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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사무엘상 12장~15장 : 사울 vs 사무엘

by R.H. 2011. 4. 26.

성경에 기록된 사사 중에 공식적으로 은퇴한 사사는 여지껏 없었다. 그런데 사무엘 이후로 사사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왕정이 시작된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이자 최초로 살아 생전 은퇴한 사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몇 십년간 권력의 꼭대기에 있던 자가 순순히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었을까. 권력의 맛을 안 사람이? 

그래서 그가 사울을 왕으로 지목한 것은 권력을 계속 붙들고 있으려는 그의 속내와 맞물려 있다. 스스로가 밝혔듯이 사울은 가장 약한 지파인 베냐민 지파 출신에다가 그 집안 역시 별 볼일 없었다. (사무엘상 9장 21절) 한마디로 사울을 꼭두각시 임금 세워놓고, 사무엘이 뒤에서 권력 행사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사울은 왕이 되고도 들판에 소 끌고나가 농사일 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무는 사무엘이 봤을 것이다. 

게다가 사울이 취임할 때,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사울 면전에 대고 모욕을 줘도 사무엘은 나서지 않았다. 앞에 나서서 그런 세력을 꾸지람 할 만 한데도 말이다. 그저 사울 홀로 그 모욕을 침묵으로 인내할 뿐이었다. 사무엘은 권력을 내놓을 맘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자신의 아들들의 비리와 백성들의 왕정에 대한 욕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왕을 세운 것 뿐이다. 사무엘은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면서, 권력을 장악해 나간다. 한쪽 권력이 커지면, 다른 한쪽의 권력은 수그러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마도 사무엘은 등떠밀려 정계은퇴를 선언했을 것이다. 여튼, 사무엘 12장은 바로 사무엘의 은퇴 고별사다.

하지만 여전히 사울은 사무엘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울 만큼의 파워를 가진 인물이며, 평생에 걸쳐 제사장과 사사로 살아온 정치 9단의 고수다. 한마디로 여전히 최고 조직과 인맥을 가진 인물인 것이다. 해서 사무엘은 여전히 대제사장직을 수행한다. 이제 그들은 권력을 양분한 것이다. 정치는 사울이, 종교는 사무엘이..

하지만 사이좋게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건 불가능하다. 이 둘 사이는 조금씩 조금씩 금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금이 쩍하고 크게 벌어진 사건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일어난다. 전쟁 전에 사무엘은 번제를 올리러 사울 진영에 오기로 하는데, 약속 한 날짜에 그는 오지 않는다. 이에 사울이 직접 번제를 올리고 전쟁을 시작한다.

나중에야 도착한 사무엘은 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한다. 그러자 사울은 사무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자신의 진영에 집결한 군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하는데, 사무엘은 나타나지 않고, 적들은 진격 태세를 갖추어, 부득이하게 사울 자신이 번제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사무엘은 사울의 왕국이 길게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폭언을 남기고 떠나 버린다.

그런데 사울이 크게 잘못한 것일까? 전쟁을 목전에 두고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사무엘의 잘못은 없는 걸까? 아니, 사무엘이 고의적으로 꾸물댄 건 아닐까? 아마도 이 사건 이전부터 이미 두 사람의 관계가 삐걱거렸을 것이다. 이 사건은 그저 그간의 상처가 겉으로 드러난 것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두 사람이 완전히 등을 돌리는 사건이 발생하니.. 그것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벌어진다.

사무엘은 신의 이름으로, 사울에게 아말렉을 공격하고, 아말렉의 사람과 가축을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명한다. 사실, 사무엘의 명령이다. 여튼 사울은 이 명령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데 그는 아말렉에서 좋은 가축을 없애버리지 않고 가져온다. 이를 안 사무엘은 진노한다. 그러자 이번에도 사울은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좋은 가축만 좀 남겼을 뿐 나머지는 모두 없앴다, 그리고 가축을 가져온 이유는 번제에 올리려고 했던 것 뿐이다, 백성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주지 않으면 성을 낼 것이니 백성들이 무서워서 그랬다...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번에 사무엘의 분노는 완전 폭발이다. 그는 사울에게 무시무시한 말들을 하며, 종국에는 너는 더이상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고 선언해 버린다.(The Lord rejected you as king over Israel ! 사무엘상 15장 26절) 

사실 이번 건도 사무엘이 저리 분노할 정도인가 싶다. 게대가 전쟁에서 승리한 상황 아닌가. 아마도 그간 쌓이고 쌓이던 서로간의 앙금이, 사소한 사건으로 터져버린 것이다. 잔의 물이 넘치기 전의 마지막 한 방울이었던 것이다.

여튼 이에 사울은 사무엘에게 잘못했다 빌지만, 사무엘은 돌아서서 나가버린다. 이때 사울이 얼마나 사무엘에게 간청했던지 돌아서서 나가는 사무엘의 옷을 붙잡다가 그만 옷이 찢어져버린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 날 이후로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는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무엘이 열받아서 사울 얼굴 안보고 초야에 묻혀 살 사람일까? 전혀.. 그는 새로운 인물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바로 물밑 작업 들어간다. 그 새로운 인물은 바로 다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