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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플래시 댄스 (Flash dance) : 꿈꾸는 자는 두렵다.

by R.H. 2009. 8. 18.


 

이 영화의 주제는 단순하다. 아메리칸 드림. 철제소에서 용접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예쁜 아가씨 알렉스가 전문 댄서를 꿈꾸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철공소 사장과의 뻔한 로맨스와 그의 도움으로 댄스 예술 학교의 오디션을 보게 되는 과정이 줄거리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전형적인 80년대 미국 사고 방식. 뻔한 내용이긴 하지만, 알렉스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장면들이 많은데, 그런 장면들을 추려내서 써보기로 한다


첫 번째, 주인공 알렉스가 댄스 예술 학교에 입학 신청서를 구하러 가는 장면. 그 곳의 다른 학생들의 깔끔한 용모와 갖추어진 복장과 달리, 알렉스는 공장에 다녀온 뒤 지저분한 작업화와 작업복, 배낭을 메고 서류 접수대에 선다. 다른 학생들의 묘한 경멸과 비웃음 가득한 눈빛을 느낀 알랙스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꿈과 열정으로 가득한 이 아가씨가 느끼는 학벌과 백그라운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그 자격을 이미 갖춘 자들 은근한 경멸의 시선에 대한 모멸감. 불안정, 수치심, 열등감이 담긴 알렉스의 눈빛, 그리고 예술학교의 복도를 가로 질러 뛰어가는 알랙스..


두 번째 장면은 알랙스가 밤에 댄서로 일하는 바에서 같이 일하는 나이든 댄서와의 쓸쓸한 대화 장면이다. 이 나이든 댄서의 독백을 한번 들어보자.


"When I started out, I was 17. I used to work in these old movie theatres.Every cent I had, I spent on costumes. When I went on that stage I was looking so good. One day I just stopped buying them. I don't know what happened. The dresses got old and I just stopped wearing them. I got some in a trunk. I'll show you sometimes. What the hell. It's show time."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건 17살 때였지. 난 이 오래된 극장에서 일했어. 돈이 생길 때면 난 의상을 사는데 모두 썼어. 내가 무대에 올라갈 때면 난 정말 멋이었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난 옷을 더 이상 사지 않았어.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그 옷들은 낡고 오래 되 버리고 난 더 이상 그걸 입지 않아. 지금은 트렁크에 있어. 언제 한번 보여줄게. 지랄 맞은 세상 같으니라고. 자 이제 쇼타임를 시작해야지.>


이 이름 모를 나이든 댄서는 자신의 화려한 젊은 시절과 화려한 의상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옷들은 낡고 닳아져 버렸다고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다. 이 무명의 나이든 댄서 역시 젊은 시절 춤에 대한 열정으로 한때는 자신의 자리에서 화려하게 서 있었다. 화려했던 의상들이 낡아 버렸듯이, 화려했던 그녀의 꿈과 열정은 그렇게 바래져 버린 것이다. 이 무명 댄서 역시 한때는 더 높은 도약을 꿈꾸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녀의 짤막한 화려했던 순간은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밤업소에서 춤을 출 뿐이다.


이것은 알랙스가 느끼는 두 번째 감정, 두려움이다. 즉, 자신의 꿈과 열정이 아무리 크더라도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기회조차 잡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 나이든 무명의 댄서처럼 늙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알랙스에게 댄서의 꿈을 심어준 안나라는 발레리나의 죽음에서도 알랙스의 두려움을 느낄 수있다. 무명댄서의 낡은 옷처럼, 안나의 낡은 발레화.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삶을 마칠 수도 있다는 알렉스의 두려움이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용접일이나 밥 업소 일이나 하면서 자신의 삶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세 번째 장면은 고해성사다. 영화 초반부에 알랙스가 모멸감을 느끼고 예술학교를 박차고 나온 뒤의 고해 성사 장면을 보자. "신부님이 그 곳의 댄서들을 봤다면 제가 그 곳에 들어갈 방도가 없다는 걸 아실 거에요. 제 삶에서 뭔가를 해내고 싶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아요."


또 다른 고해성사에서 그녀는 울부짖는다. "I want so much."


알랙스는 꿈이 있다. 그녀는 삶에서 이뤄내고 싶은 게 있다. 꿈이 크면 클 수록 두려움은 커진다. 꿈이 있으면 기쁘고 행복한 게 아니다.


여하튼 대중 영화답게 주인공 알렉스는 댄스 예술 학교의 오디션을 성공리에 마치고, 철제소 사장과의 로맨스도 이루어진다는 전형적인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해피 엔딩은 별로다. 뭔가 허전하고 이상하고, 어색하다. 해피 엔딩처럼 비현실적인 게 있을까? 사실 모든 인생의 마지막은 비극이다. 뭐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야 다르겠지만, 그건 극히 드문 경우이고. 뭐 그렇다고.

 

사진출처 :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