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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뷰/엘워드

엘워드 쉐인 : 현실은 잔인하다.

by R.H. 2009. 8. 19.


최초 작성일  2009-01-10 11:31:45


 


가정을 원한다. 하지만 현실이 잔인하다는 것을 안다.



쉐인은 쿨하다. 딱히 원하는 것도, 삶의 목표도 없어 보인다. 생각 없이  삶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삶을 방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인다. 적어도 내 눈에는..



엘워드 캐릭터들의 가정은 대부분 불안정하다. 알리스는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제니는 냉정한 양아버지와 무책임한 엄마로 파괴된 어린 시절이 있다. 벳의 엄마는 어린 시절 도망 갔고, 아버지는 바람둥이다. (티나의 가정은 안정적인 중산층으로 추측되지만, 이는 추측일 뿐 정확히 밝혀진 바는 아직 없으므로 패스)



그런데 이 중 유일하게 단란한 가정을 가진 사람은 데이나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표현하는 단어를 supportive (의지가 되는) 라고 했다. 부모와의 관계가 매우 따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엘워드 캐릭터 가운데 유일하게 데이나는 스스로를 오랫동안 벽장에 가둬둘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그녀는 부모와의 관계가 매우 긍정적이었기에, 부모와의 관계 훼손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것이다. 또한, 데이나는 가장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에 속해 있었다. 가장 일반적이라는 말은 주류라는 말이고, 주류라는 말은 기득권이라는 말이다. 그녀는 벽장에서 나올 때 다른 인물들보다 포기할게 너무도 많은 것이다.



쉐인은 엘워드 그녀들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 가정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는 가정을 내팽개쳤다. 그녀는 엄연히 부모가 살아있음에도 고아원에서 자라는 희한한 경험을 했던 것이다.


 

쉐인은 한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쿨한 바람둥이로 묘사했지만, 그녀는 전혀 쿨한지 않다. 그녀가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갖지 못하는 이유는 쿨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애정 결핍 때문이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경험을 했다. 부모란 무엇인가? 세상에서 내가 최악의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에 유일하게 감싸줄 사람 아니던가. 세상 모든 이가 나를 외면하고 버릴 때 마지막 순간에 유일하게 안아 줄 사람 아니던가.



그런데 쉐인은 바로 그런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래서 쉐인은 두렵다. 혈육도 자신을 버리는데, 하물며 어떤 타인이 자신과 평생을 함께하며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인가? 그래서 그녀는 관계가 지루해지기 전에, 관계가 힘들어지기 전에, 자신이 버림받기 전에  먼저 발을 빼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쿨한 것이 아니라 나약하고, 비겁한 것이다.



쉐인이 얼마나 가정을 간절히 원하는지는 여러 곳에 나타난다. 시즌1의 첫 에피의 마지막 장면에서 쉐인은 아침 댓바람에 손 붙잡고 앉아있는 티나와 벳을 보고는 자신에게 희망을 준다고 했다. 엘워드에서 유일하게 가정을 이룬 티나와 벳의 모습에서 쉐인은 자신의 희망을 보고 있다. 또한 시즌1-7에피에서 밤새 술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 읊조리는 말을 보면, 그녀 역시 티나와 벳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가정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 사람과의 깊은 관계(가정)을 원하면서도 두려움에 망설이는 쉐인을 변화시킨 것은 데이나의 죽음이었다. 매우 가까운 사람의 급작스런 죽음은 우리를 당황시킨다.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삶의 의미에 대해... 내가 만약 내일 급작스레 죽는다면 오늘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쉐인의 답은 바로 가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카르멘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가정을 헌 짚신짝처럼 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눈 앞에서 보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몸 안에 흐르는 피는 바로 그 아버지의 피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죽는 그 날까지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처럼, 제우스처럼 아버지를 죽이지 않는 이상...



현실의 잔임함을 들을 때면 그녀는 예술 위에 놓여있다.



1시즌 13에피에서 쉐인은 쉐리 여사에게서 잔인한 이별의 말을 듣는다. 쉐리 여사가 쉐인을 버린 이유는 쉐인이 자기 몸 하나 뉠 곳 없는 가난한 보조 미용사이기 때문이다. 쉐인을 사랑하는 것은 변함없는데 말이다. 쉐인은 사랑을 지키는 것은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말을 듣고 있다. 그렇다. 그녀는 현실에서 보잘것 없는 가난뱅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잔인한 현실을 들으러 가는 쉐인은 하나의 미술품 위에 겹쳐져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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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즌 12에피에서는 대학 학장인 필리스에게서 현실의 냉혹함을 듣는다. 쉐리 여사와 마찬가지로 필리스는 중년 여성이다. 삶을 겪을 만큼 겪어본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쉐인은 예술품과 함께 서 있다.


 

방 한가운데 놓여있는 새장과 문짝. 쉐인은 한 마리의 새다. 저 새장은 바로 저 방 자체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그 안에 쉐인이 있다. 즉, 쉐인은 지금 새장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쉐인은 문을 열려고 한다. 그런데 저 문을 열면 넓은 세상이 아니라 답답한 벽이 나온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장벽 말이다.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 말이다. 그녀는 새장 안에 갇혀있는 무력한 새 한 마리에 불과한 것이고, 현실의 벽은 그렇게도 답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