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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역대상하 감상평

by R.H. 2018. 4. 20.



열왕기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왕조 모두를 기록 한데 반해, 역대기는 남유다 왕조에 대한 기록이다. 역대기가 북이스라엘 왕조를 배제한 것은 다분히 고의적이다. 즉, 기록자의 주관적 관점이 개입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역대기에 숨어있는 그 관점은 무엇인가.. 하나는 남유다 왕조에 정통성을 부여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정통성 있는 남유다 왕조가 종교 엘리트 그룹의 특권을 인정하고 보장했다는 것이다.



물론 열왕기도 기록자의 주관적 관점은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북이스라엘은 주님 보시기에(라고 쓰고 주님의 사람들인 종교인들 보기에) 옳지 않았다는 식이다. 남유다는 좋은 왕도 있고, 나쁜 왕도 있다는 식이지만, 북이스라엘 왕들은 거의가 악한 길을 걸은 왕으로 평가한다. 그 악의 기준이 무엇이냐. 여로보암이다. 여로보암보다 좀 낫거나, 여로보암보다 더 악하거나..



그런데 여로보암은 자기 힘만으로 왕이 된 사람이 아니다. 선지자 아히야를 대표로 한 종교 엘리트 집단의 지지로 왕이 된 사람이다. 그런데 왕이 된 여로보암은 뒤통수 친다. 금송아지를 둔 제단을 만들고, 제사장도 여로보암 지 맘에 드는 사람으로 임명한다. 제사장직은 모세 이후 대대로 레위 집안의 몫이었건만.. 하여 북에서 특권을 박탈당한 레위인들은 자기들의 밭과 목장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러니... 열왕기에서는 앵무새처럼 여로보암을 욕하고 욕하고 또 욕한 것이다. 그리고 역대기에서는 자기들 즉 레위 집안 사람들의 특권을 여러번 기술해 놓았다. 그 예들을 한 번 짚어보면...



언약의 궤 운반 사건



다윗이 언약의 궤를 다윗성으로 가져간 사건이 사무엘서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야기라는 게 좀 야리꾸리하다. 언약의 궤를 운반하는 소가 넘어져서 웃시야가 이를 붙잡으려다 신의 진노를 사서 그 자리에서 사망한 사건이다. 저게 신의 진노를 살 일인가?? 저게 죽어마땅한 죄인가?? 여튼 이 이상한 사건 뒤에 운반 작업은 중단되고, 언약의 궤를 오벳에돔이라는 사람 집에 임시 안치한다. 그리고 몇 달 후 언약의 궤를 다윗성으로 가져가는 데 성공한다. 사무엘서에서는 몇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해서 중단된 언약의 궤 운반 작업이 다시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냥 주님께서 오벳에돔의 집과 그에게 딸린 모든 것에 복을 내려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 왕이 기뻐하며 가져갔다는 것이다.(사무엘하 6:12) 너무 얼렁뚱땅 느낌인데... 이 사건을 다시 기록한 역대하를 살펴보면, 비어 있는 부분이 메꿔진다.



"여러분은 레위 가문의 족장들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친족들을 성결하게 하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궤를 내가 마련한 장소로 옮기십시오. 지난번에는 여러분이 메지 않았으므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규례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역대상 15장 12절~13절



다위은 언약의 궤 운반 중단 사태가 레위인들이 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러니까 레위인들의 온전한 승인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언약의 궤는 그냥 상자떼기가 아니다. 신권의 상징이다. 이스라엘의 양대 권력 중에 하나를 상징하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권력의 상징물을 다윗이 자기 집으로 가져간다?? 종교인 집단의 반발이 거센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마냥 반대하면서 언약의 궤를 저렇게 임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집념의 다윗 아닌가. 다윗이 이걸 포기할 인간이 절대 아닌 것도 안다. 그렇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어내는 것이 상책이다.



하여, 그 몇 달간의 공백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무엘서에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역대기를 통해 추론해 보면, 그 기간에 설득과 협상 그리고 타협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윗이 레위인들에게 그들의 고유한 특권을 분명하게 약속한 것이 역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비록 언약의 궤는 나 다윗이 가져가지만, 대대로 하던 제사장 일도 계속하고, 언약의 궤도 계속 관리하고, 나중에 성전도 건축하면 주요 보직도 니들이 계속해. 그거 분명히 약속하고, 사람들 앞에서 선포도 할게...라고 말이다.



"레위 사람 말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궤를 메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기 때문이다." -역대상 15장 2절



다윗은 레위 사람들은 주님이 선택했다고까지 명시해준다. 이렇게 약속만 한 게 아니라 이 대대적인 이벤트의 맨 앞에 레위인들을 세우고, 그들을 추켜세워주고,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해주고, 왕이 그들을 극진히 대우함을 사람들에게 전시해주기까지 한다. 게다가 이렇게 일회성 이벤트로 보여주기만 한 게 아니다. 그들과 의견이 충돌할 때마다 다윗은 강경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들이 비판하면, 무릎 꿇고(기도하며 반성하는 형식으로), 그들이 반대하면, 물러섰다.(성전 건축) 그러니 열왕기에서 기록자들은 다윗은 주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사람으로 평해준다. 주님 보시기에가 아니라, 주님의 사람들, 종교인들 보기에인 것...



웃시야, 제사장의 권리를 침해하다



"웃시야 왕은 힘이 세어지면서 교만하게 되더니, 드디어 악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주님의 성전 안에 있는 분향단에다가 분향을 하려고 그리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은 주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었다. 아사랴 제사장이, 용감하고 힘이 센 주님의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왕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웃시야 왕을 말렸다. 제사장들이 외쳤다. "웃시야 임금님께서는 들으십시오. 주님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일이 아닙니다. 분향하는 일은, 이 직무를 수행하도록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들, 곧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거룩한 곳에서 어서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왕이 범죄하였으니 주 하나님께 높임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웃시야는 성전 안 분향단 옆에 서서 향로를 들고 막 분향하려다가 이 말을 듣고 화를 냈다. 그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낼 때에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 <역대하 26장 16절~19절>



역대하에는 레위인들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왕에 대해서는 벌을 내리는 신공까지 보여주는데...



성전에서 분향하는 일이, 무려 "악한 일" 이란다. 우리의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는데, 단순히 왕이 분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고, 그들의 특권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함축한 것이다. 그래서 용감하고 힘이 센 제사장 80명이 떼로 들어가서 왕을 말렸다니.. 이것은 뭐 무력시위 수준이다. 그러면서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는 제사장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에 왕이 화를 내니까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단다. 우리 힘이 이 정도야!! 라고 과시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역대하에는 제사장들의 특권이 무엇이고, 이것은 신성불가침하다는 뉘앙스의 말이 여기저기 박혀있다. (민족 종교 재건을 대대적으로 한 히스기야 왕 때에도, 히스기야가 레위인들을 앞장세우고, 그들에게 얼마나 공들였는지, 그들의 특권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확인해주는지가 역대하 29장에도 자세히 기록)



여하튼 기록에는 분명 관점이라는 것이 들어간다. 그래서 열왕기와 역대기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뉘앙스가 좀 다른 것이다. 열왕기에 이미 기록한 사건들을 굳이 다시 반복한 것은 그래서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이야기에서 빼고 싶은 건 빼고, 보태고 싶은 것은 보탰다. 그것이 바로 기록자의 주관이다. 그러니까...열왕기의 캐치프레이즈가 여로보암은 악의 축이다!!! 라면, 역대기의 캐치프레이즈는 레위인의 특권이여 영원하라!! 라는 느낌적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