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엘리안느 : 프랑스의 감상적 제국주의, 권력자
제국주의는 알 수없는 매혹, 그리고 잔인함이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건 마치 황제가 보여주는 화려한 아름다움과 황제가 자기 권력이 도전 받을 때 보여주는 잔인한 억압이라는 두 얼굴과 같다. 이 가운데 그녀는 전자인 알 수 없는 제국주의의 매혹을 나타낸다. 그리고 엘리안느의 주변 인물인, 경찰 서장, 형사 , 군인 등은 바로 제국주의의 잔인함, 비인간성, 악랄함을 표현한다.
쟝 밥티스트가 그녀에게 퍼풋는 독설은 프랑스 지식인이 제국주의에 퍼붓는 독설이다.
"당신과 다르게 사는 걸 못 참는 거지. 당신은 다른 사람의 삶을 독점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 나와 까미유 그리고 당신의 일꾼들. 사람들을 나무처럼 다루고, 그들을 사고 팔고 피 흘리게 하고 착취하고 싶은 게요. 당신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야 !"
쟝 밥티스트-프랑스의 자유와 평등 이념, 지식인
쟝 밥티스트는 프랑스의 자유와 평등 이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지식인, 원칙주의자, 진보 사상을 표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부의 경매 장면을 보자.
"프랑스에서 이 경치를 열 번도 더 그렸죠. 한번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약간 그늘진 이 언덕과 골짜기가 없었습니다. 이건 존재하지 않아요. 화가가 꾸며 낸 것입니다. 전 이러지 못했어요. 전 세상을 바꿀 줄 모릅니다. 저 그림이 필요합니다."
쟝 밥티스트는 왜 그 그림이 필요했을까?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의 소망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자신의 유약함에 대한 한탄이기도 하다. 그는 감정에 휘둘리고 싶어지 않다. 규정된 시간에 조금 지났다는 이유로 어린 아들과 아버지가 탄 배를 -아편 밀수가 의심되는 배-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 이런 그를 말리는 동료에게 하는 말.
"넌 내 아버지 같아. 되는 대로 살아! 이끌리는 대로 해라.! 그리고는 사라져 버렸지. 난 절대로 그렇게 안돼. 나는 나 자신을 지킬 거야. 아무도 내 머릿속에 들어 올 수 없어. 하느님도 안돼!"
그는 감정에 이끌려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위의 저 표현은 자신의 실제에 정반대되는 모습이고, 지켜지지도 않는다.
다음날 그가 불태운 배에 탔던 소년을 걱정하는 그는 주변을 헤매고 다니고, 그 와중에 엘리안느를 만나 쉽게 사랑에 빠져 버렸으며, 그녀의 양녀 까미유를 동정하고 사랑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파멸되고 만다. 그는 스스로 지키고 싶어했던 자신의 원칙을 지키지도 못했고, 되는 대도 살지도 못했으며, 그의 머릿속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결국 그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 채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
까미유- 베트남의 변화
까미유는 베트남의 부유한 지배층의 딸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엘리안느의 양녀가 된다. 그녀는 여느 베트남인들과 달리 카톨릭 학교에서 고등 교육을 받으며 물질적 풍요와 양모의 사랑 속에 행복하게 자란다. (베트남이 프랑스에 속해 있는 모습 상징)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쟝 밥티스크가 거리에서 실신한 그녀를 돕게 되고 까미유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자유와 평등 이념에 빠지는 모습 상징)
이런 그녀를 엘리안느는 염려하고 쟝을 외딴 섬으로 좌천시키는데 손을 쓴다. 그리고 까이유는 어릴 때 정해진 약혼자와 강제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친다. 그리고 까미유는 쟝을 찾아 길을 떠난다. 쟝을 찾으러 가는 길 위에서 까미유는 이제껏 보지도 듣지도 못한 현실을 목도한다. 착취당하고 굶주림 당하는 동족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쟝을 만나지만, 노예 매매를 하는 곳에서 동족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그곳 책임 장교를 총으로 쏴 죽인다. 이제 그녀의 눈 속에는 분노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민족주의에 눈뜨는 모습 상징) 이후 이야기는 생략. 귀찮다. 여하튼 결국 까미유는 공산주의자가 된다.
정리하면 베트남을 상징하는 까미유는 프랑스의 엘리안느(프랑스 제국주의) 품에 있다가 쟝 밥티스트( 프랑스 자유와 평등 이념)를 사랑하고, 그 과정 속에서 동족의 고통을 직시하면서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설정.
영화의 주인공은 프랑스인 엘리안느다. 즉, 영화의 중심 시선은 감상적 제국주의의 묘한 매력과 쓸쓸한 추억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국주의를 미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베트남인의 분노에 찬 눈빛을 말없이 클로즈업으로 여러 차례 보여주기는 한다. 물론 왜 까미유가 공산주의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없다. 짤막한 한마디만 있을 뿐이다. "그 아이에게 내가 겪었던 고통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아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새벽녘 고무 농장. 이제 남은 일꾼은 하나. 생기 없고, 폐허처럼 보이는 고무 농장은 이제 베트남을 떠나야 하는 엘리안느와 그녀의 아버지의 쓸쓸함이 물씬 풍겨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강 건너편에는 제네바 협정이 조인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베트남이 독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 반대편에 선 엘리안느는 부러진 구두를 손에 들고 무심히 이 순간을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딸 까미유를 만나지도 않고, 만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미움과 증오의 감정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이상 야릇한 쓸쓸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헤어진다. 마치 프랑스와 베트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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