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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머시니스트 (The Machinist) : 양심

by R.H. 2009. 8. 18.

 

<초강력 스포. 결말 모두 적어놨음>


이 영화는 1년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극도로 야위어 가고 있는 기계공 트레비의 이야기다. 영화는 어두운 밤 그가 한 구의 시체를 들쳐메고 가는데서 시작한다. 그가 시체를 유기하는 순간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트레비 얼굴에 손전등을 비추며 말한다. "Who are you?"


집으로 돌아온 트레비. 그의 거실에는 손전등 하나가 놓여있다. 트레비는 표백제를 사용해 손을 씻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이때 거울 뒤편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에는 "Who are you?” 라는 글씨가 써있다. 트레비는 누구를 죽인 것이고, 손전등을 비춘 사람은 누구였으며, "Who are you?" 라고 묻는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몽롱하고, 지쳐 보이는 이 남자는 공항 카페에 들르곤 한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마리아에게 호감을 보이고 트레비스는 마리아와 가깝게 지내기 시작하고, 그녀의 아들 니콜라스와 함께 놀이동산에 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할 때면 이상한 데쟈부를 느끼곤 한다. 왜 그런 걸까?


어느날 갑자기 그에게 나타난 아이븐이라는 기묘한 사내는 트레비를 따라다니며 그를 조롱한다. 그는 도대체 누구인 걸까?


트레비의 실수로 공장에서 팔을 잃은 밀러를 만나러 간 트레비는 밀러의 집 근처에서 서성대는 아이븐을 목격하고, 아이븐을 추격하지만 놓치고 만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이븐의 차 번호를 기억한 트레비는 경찰서에 간다. 그런데 그가 기억하고 있는 아이븐의 차 번호는 트레비 자신의 차 번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도망치는 트레비.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런데 자신의 집앞에 아이븐이 있다. 아이븐은 마리아의 아들 니콜라스를 데리고 트레비의 집으로 들어가고, 이들을 뒤따라간 트레비는 아이븐과 언쟁을 벌이던 가운데 그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하려 한다. 이제 영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가 죽인 것은 아이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체를 유기하는 트레비에게 손전등을 비추는 남자 역시 아이븐이다. "Who are you?" 라고 묻는 남자 역시 아이븐이다. 아이븐은 바로 트레비의 의식에서 튀어나온 " 양심" 이었던 것이다. 영화의 시적에서 아이븐의 손전등 빛은 바로 어둠에 갇혀있는 그에게 양심이 한줄기 빛을 준 것이다.


트레비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양심을 죽였지만, 양심은 결코 죽을 수가 없는 법. 그가 죽인 양심은 되살아나 그에게 빛(손전등)을 비추고,  "Who are you?"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끝없이 해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시도 때도 없이 표백제를 써가면서 손을 씻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씻어내고자 하는 바램이며,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양심과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가 저지른 죄는 무엇이었을까? 트레비는 마리아의 아들 니콜라스를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이었던 것이다.


트레비가 영화 속에서 느낀 데쟈부들은 바로 그가 저지른 뺑소니 사고에 대한 기억의 잔재들이다. 그는 죄책감을 잊기 위해 기억을 왜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의 양심을 상징하는 아이븐은 끊임없이 그의 주변을 맴돌며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트레비는 자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그가 들어간 구치소의 방은 새하얗다. 자수를 통해 양심을 회복한 그는 밝은 방에서 마침내 잠을 자는 평화를 얻는다.


그 밖의 장면들

 

트레비는 영화에서 여러 차례 갈림길에 놓인다. 놀이동산, 지하철 하수구, 고속도로 등등.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왼쪽을 선택했다. 왼쪽은 공항 가는 길이다. 공항은 어딘가로 멀리 떠나기 위해 들르는 장소다. 즉, 그는 양심과 비양심, 빛과 어둠의 갈림길을 마주하는데, 계속해서 비양심과 어둠을 택하고 멀리 달아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밤늦은 시각, 공항 까페에 간다는 설정은 그의 도망(Escape)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그는 계속해서 양심으로 부터, 빛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트레비의 거실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라는 소설이 놓여있다. 이 책은 인간의 밝음과 어둠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이 소설에서 인간의 밝음과 어둠이라는 모티브를  가져오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또한,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트레비의 얼굴에 빛 형태의 십자가가 보인다. “백치” 라는 소설이 기독교적 구원을 다룬다고 하는데, 포스터의 빛의 십자가 역시 소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