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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달콤한 인생

by R.H. 2009. 8. 18.


선우의 상상인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아니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말이 안 된다.” 영화의 마지막은 선우가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복싱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장면의 플래시백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모든 내용은 선우의 상상이었던 걸까?

 

감독의 전작인 장화 홍련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장화 홍련의 마지막 장면 역시 달콤한 인생처럼 주인공의 플래시백으로 끝난다. 영화의 마지막에 수미가 홀로 앉아 있는 호숫가. 영화의 초반부에 수미는 동생 수연과 그 곳에 함께 앉아 있다. 장화 홍련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 내용이 수미의 상상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달콤한 인생은? 영화의 마지막 구성 방식은 장화 홍련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상상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영화 속의 이야기들이 비논리로 가득하다는 점 역시 선우의 상상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상상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선우의 죽음이 상상이 아니라 진짜일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어쩌면 선우의 죽음이 진짜인지, 그의 상상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선우의 죽음을 둘러싼 이러한 의문은 영화 스토리의 비논리 때문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비논리로 가득하다. 선우가 보스에게 전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겪는 끔찍한 일들, 선우가 머리통에 총을 맞고도 즉사하지 않는 점, 마지막에 난데없이 나타난 이름 모를 총잡이(에릭). 당췌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의 논리 정연함이 아닌 것 같다. 마치 추상화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 인간의 얼굴을 일그러진 모습으로 실제 인간의 얼굴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묘사한 것처럼 말이다. 화가가 바보여서, 혹은 그림을 못 그려서 사람의  얼굴을 이상하게 비논리적으로 그린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화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표현하고 싶은 무엇이 있기에, 고의적으로 논리를 무시한 그림을 그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비논리, 비합리, 말이 안 되는 스토리는 고의적인 게 아닌가 싶다.



흔들리는 마음, 감추고 싶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 뿐이다.


선우는 보스의 애인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보스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게 문제를 일으키는 발단이다.

어느날 갑자기 (Right At Your Door) 라는 영화에도 감정을 논리로 포장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선우가 느끼는 사랑에 흔들리는 감정하고는 전혀 다른 공포에 흔들리는 감정이라는 점은 다르다. 남편 브래드는 공포에 사로잡힌 자신의 마음을 논리로 포장한다. 아내인 렉시에게 밖에서 의료진이 올 때까지 머무르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합리적이어서 아내도 종국에는 받아들인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러한 감정의 합리화가 파국의 결론을 가져오는 발단이었다.


어린애들을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같은 반 짝꿍을 일부러 괴롭힌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한 행동인데, 되려 이게 더 눈에 확 들어온다. 본인은 짝꿍을 좋아하는 감정을 교묘하게 숨겼다고 착각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다. 선우 역시 합리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고 착각하지만, 보스 눈에는 되려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내 마음이 흔들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원인을 밖에서 찾는다. 감정이 크게 흔들릴 때 자신의 판단미스를 인정하기보다는 잘못된 판단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설정한 방향에 부합하는 팩트들만을 꽉 붙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감정의 흔들림에서 시작된 자기 합리화의 결과는 끔찍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자신의 감정이 흔들렸다는 사실을 감추고, 이를 합리화시켜서 자신조차 속인다. 자신이 흔들린 게 아니라 바람이, 나뭇가지가 흔들린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문제가 커지고 난 다음에야, 세상에서 실컷 두들겨 맞고 난 다음에야 인정한다. 내가 흔들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