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드리뷰/엘워드

엘워드 티나와 제니 : 목표는 동일하다. 문제는 방식이다.

by R.H. 2009. 8. 19.


최초 작성일 : 2009-03-10 17 09 34



티나와 제니의 레슨 넘버 1  자율성을 확립하라.



티나와 제니는 닮은 점이 참 많다. (티나라는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이 상당이 많이 생략된 이유가 이 때문인 듯 하다) 두 사람 모두 등 떠밀려 자아 찾기를 시작했다는 점,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정신 못 차리는 관계 속으로 들어 갔다는 점, (그래서 제니가 마리나를 보고 혼절하는 걸 티나 혼자만 이해했던 것) 둘 다 자율성 찾기에는 성공한다는 점, 등등..



각자의 파트너 품에 안주하던 이 온실 속의 화초들은 어거지로 자아 찾기와 자율성 확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티나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발견하고 싶어!!" 라며 집에서 뛰쳐 나온 게 아니다. 벳이 바람 피면서 얼떨결에 자율성의 필요를 강하게 느낀 것이다. 제니 역시 마리나와의 일탈 뒤에 팀이 다시 받아줬다면, 자율성 찾기 노력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제니는 팀에게 돌아가고 싶어했다.



티나는 사회에 내던져 지고 난 후, 사람들과 조율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법을 배운다. 아니 원래 그런 방식에 탁월한 역량을 타고난 사람이었을 것이다.(5시즌에 티나의 이런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벳과 살면서 살림에 치중하다 보니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반면, 제니는 사회에 내던져 지고 난 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법을 배운다. 갈등이 일어났을 때, 조율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집대로 밀고 나가는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고, 이것이 먹혀 들어간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조금도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일을 진행시켜 성공해가는 제니퍼 쉑터의 모습은 3시즌 이후에 뚜렷이 나타난다)

 


두 사람의 목표는 동일하다. 그런데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 중에 거쳐야 하는 문제 해결 방식은 너무도 달랐다. 그리고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이 두 캐릭터 모두 자율성 확립, 사회에서 자기 자리 찾기 노력은 성공했다. 그런데 이후 사랑 찾기의 노력에서 티나는 성공하고, 제니는 실패한다. 이제 이 이야기를 해 보자.


 

티나와 제니의 레슨 넘버 2 사랑을 찾아라 (혹은 지켜라)


 

티나는 힘겹고도 고통스러운 자아 찾기와 자율성 확립이라는 고난의 길을 성공리에 마쳤다. 그리고 벳을 얻었다. 제니 역시 자아 찾기라는 고난의 행군은 성공리에 마쳤다. 자율성 확립도 이뤄냈다. 하지만 티나와 달리 사랑 찾기에는 실패한다.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쉐인이 제니를 버린 건 아니니까. 일단 제니가 죽은 걸로 결론이 나왔으니 그렇게 보자)

 


자아를 찾는 건 혼자 하는 일이다. 나를 찾고, 자율성을 확립하는 일에 누군가와 상의하고 타협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아니, 오로지 자신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개별 과제다. 반면에 사랑을 찾는 것은 결단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조율하고, 타협하고, 양보해야 하는 일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티나는 조율하는 방식으로 사회성을 키워 나간다. 이것은 벳과의 관계 회복을 가능하게 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제니는 자신의 고집을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간다. 문제는 제니가 이런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즉, 제니는 이런 방식이 옳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래서 제니는 관계와 소통에 서툴다. 쉐인을 박스에 담아두려 하고, 자기 맘대로 쉐인 방을 없애 버린다. 쉐인과 상의도 없이 쉐인에게 사진 스튜디오를 선물로 준다. 쉐인이 이 갑작스러운 선물에 마냥 기뻐할까? 주는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고맙다고는 하겠지만, 그녀는 엄청난 부담감을 가질 것이다. 쉐인은 사진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단순한 취미로 시작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부담스런 선물을... 제니는 관계의 영역에서 역시 자기 고집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티나는 사랑 찾기에서 성공하고, 제니는 실패한 이유다.

  


제니를 위한 변명


 

누군가는 자아 찾기와 사랑 찾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실패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소수만이 성공하고, 대다수는 실패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가 목표 지점에 다다를 수도,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도 없다. 잔인하고도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일어서려는 노력을 자꾸 피하려 드는지도 모른다. 자아 찾기, 사랑 찾기의 여정을 두려워한다. 그 길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어려운 길을 걷고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잔인한 진실을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남루하기 짝이 없는 조그마한 안락함을 움켜쥐고자 한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자아 찾기의 노력을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든다. 하지만 적어도 제니는 그 비루한 일상의 안락함을 포기했다. 그녀는 비록 사랑 찾기에는 실패했을지언정 최선의 노력은 하지 않았던가. 그걸로 충분하다. 



2-4 에피소드에서 머리를 자르는 제니.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결연한 다짐의 표현이자 하나의 신성한 의식이다. 그런데 머리를 잘라주는 사람은 쉐인이다. 수영장에서 제니의 마음을 뒤흔든 것도 쉐인이고, 이 의식을 도와주는 것도 쉐인이다. 제니의 중대한 변화의 마디 마디에는 항상 쉐인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제니가 쉐인을 얻지 못하고 죽었다는 마지막 결말이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