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458

막심 고리키 단편 <첼카시> "항구 사람들에게 아주 잘 알려진 노련한 늑대이자 지독한 술주정뱅이에다 솜씨가 훌륭한 대담한 도둑"인 첼카시는 부스스한 머리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더러운 부랑자 꼴로 되는 대로 살아가는 놈이다. 오늘도 그는 한탕 하려고 항구 주위를 어슬렁거려 본다. 종종 그의 일을 보조해 주던 놈을 찾아보는데, 보이질 않네.. 넉살 좋게 세관 병사에게 접근하여 그놈 근황을 알아보니, 쇳덩이에 다리에 짓이겨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단다. 젠장. 주위를 다시 둘러본다. 같이 한 탕 뛸 놈을 찾아야겠는데.. 옳커니. 저기 멍 때리며 부둣가에 앉아있는 "어린애 같은 맑은 눈빛을 한 건강하고 순진한 젊은이" 즉, 꼬붕삼기 딱 좋은 촌뜨기 한 놈이 보이는구나. 은근슬쩍 접근해서 말 붙여보니, 역시나 신.. 2018. 1. 7.
막심 고리키 단편 <이제르길 노파> "그때까지 나는 힘들게 노예처럼, 더럽고 음란하고 가난한 여자들, 아니면 반은 죽은 듯이 그저 저속하게 배만 가득채우고 사는 여자들만 보아왔다...나는 이제르길 노파의 인생 역정이 분명 여자들 마음에 들 것이고 그들에게 자유와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가장 가까운 여자가 전혀 감동받지 못하고 그냥 잠들어 버린 것이다!" -막심 고리키, 는 개인적으로 읽은 막심 고리키 소설 중에 젤 별로였는데, 정작 고리키는 작정하고 야심 차게 썼나 보다. 고리키가 자전적 소설인 에서 를 언급한 걸 보니 말이다. 현실에서든 다른 소설에서든 고리키가 보아온 여성 캐릭터는 '음란하고 가난한 여자들' 즉 창녀거나, '저속하게 배만 가득채우고 사는 여자들' 즉, 중산층 이상의 속물 여성이었.. 2018. 1. 6.
막심 고리키 단편 <첫사랑> "그녀는 있는 것만으로 살아갈 줄 아는 여자였다....생활의 고단함에 대해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모기라도 쫓듯이 손을 내저으며 가볍게 웃어넘겼다." 가난한 생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화려한 여자.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화려함을 충족시켜줄 부유한 남자를 찾는 일 따윈 관심도 없는 여자. 귀족학교 출신의 배운 여자. 파리를 경험한 여자. 그러나 '그'와 함께 욕실에서 썩은내가 나는 싸구려 월세방에 사는 걸 신경도 쓰지 않는 여자. 궁핍을 고통스럽게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이 여인은 아예 신경조차도 쓰지 않는다. 가난을 가볍게 웃어넘기는 여자.. 이 얼마나 매력적인 여인인가. 누군들 이 여인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녀에게 삶은 거대한 축제다. 매일매일 새로운 마술이 펼쳐지는 삶이다. 그녀는 삶을 즐겁고.. 2018. 1. 4.
막심 고리키 단편 <스물여섯 명의 사내와 한 처녀, 1899> "우리는 스물여섯 사람이었다. 아니, 축축한 지하실에 갇혀 있는 스물여섯 개의 살아 있는 기계였다" 축축하고 곰팡내 나는 지하실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빵을 굽는 노동자들. 이들은 유난히 힘든 일을 하고, 유난히 꾀죄죄하며, 유난히 헐벗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같은 건물의 노동자들에게도 무시당한다. 그런데 이 침울한 공간을 잠시 잠깐 밝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바로 같은 건물의 자수점에 일하는 여공, 요컨대 미싱 공장 여공이 아침에 방문 할 때다. 같은 건물의 노동자들도 무시하는 지하실의 구질구질한 남자들에게 아침마다 밝은 웃음을 건네는 타냐는 26명의 살아있는 기계들에게 여신 같은 존재다. 아침마다 '빵 하나만요^^' 하며 상큼한 미소를 보내는 이 아가씨에게 따끈한 빵 하나 건네는 것은 26명의 사내.. 2018. 1. 3.
막심 고리키 단편 <거짓말 하는 검은 방울새와 진실의 애호가 딱따구리> "어느 작은 숲에서 생긴 일이다. 숲속에서 지저귀던 새들 중 한 마리가 갑자기 희망과 확신에 찬 노래를 불러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숲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는 절망과 우울, 패배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구원은 없다'는 패배주의에 물든 노래는 까마귀가 주도하는 것으로, 거기에는 나름 아름다운 구석도 있다. 절망을 이야기하는 노래 특유의 센치한 아름다움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희망의 노래, 승리의 노래, 일어섬과 전진의 노래가 숲에 울려퍼진다. 이 희망의 찬가를 노래하는 자 누구인가. 이 용감한 노래를 하는 새는 분명 아름다우리라, 위풍당당하리라.. 그 새를 찾아가자, 그에게 환호와 감사를 바치자. 그런데 이게 웬일. 새떼들이 몰려가서 보니, 그것은 숲.. 2018. 1. 2.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959> 로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40대 중반 남자다. 물질적으로 여유롭고,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에든 능수능란한 그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중년 남성이다. 사람들은 종종 가부장적 사고방식이라는 걸 고함지르고 꽥꽥대고 폭력적이라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다.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 챙기고, 자기 여자의 행복을 원하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모습도 많다. 정해진 위계질서가 주는 편안함도 있는 거고.. 여튼 로제가 바로 이런 긍정적인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다. 그런데 이게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악랄한 모습만 있다면, '이건 아니다, 참을 수 없다', 생각하고 뛰쳐나갈 수 있지만, 좋은 모습이 꽤 있으면, '세상에 좋기만 한 게 .. 2017.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