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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욥기 22장 ~24장 :엘리바스와 욥의 3차 논쟁

by R.H. 2018. 5. 15.



욥기 22 장 : 엘리바스의 세 번째 훈계질인지 대뇌망상인지...



네 죄가 많고, 네 죄악이 끝이 없으니, 그러한 것이 아니냐? 네가 까닭 없이 친족의 재산을 압류하고, 옷을 빼앗아 헐벗게 하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 한 모금도 주지 않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너는 권세를 이용하여 땅을 차지하고, 지위를 이용하여 이 땅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살았다. 너는 과부들을 빈 손으로 돌려보내고, 고아들을 혹사하고 학대하였다. 그러기에 이제 네가 온갖 올무에 걸려 들고,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어둠이 덮쳐서 네가 앞을 볼 수 없고, 홍수가 너를 뒤덮는 것이다. <새번역> 욥기 22장 5절~11절



이젠 욥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우기고 있다. 분명 욥기 서두에서 욥은 신에게 의로운 사람으로 신으로부터 1차 인증을 받았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욥이 친척 재산을 빼앗고, 목 마른 사람한테 물 한 모금 주지 않은 악한 중에 악한으로 규정한다. 전에는 인과응보론으로 논쟁을 주고 받다가, 말이 막히니 욥의 태도를 문제 삼더니, 이제는 욥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단다. 대뇌망상도 아니고 원...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거지요??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지 말아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에게 은총을 베푸실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여 주시는 교훈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씀을 네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라. <새번역> 욥기 22장 21절~22절



그러면서 욥에게 하는 충고는 앞선 것과 동일하다. 고만 시끄럽게 하라는 것. 얌전히 살라는 것. 가만 좀 있으라는 것... 그렇게 살다보면, 고통도 지나가고 다시 회복될 거란다.. 그러니까 그만 잊고, 나대지 좀 말라는 소리다.,



욥기 23장 ~ 24장 : 욥의 한탄식...



아, 그분이 계신 곳을 알 수만 있다면, 그분의 보좌까지 내가 이를 수만 있다면, 그분 앞에서 내 사정을 아뢰련만, 내가 정당함을 입이 닳도록 변론하련만. (3절~4절)..........그러나 동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거기에 안 계시고, 서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뵐 수가 없구나.(8절) <새번역> 욥기 23장



신 앞에 나아가 겸손하게 굴면 신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거라는 엘리바스의 충고를 욥은 반박한다. 신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고, 신을 만날 수가 없다고, 신을 만날 수가 있어야 자기 사정을 털어놓고 도와 달라 요청이라도 하지.. 그러며서 욥은 계속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어찌하여 전능하신 분께서는, 심판하실 때를 정하여 두지 않으셨을까? 어찌하여 그를 섬기는 사람들이 정당하게 판단받을 날을 정하지 않으셨을까? <새번역> 욥기 24장 1절



24장에서 욥은 불합리한 세상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고약한 인간들은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데, 살인자들, 성범죄자들, 도둑들이 어둠 속에서 평안을 누리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이며 살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도망가서 숨어 사는 이 세상.. 



하지만 욥 역시 악한 사람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죄의 댓가를 치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문제는 그 심판의 때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악인이 벌을 받고, 의로운 자가 인정을 받았으면 좋으련만.. 이 세상에서 악인은 번성하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통 받고 있는 걸 수도 없이 본다. 그럼에도 욥은 "악들은 잠시 번영하다가 곧 사라지고, 풀처럼 마르고 시들며, 곡식 이삭처럼 잘려"(24:24) 나갈 것이라는 기본 믿음은 간직한다. 가난하고 핍박 받는 자들, 그들의 고통, 아무 죄 없는 자들의 고난.. 하지만 결국에는 악인이 망할 것이라는 그 믿음을 잃지는 않는다.. 이거라도 믿지 않으면 어찌 살아갈까.. 이 마지막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선을 넘어 버릴 테니까. 욥은 자기 한 가운데가 단단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고통 앞에서 선을 넘어버린다. 인간 대부분은 자기가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이 정도면 얼추 정의롭고, 얼추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누굴 속이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위선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감당할만한 상황에서는 의롭다. 그런데 패배와 고통을 경험하면 변한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언제나 승리하던 사람이, 언제나 칭송 받던 사람이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패배만 경험해도 사람이 헤까닥 한다. 순수한 이미지, 무료 백신 배포하는 선함, 좋은 집안, 최고 학벌과 직업, 부와 명예, 단란한 가정... 그리고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 승자 중의 승자.. 



그런데 이 사람이 단 한 번 크게 진다면?? 놀라운 속도로 흑화 되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에게 지지와 신뢰를 보냈던 사람조차 대경실색 한다. 원래 저런 사람이었던가? 저렇게 저급했던가? 저렇게 유아틱했던가? 저렇게 구질구질했던가?우릴 속인 건가? 기만한 건가? 그 시커먼 속내를 여태 감추고 착한 척 했던 건가? 아니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다. 스스로도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평생.. 그리하여 하늘이 그에게 아주 작은 패배를 한번 내려 보내 본다. 하늘이 그에게 거울을 들이민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확인이 된 것이다. 그 작은 패배의 고통도 견디지 못 해 저 난리를 치는 인간, 저 추접을 떠는 인간이라는 것이 확인 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시험에 든 다고 말한다. 어감이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이 시험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의 진짜를 확인 할 수 있다. 다른 걸로는 완전한 확인이 안 된다. 내가 나를 아는 방법은 오직 이것 뿐이다. 그래서 욥기가 나는 무섭다. 나의 진짜를 확인할 방법이 패배와 고통 뿐이라는 걸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으로도 나를 알 수가 없다. 다 착각이다. 누굴 속이려고 그래서가 아니다. 나 스스로로 알 수가 없다. 나 스스로도 나 자신에 대해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그럭저럭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그러나 진실을, 나의 진실을 똑바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욥기적 고통 뿐이다.. 주기도문에서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것 밖에는 나를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을.. 솔직히 저런 욥기적 고통을 당하느니, 나의 진짜를 확인하지 않고 평안히 살다 이 세상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냥 난 소인배 맞으니까, 괜찮은 사람 아니니까, 시험 받고 싶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