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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민수기 20장 : 애런의 죽음

by R.H. 2009. 12. 26.

 

 
성경을 읽다 보면, 약간 짜증나는 점이 있다.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인물 앞에 꼭 누구 누구의 아들이란 말이 붙어있다. 앞서 나온 사건의 고라(Korah)만 해도 아버지, 조부, 증조부, 고조부..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라가 뭐 대단한 인물이냐. 그것도 아니다. 고라 반역 사건에만 잠깐 나오는 인물이다. 
그런데 애런에게는 이런 수식이 없다. 그래서 명문가 아들 고라가 꼬투리 잡아 들고 일어났겠지만...

 

헌데 더 이상한 점이 있다. 바로 모세 앞에 이런 수식이 없다는 점이다. 신약의 수퍼 스타가 예수라면, 구약의 수퍼 스타는 모세다. 마태복음 첫 장을 보면, 예수 족보 읽다 지칠 지경이다. 그런데 모세는 뉘 집 자식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레위 집안의 남자가 레위 집안의 여자랑 결혼해서 애를 낳았는데, 소쿠리에 담아 나일강에 떠내려 보냈다는 게 전부다. 그리고 유모로 모세의 엄마라고 추정되는 사람이 들어온다. 당연히 유모의 아들 애런과 모세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았을 것이다. 친형제 이상이었을 거다. 유모는 친엄마보다 더 엄마같았을 것이고... 모세가 과연 히브리인이 맞을까? 위에서 말한대로 히브리인들 족보 나열하길 좋아한다. 그런데 모세는 애런과 미리암 집안 얘기할 때 같이 뭉뚱그려 소개하는 정도이니...

 

모세와 친형제나 다름없는 애런이 레위 집안 사람이니까, 같은 레위인이라고 얼렁뚱땅 묻어가는 느낌이다. 이런 이유로 모세에게 애런은 꼭 필요하다. 모세가 이끄는 반동 세력의 주축은 이스라엘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런은 히브리인이 확실한 듯 하니 말이다.

 

애런이라는 인물... 우리에게는 그저 모세의 형, 모세의 대변인으로만 알려진 인물이다. 마치 모세 비서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애런은 모세와 권력을 나눠가진 정치적 동업자다. 그리고 권력자를 위협하는 것은 사실 권력자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다. 모세에게 애런은 동반자이자 위협이 되는 인물이다.

 

이전 금송아지 사건을 보자. 모세가 산에 들어가서 한참을 나오지 않자, 백성들은 애런에게 몰려갔다. 그리고 애런 주도로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백성들이 애런에게 몰려갔다 함은 애런을 새로운 지도자로 추종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애런도 이를 받아들였다. "모세가 좀 늦는 모양이다. 참고 기다리자." 라는 말을 하지 않고 말이다. 산에서 내려 온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든 일당을 모조리 도륙한다. 그런데 주동자격인 애런은 살려둔다.

 

레위기에서는 애런의 두 아들이 자신의 제사장 직분을 소홀히 하다가 불에 타 죽는다. 엄격히 따지면 제사장 일의 최종 책임자는 애런이다. 직무유기의 책임은 애런에게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애런의 두 아들은 모세의 조카다. 그런데 이들을 가차없이 죽였다. 마치 애런에게 보란 듯이 하는 행동이지 않은가.

 

게다가 미리암과 애런은 모세가 이디오피아 여자와 결혼한 것을 꼬투리 잡아 대립각을 세운 적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때도 미리엄만 옴팡 벌을 받고 애런은 무사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애런은 모세와 대립각을 세운 일이 비일비재했다. 은근슬쩍 모세의 자리를 받아들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모세는 애런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보낸다. 금송아지 사건에서 가담자를 몰살하고, 애런의 두 아들을 죽이고, 애런 누나 미리엄을 문둥병에 걸리게 한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 인물인 애런은 가만 둔 채... 동시에 모세는 민수기 17장에서 이런 애런을 재신임한다. 애런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애런의 집안인 레위 집안에 다양한 특권을 준다.

 

정치란 그래서 재미있다. 애런은 모세에게 절실히 필요한 존재인 동시에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경고의 메세지를 확실히 보내면서 특권도 확실하게 주는 모세는 확실히 정치 고수다.


여튼 에돔 국경 근처에 있는 호르(Hor) 산에서 애런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엘레아자르(Eleazar) 가 애런의 옷을 물려받아 입는다. 엘레아자르가 애런의 직위를 승계 받은 거다.


모세와 함께 고생하고, 권력을 나누고, 때론 대립하기도 했던 애런이라는 거물 역시 죽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시대를 풍미한 리더, 그리고 변화를 꿈꾼 거친 삶을 산 인물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때면 왠지 모를 싸함이 있다..(나와 생각이 같고 다르고를 떠나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