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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장미의 이름 (2) : 지식

by R.H. 2009. 8. 17.

닫힌 세계, 가려진 지식
 
윌리엄과 앗소는 수도원에 도착하고, 수도원의 무거운 철문은 빗장에 걸어 잠긴다. 이는 이곳이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곳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이들의 손에 물을 부어주는 수도사는 사팔뜨기다. 즉, 이 수도원(닫힌 세계) 의 시선은 그의 눈처럼 왜곡되어 있다는 말이다.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수도원. 그러나 이 세계는 그 고요함만큼 평화롭고 맑은 곳이 아니다. 반대로 세상의 그 어느 곳보다 요란스럽고 혼탁하다.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기묘한 살인사건, 남색을 행하는 수도사들, 아집에 가득 찬 자의 광폭함과 비이성...



 
그리고 이 닫힌 세계에는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비밀의 서고는 안개 속에 쌓여 있다. 지식은 그렇게 고립되어 있고, 미로 속에 감춰져 있으며 희뿌연 연기 속에 가두어져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이 수도원만이 아닌 중세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개 자욱한 미로 속의 중세. 

 

윌리엄, 지식과 지혜를 열망하는 자


윌리엄은 짐을 풀고 창 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다른 무덤과 달리 새로 봉분된 하나의 무덤과 그 위의 까마귀를 발견하고는 수도원에서 누군가가 얼마 전 죽었다는 사실을 추론해 낸다. 또한 윌리엄은 이 수도원을 방문한 적이 없음에도 수도원의 어디에 화장실이 위치해 있는지 단박에 알아내기도 한다. 그는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지혜를 지닌 사람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합리주의를 열렬히 신봉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흥분하지 아니하고, 경거망동하지 아니한다.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고, 그의 억양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는 균형과 중용의 미덕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런 그가 유일하게 경망스럽게 달려나가는 곳이 있으니... 바로 책으로 가득 찬 비밀 서고에 들어설 기회를 얻을 때였다. 또한 금서로 가득 찬 서고에 들어선 그는 그답지 않게 기쁨에 들떠 괴상한 환호를 지른다. 그리고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 장면에서만 발랄한(?) 음악이 흐른다.


그가 수도원에 가져온 물건들은 과학의 도구들이다. 그가 어떤 인간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그가 책을 볼 때 사용한 돋보기 안경. 그는 도구를 이용해서 책을 자세히 들여보려 한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지식(도구) 을 이용해서 진리(책) 를 들여다 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눈을 크게 뜨려고 노력하는 자이다. 반면에 원로 수도사 요르기는 장님이나 다름없다. 그의 희뿌연 눈은 그가 진리를 가리려 하는 자, 혹은 진리를 보지 않으려 하는 자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마치 비밀 서고가 안개에 가려 있듯...

  

영화 후반부에 서고가 불타는 가운데서도 윌리엄은 책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에게 책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다.

[눈을 뜨려는 자와 눈이 가리워진 자. 윌리엄과 요르기의 눈은 대조적이다.]


 

지식을 열망하는 자와 덧없음에 대하여

Statm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위 문구는 영화의 마지막에 나온다. 참 뜬금없다. 영화는 닫힌 세계, 연쇄 살인, 종교, 책, 지식에 대해 말하는데, 난데없이 덧없음이라니. 여기서 잠시 성경의 전도서 첫 장을 펴보자.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참, 성경답지 않은(?) 구절이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지었다고 추정되는데, 솔로몬이 누구인가? 지혜의 왕이다. 그런데 그의 첫마디가 헛되다는 것이다. 어찌나 강조하고 싶었던지, 헛되고 헛되다는 말을 반복해서 되뇌고 있다. 영화 속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There's sadness in wisdom. The one who increases his knowledge also increases his suffering. [지혜 안에는 슬픔이 있다. 지식을 얻고자 하는 자는 고통 또한 얻을 것이다]


지식과 지혜를 추구하는 자는 인생무상의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일까? 지식을 열망하는 자는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말인 걸까? 앎을 얻고자 하는 자(有)는 덧없음(無)의 진리를 품어야 하는 법이니, 그야말로 지혜 안에는 슬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