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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브이

미드 브이 (V) 1-8 We Can't Win : 패배주의

by R.H. 2010. 6. 1.



<주의! 스포일러>

 

외계인들은 지구인들이 절대 상대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기술과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총칼을 앞세워 우당탕 순식간에 지구를 접수하면 될 텐데, 애나는 왜 귀찮게도 정치, 외교라는 짓을 하는걸까?


그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모조리 부시는 것이 아니라, 지배이기 때문이다. 다 죽여놓으면 뭘 지배한단 말인가? 지배한다는 말은 길들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애나는 인간에게 블루 에너지라는 엄청난 기술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Because once they depend on it, we can turn it off."


펄펄 끊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 넣으면, 개구리는 놀라서 뛰쳐 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어두면 자신이 죽는 것도 모르고 그 따뜻함을 즐긴다. 한 번 안락함에 익숙해지면, 그것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게 인간인 것이다. 이미 자연에서 오래전에 벗어나 문명의 이기를 맛 봐버린 인간은 이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인도에 어느날 갑자기 떨어지면 얼마나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처럼 목가적인 생활을 절대 즐길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정복은 길게 가지 않는다. 공을 바닥에 세게 내던지면 그만큼 반동하여 튀어 올라오는 크기도 커지는 법. 강한 지배는 강한 반발심을 가져온다. 그래서 애나는 은밀하고도 차근차근 스며드는 방법으로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지배를 받는 자들이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이런 스며드는 방식의 또다른 장점(?) 중에 하나는 피지배자들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르면 반발하지만, 달래면 누그러지는 게 되어 있다. 누그러진다는 말은 말랑말랑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엄청난 힘에 대항하기에는 자기편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본다. 그래서 인간들 상당수는 이미 외계인 애나편에 가담한 듯하다. 그래서 이번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간을 배신한 인간은 We can't win 이라는  패배주의에 젖은 말을 내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