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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열왕기상하 : 영원히 고통받는 여로보암(1)

by R.H. 2018. 4. 4.


제사장, 선지자, 예언자, 하나님의 사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단은 때론 왕을 세우고, 때론 왕을 갈아치우고, 때론 왕권을 견제하였다.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집단.. 어느 지역에서는 선비나 유생으로 불리고, 어느 지역에서는 지식인이나 엘리트 집단에서 불리는 이들... 신하나 관료가 되어 권력을 비판하기도 하고, 권력에 순응하기도 하고, 직접 킹메이커가 되어 권력의 지분을 차지하기도 했던 그들.. 여튼 이스라엘에서는 이들이 바로 그런 존재다. 



사무엘 시대만 해도 이들의 파워는 막강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기도 하고, 내쳐버리기도 하고, 그리고 다윗으로 왕을 갈아치울 정도였으니까. 다윗 대에 와서는 이들의 힘이 좀 약해진 게 느껴진다. 이들 집단이 가진 권력의 상징인 '언약의 궤'를 다윗이 자기 왕궁으로 가져와 버린 사건이 그 증거다.(사무엘하 4장~6장) 물론 다윗이 쉽게 가져간 건 아니다. 상징으로 점철된 이야기 속에는 종교 엘리트 집단의 강한 반발과 저항이 담겨 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하려 했을 때도, 이들은 브레이크를 걸었고, 다윗 역시 이들 집단의 의견에 수용했다. 여튼, 다윗 시대만 해도, 이들은 왕권에 제동을 걸 만한 힘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솔로몬 대에 와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최전성기 시대를 연 능력 있는 왕이지만, 독단적이었다. 성전 건축만이 아니라,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했는데, 이를 저지하는 이 집단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아, 재미있는 사실은 선대의 숙원 사업인 성전 건축을 해낸 솔로몬이 오지게 우상 숭배를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솔로몬을 몰아붙이는 목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이는 그가 절대 왕권을 휘두르지만, 동시에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반발하는 목소리를 힘으로만 누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혜와 말빨로 다 무마시킬 재주가 있었던 사람이다. 즉, 이들 집단이 목소리를 안 낸 게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가 눌린 것인데, 매섭게 눌린 것이라긴 보다, 말빨로 깨깽하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게다가 나라가 잘 먹고 잘 살고, 번창하니까지 하니.. 



문제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대에 와서 터진다. 로호보암은 능력도 없으면서, 오만 똥고집을 부리고, 하는 짓도 죄다 개싸가지다. 불만 세력들을 다독일 줄도, 설득할 줄도 모르면서, 능력까지 없으니.. 이걸 왜 참아주나. 종교 엘리트 집단은 여로보암을 새로운 왕으로 세워 버린다. 또 한 번 왕을 세우면서 다시 한 번 그들의 힘을 과시해 본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말을 안 들어서, 왕을 세웠더니, 여로보암은 더 말을 안 듣네..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고, 권력 지분을 나눠 가지려 했더니, 여로보암, 이 놈이 지가 혼자 다 해 쳐먹음. 아이구 두야... 여로보암과 이 집단의 갈등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는 열왕기왕 14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로보암의 아들이 죽을 병에 걸려서, 여로보암이 자기 마누라를 시켜 예언자 아히야에게 보내는데, 아히야는 무지막지한 독설과 저주를 퍼붓는다. 한 마디로 '부숴버릴거야!!' 시전. 



그런데 여로보암은 왕이 된 뒤, 종교 엘리트 집단을 밀어내버릴 땐 언제고, 뻔뻔하게 자기 아들 병들었다고 고쳐달라는 건 또 뭘까. 



첫째로, 실제로 아들이 아팠을 가능성. 저 집단은 문과 중심주의 유생 집단하곤 결이 좀 다르다. 저들은 천문 지리 역학만이 아니라, 의학에도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집단이다. 뒤에 나오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죽은 사람 살려낸 이야기들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의학 지식을 갖추고 이를 실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두 번째로, 여로보암의 아들이 병들었다는 것은 여로보암의 힘이 병들고, 약해졌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여로보암이 자기 아들로 대를 잇는 왕조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자면, 저 집단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걸 바라고, 마누라를 변장시켜 보내서 저 집단의 의중을 한 번 떠 본 것. 근데 돌아온 건 욕설뿐.. 실제로 여로보암의 다른 아들 나답이 다음 왕이 되긴 하지만, 2년 재위 뒤에, 반역이 일어나서, 여로보암 가문은 멸문지화 당한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도 그의 부친이(여로보암) 걷던 그 악한 길을 그대로 걸었으며, 또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는 그 잘못을 그대로 따랐다" <열왕기상 15장 26절>



북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왕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데, 저 문장은 열왕기상 15장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북이스라엘 왕이 등극할 때마다 복사해서 붙여넣기처럼 나오는 말로 열왕기 상하에 끊임없이 나오는 문장이다. 약간의 바이브레이션은 있다. '여로보암보다는 덜 하지만..' '여로보암보다 더 심하여서..' 악의 기준은 여로보암이다. 아.. 영원히 고통받는 여로보암..



이스라엘의 종교 엘리트 집단은 여려 명의 왕을 만들어냈다. 사울을 왕에 올렸다가 끌어내려서 자기들 힘이 막강함을 과시했고, 다윗을 왕위로 올리고, 그 권력을 견제했다. 역전의 용사이자, 이스라엘 최고의 네임드인 다윗도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받아들였는데.. 감히 듣보잡 여로보암 따위가 자기들을 아예 쌩까다니... 여로보암이 잘못했네..



참고로 남유다 왕들에 대해서는 북이스엘왕보다는 좀 더 긍정적으로 기술하는데, 여기선 '다윗' 이 기준점임. 유다 왕을 칭찬할 땐,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를 ctrl+v. 유다 왕을 욕할 땐,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는 달라서" 라는 문장을 ctrl+v... 자기들 권력을 좀 뺏어가긴 했지만, 다윗은 자기들 말을 들었다 이거지.. 이런 류의 집단이 이렇게 뒤끝이 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