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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여름,가을,겨울...그리고 봄

by R.H. 2009. 8. 18.


<스포주의>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4명의 주인공이 소박한 꿈을 갖게 되고, 그 꿈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실수(혹은 결함)가 그들을 마약에 중독되게 만들어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여름, 가을, 겨울 3부분으로 나누어져 전개된다. 이제 그들의 여름, 가을, 겨울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여름

사라는 남편과 아들을 떠나 보내고 홀로 생활하고 있다. 그녀의 일상에서 즐거움을 주는 것은 티비 시청과 초콜릿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그녀가 티비 출연을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단다. 그녀는 이제 티비 출연이라는 소박한 꿈을 갖게 되고, 무대에서 입을 빨간 드레스를 걸쳐 보는데, 청춘 시절에 입었던 빨간 드레스는 더 이상 몸에 맞지 않다. 해서 그녀는 그 빨간 드레스를 입기 위해 약물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25파운드를 감량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마냥 행복하다. 그런데 사라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발견한 아들 해리는 그녀가 복용하는 다이어트 약이 마약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걸 알고, 화를 낸다. 도대체 그 빨간 드레스가 뭐 대수냐면서...이런 아들에게 그녀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 옷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고, 웃음 짓게 하는 이유야. 내가 가진 게 뭐가 있니? 네 아버지도 떠나고, 너도 떠나고... 난 나이 들고 외로워. 돌봐줄 사람도 없고. 난 내가 그 옷을 티비에서 입을 생각하는 게 기분 좋아. 그리고 너하고 네 아버지하고..."

사라의 꿈이 과연 티비 출연이었을까? 그녀가 진짜로 바랬던 건 티비 출연이 아니라, 남편과 아들, 즉 소박한 가족에 대한 희망이었다.


해리와 메리언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고, 타이론은 이들과 친구지간이다. 이 세 친구의 꿈은 작은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 마약 소매를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 여름 시즌, 그들의 마약 비즈니스는 성공적이다. 돈은 차곡차곡 모이고, 해리와 메리언의 사랑은 아름답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인다.

가을

사라는 드디어 다이어트 약의 오남용으로 환각 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티비에 출연한 모습의 환각을 보면서 행복해하다가도 냉장고가 자신을 괴롭히는 환각에 두려워한다. 그런데 이런 환각에 시달리면서 그녀는 티비 출연의 행복한 환각은 유지하고, 두려운 환각은 없애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약을 먹는다.


순조롭게 돈을 모아가던 세 친구. 그런데 그 지역 이탈리아 갱단과 흑인 갱단의 영역 싸움이 격렬해지고, 분쟁에 말려들면서 그들은 돈을 잃고, 더 이상 약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돈이 필요해진 해리는 자신의 여자친구 메리언에게 매춘을 강요하고, 그나마 메리언의 매춘으로 얻은 돈 마저 허공에 날리면서 해리와 타이런은 약을 구하기 위해 플로리다로 떠나게 된다.

겨울

사라는 드리어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리고 병원으로 압송된다. 해리의 팔은 마약으로 인해 썩기 시작하고, 더 이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들른 병원에서 해리와 타이론은 경찰에 체포된다. 그리고 메리언은 정말 지독한 매춘을 하게 되는데...


영화에서 겨울 파트는 정말 매섭고 지독하다. 사라는 전기 충격 요법을 받고, 해리의 팔은 잘려 나가고 타이론은 고통스런 노역을 하며, 메리언은...겨울은 모두에게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런가.

그리고...봄

영화는 여름, 가을, 겨울로 끝이다. 영화에서 봄은 없다. 봄은 꿈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봄, 그들의 꿈. 영화의 마지막에 사라가 환각에서 보는 것은 티비에 출연하는 자신을 다정하게 끌어안는 아들의 모습이다. 해리는 선착장에 서 있는 화사한 메리언의 모습을, 타이런은 자신의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환각에서 본다.
 

이들이 표면적으로 꾸었던 꿈은 티비 출연과 다이어트, 비즈니스의 성공이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마음 속 깊이에서 원했던 꿈은 바로 소박하고 따뜻한 가정이었다. 아들을 품에 안고 싶어하는 엄마,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싶어하는 연인,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은 아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진정 원하던 꿈이었다. 겨우 그거였다. 겨우...


겨우 그 작은 꿈을 위해 그들은 그렇게도 먼 길을 돌고 돈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가지고 싶다는 작은 열망을 이루기 위해 시작된 작은 균열(다이어트 약의 오남용과 마약 거래)이 그들을 그리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 작은 꿈조차 이루기 힘든 것이 현실인 걸까? 현실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이리도 지독하게 꿈을 용납하지 않을 줄이야.


그들은 이번 생에서 봄을 맞이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하는 걸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네 명의 주인공 모두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구부린 자세를 하고 있다. 이는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이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우리는 가장 안락하고 행복했다고 한다. 이번 생애의 여름,가을, 겨울을 보낸 그들이 다시 엄마의 자궁에서 생을 시작하는 봄을 맞이할거라는 말일까?  봄(자궁)으로의 회귀. 혹독한 겨울을 지낸 그들, 아니 우리에게 따스한 봄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