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싯딤(Shittim)에 머무를 때 이스라엘인들은 모압 여자들과 육체 관계를 맺고 그녀들의 신 제사 행사에 동참한다. 그리고 이를 안 모세가 가담자를 모조리 죽인다. 좀 더 들여다 보자.
이스라엘은 지금 계속해서 전쟁을 치르며 올라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전쟁을 할 예정이다. 꽤 많은 군인들이 피곤한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광야와 달리 지금 주둔하고 있는 모압 평원은 상당히 살기 괜찮은 땅이다. 이 지역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것이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시므온 지파의 한 가문 아들 짐리 (Zimri) 가 바로 화친론의 주동자였던 모양이다. 이를 안 모세는 강경 대응을 결심한다. 그리고 애런의 손자 피네하스(Phinehas) 가 직접 손에 피를 묻힌다. 창으로 짐리와 모압 여자를 찔러 죽인다. 능지처참 당한 거다. 이때 죽은 사람이 24,000 명에 이른다.
모세가 이렇게 강경하게 대응한 것은 기강 해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뒤에 나오는 얘기지만, 르우벤과 갓 지파 전체는 모압에 정착하고 싶다면서 요단강을 건너 서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계속해서 전쟁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 지도자는 이런 분위기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성적으로 문란해서, 혹은 이방 신 제사에 참석해서 그런 게 아닌 것이다. 화친론자와 강경론자의 대립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사건 배후에 메소포타미아 예언가 발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발람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미디언 정벌 때 이 사건의 죄를 물어 죽임을 당한다.
모세는 초지일관 강경론자(매파) 다. 본인하고는 성향이 많이 안 맞는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강경론자도 필요하다고.. 한국 사회를 돌아 보면 말이다. 친명, 친일, 친미... 이들이 외세와 화친을 맺은 게 평화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는 내팽개치고 자신들의 탐욕만을 채우기 위해서였을까..
이 사건의 짐리 일당이 화친론을 내세운 이유는 자신들 몸이 편하기 위해서였다. 인류 평화와 공존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예수는 로마 제국과 강경 대치할 마음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 유명한 로마에 세금 내는 문제에 대한 답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수 역시 중도 화친론자라고 볼 수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화친론은 평화와 공존을 위한 것이다. 예수가 자기 몸 하나 편하려고 화친(이웃 사랑)을 주장한 게 아니다.
화친론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진짜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교활한 자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공동체를 배신하는 화친론(합병론)을 평화와 공존이라는 거짓 허울로 포장하겠지마는... 언제나 어렵다. 사기꾼을 솎아내는 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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