 이는 단지 충의때문이 아니다. 기름 부음 받은 사울의 권위를 지켜주는 모습을 다윗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권위 역시  지켜내기 위함이다. 지금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사울과 다윗 뿐이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쨌든간에 지금 사울은 왕이고, 다윗은 역적이다. 그런데 다윗이 제 손에 피를 묻혀 버리면, 다윗이 역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왕의 자리는 단순히 죽고 죽이는 문제만이 얽혀 있는 것이 아니다. 힘으로만 유지되는 자리도 아니다. 그 자리에 오르는데는 분명 힘이 필요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명분과 권위도 필요한 것이다.

다윗이 지금 갑갑한 마음에, 하루라도 빨리 왕이 되고 싶은 마음에, 사울을 제 손으로 죽인다면 이는 훗날 제 발목을 잡는 덫이 된다. 그런식으로 다윗이 왕이 된다면, 훗날 다윗에게 도전하는 반역자들을 무슨 명분으로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힘으로만 막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도 필요한 것이 권위와 명분이요, 후일에 필요한 것도 권위와 명분이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동굴에서는 사울의 옷자락을 찢어오고(24장), 군막에서 사울의 창과 물병을 가져온다.(26장) 즉, 다윗은 자신이 죽이고자하면,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과시하면서, 그럼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알려, 자신이 충의를 아는 의로운 자임을 선전한 것이다. 게다가 다윗은 역적이라기보다는 핍박받는 희생자라는 동정론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다윗의 처지가 갑갑한 것은 사실이다. 명분은 너무도 중요하니 제 손으로 사울을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울이 늙어 죽기만을 기다리며, 끝도없이 도망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해서 다윗은 적국으로 망명하는 악수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