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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느헤미야 1장 ~13장 : 3차 포로 귀환

by R.H. 2018. 4. 26.



3차 포로 귀환 - 성벽 재건



"나의 형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다에서 왔기에, 이리로 사로잡혀 오지 않고, 그 곳에 남아 있는 유다 사람들은 어떠한지, 예루살렘의 형편은 어떠한지를 물어 보았다. 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사로잡혀 오지 않고 그 지방에 남은 사람들은, 거기에서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탔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나는 주저앉아서 울었다" -느헤미야 1장 2절~4절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궁에서 술 관리를 맡은 사람인데, 단순 시종이 아니라, 왕실 관료로 봐야 할 듯. 그런데 어느날 왕이 느헤미야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이에 느헤미야는 저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 그 성읍을 다시 세우고 싶다고 아룀. 왕이 허락. 총독들에게 보내는 왕의 친서도 몇 통 받는다.(3차 포로 귀환)



이렇게 보면, 애국애민하는 느헤미야의 갸륵한 마음을 어여삐 보신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대자대비한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보인다. 이런 건 동화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상당히 정치적인 계산 속에 이루어진 일이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이 업신 받는다고 했는데 업신의 주체는 누구인가? 페르시아 제국인가? 페르시아 사람들이 잿더미로 변한 후진 유다 땅, 그 먼 곳까지 굳이 쫓아가서 업신여길 이유는 없고..유대인을 업신여기는 것은 이스라엘 땅에서 같이 사는 다른 민족인 것이다. 즉, 지역 민족 간에 갈등이 있고, 남아있는 유대인들이 기를 못 펴고 사는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진즉에 앗시리에 멸망했는데, 앗시리아는 민족 이주 정책을 써서, 북이스라엘 지역은 민족 짬뽕이 많이 된 상황이고, 남유다는 좀 늦게 바빌론에 멸망 당해서, 유대인의 정체성이 더 강한 상황이다. 또, 페르시아 왕궁 입장에서는 앗시리아 출신들과 혼혈이 된 북이스라엘 그러니까 사마리아인들이 그 지역에서 너무 강성해지는 것도 거슬릴 것이다 . 그러니 페르시아 왕은 남유다 출신의 느헤미야를 총독으로 파견한 것. 이렇게 페르시아 왕궁과 유대 민족 간의 이해관계가 좀 맞아떨어진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왕은 나에게 장교들과 기병대를 딸려 보내어, 나와 함께 가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길을 떠나, 유프라테스 서쪽 지방의 총독들에게로 가서, 왕의 친서를 전하였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노릇을 하던 암몬 사람 도비야에게 이 소식이 들어갔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의 형편을 좋게 하려고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몹시 근심하였다고 한다" -느헤미야 2장 9절~10절



그러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는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온 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땅에 도착하자마자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업을 시작한다.



"당신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요? 왕에게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하면서,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었다. 내가 나서서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일을 꼭 이루어 주실 것이오. 성벽을 다시 쌓는 일은 그분의 종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오. 예루살렘에서는 당신들이 차지할 몫이 없소. 주장할 권리도 기억할 만한 전통도 없소." -2장 19절20절 



에스라서의 성전 재건 때하고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에스라서에서는 "앗시리아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을 때부터 이제까지, 우리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의 하나님을 섬기며, 줄곧 제사를 드려 왔으니, 우리도 당신들과 함께 성전을 짓도록 하여 주시오"(에스라 4장)라고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이 말하는데, 태도가 상당히 공손하고, 조심스럽다. 그런데 느헤미야에서 그들은 성벽 재건을 두고 다짜고짜 반대하면서 업신여기고 비웃고, 왕에게 반역이라도 할 셈이냐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먼저 번의 성전 재건에서 대차게 거절 당했으니 감정이 좋을 리 없는 건 당연하고.. 



에스라는 혈통에 방점을 둔 것이고, 느헤미야는 권력 충돌에 방점을 두고 기록했기 때문에  비슷한 사건을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들은 우리와는 이제 다른 민족이다!! 우리 민족끼리!! 라는 표어를 가지고  에스라가 자신의 일에 임했지만, 느헤미야는 이들 사이의 갈등은 정치 권력의 문제가 가장 주요한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 것이다. 에스라서에는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며, 사마리아인 민족들 전체를 뭉뚱그려 적으로 규정했는데, 느헤미야에서는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인물을 콕 찝어서 적대적으로 기록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오기 전부터 이 지역 패권을 쥐고 있던 토호들이다. 그러니 페르시아 중앙 정부에서 파견한 유대인 느헤미야와 지역 토호 간의 권력 갈등인 것이다.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인 스가냐의 사위인데다가,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인 므술람의 딸과 결혼하였으므로, 유다에는 그와 동맹을 맺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내 앞에서도 서슴없이 도비야를 칭찬하고, 내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그에게 일러바쳤다. 그래서 도비야는 나에게 협박 편지를 여러 통 보내서 위협하였다. -느헤미야 6장 17절~19절



산발랏과 도비야는 많은 유대인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으며, 유대인들은 느헤미야 앞에서 도비야를 두둔하고, 스파이짓까지도 했다. 심지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웠을 대는 무려 제사장이나 되는 사람이(엘리아십) 전 뜰 안에 도비야가 살 방을 차려 주기까지 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성전 건축 방해를 끊임없이 해왔던 인물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느헤미야 역시 이민족과의 결혼에 대해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에스라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강제 이혼을 명한 것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느헤미야가 이민족과의 결혼을 금하는 이유는 에스라에 비해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정치적이다. 그래서 에스라의 행동을 보면서는 저게 미쳤나... 싶은 생각이 들고 혐오감이 드는 데 반해, 느헤미야의 관점에서 이 사안을 접근하면 납득이 가는 것이다. 같은 얘기를 해도 누가 하면 듣기 싫은 개소리가 되고, 누가 하면 '뭐 그럴만하네..' 라고 수긍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인 요야다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기에, 나는 그자를, 내 앞에서 얼씬도 못하도록 쫓아냈다. 느헤미야 13장 27절



느헤미야서는 에스라서와 마찬가지로 귀환한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재건과, 이민족과의 결혼 금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뉘앙스가 다르다. 같은 이야기인데, 접근 방향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다. 에스라는 학자이고, 느헤미야는 정치인이다. 즉, 에스라는 교조주의적이고, 느헤미야는 현실주의적이다. 열왕기 /역대기처럼, 에스라/느헤미야도 같은 시대,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기록하면서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다. 이런 건 참 괜찮은 듯.



추가


"백성 사이에서 유다인 동포를 원망하는 소리가 크게 일고 있다." -느헤미야 5장 1절 



백성은 원래 이스라엘 땅에 계속 살고 있던 사람들, 유다인 동포는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귀환 온 사람들을 말하는 듯 하다. 포로로 끌려갔다고 해서 쇠고랑 차고, 해진 옷 입고, 맨발로 처참하게 산 것은 아님. 오히려 이스라엘 땅에 남아 살던 사람들의 삶이 훨씬 더 피폐했던 것 같다. 느헤미야도 그런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자원하여 고국으로 돌아왔고... 귀환한 사람의 수는 모두 32,360명인데, 그들이 부리던 남녀 종이 7,347명(느헤미야 7장)이라고 했다. 페르시아에서 하인을 부리고 살았다는 말. 게다가 페르시아 왕이 귀환할 때, 제국에서 모은 돈 다 가져가도 좋다고 허락한 걸 보면, 재미동포, 아니 재페동포들의 경제적 삶이 이스라엘에 남았던 백성들보다 훨씬 더 풍요로웠을 것. 


그래서 느헤미야 5장에서의 사태가 벌어졌다. 즉,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귀국 동포들이 본토에 남아있던 가난한 백성들에게 돈 놀이를 하니, 백성들이 귀환 동포를 원망하는 소리가 커진 것. 이에 느헤미야가 이자 놀이 그만두라고 호소하고, 그러기로 합의함. 


그런데 동포끼리 돈 놀이 하며 고혈짜지 맙시다!! 라고 한다고 해서 이게 쉽게 절충될 문제가 아니다. 이해 관계 앞에서 말 한디로 이게 된다고?? 돈 앞에서, 밥그릇 앞에서, 탐욕 앞에서 이런 게 어디 통한단 말인가.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처리되었지만, 이 합의와 설득의 과정은 지난했을 것. 근데 이걸 해낼 걸 보면, 느헤미야는 절충의 능력, 협상의 능력이 탁월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포로로 끌려갔지만, 제국의 왕실에서 관료까지 했을 것이고.. 느헤미야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적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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