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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39

조지 오웰 <1984> 증오를 확산하라! "2분간의 증오 프로그램이 특히 끔찍했던 이유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데 있다. 30초면 모든 가식적인 행동들이 불필요하게 된다. 공포와 복수의 끔찍한 황홀경, 남을 죽이고 싶은 욕망, 큰 쇠망치로 누군가의 얼굴을 마구 때리고 싶은 충동 등이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전류처럼 휘젓고 지나가게 된다." 는 일당독재 체제가 구사 가능한 모든 테크닉이 망라된 소설이다. 끝없는 전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감시와 고발로 불안을 확산시키며, 2분간의 증오 프로그램으로 서로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확산시킨다. 2분간의 증오 프로그램에서 지목된 규탄의 대상은 골드스타인이라는 반란자인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 2017. 9. 5.
오로네 드 발자크 <골짜기의 백합, 1836> 모르소프 백작은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몰락 귀족이다. 게다가 가진 재산도 없는 무능력자다. 대혁명 이후 긴긴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다가올 시간을 대비하지 않은 그는 왕정이 복고되어 관직을 하사받고도, 정무감각 부족으로 고사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백작이라는 껍데기만 남은 이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그의 아내 모르소프 백작 부인(앙리에트)이다. 그녀는 가난한 남편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못난 남편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현모양처다. 그런데 모르소프 백작은 이런 그녀를 고마워하지 않는다. 고마워하긴커녕 사사건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사람을 들들 볶는다. 그가 할 줄 아는 것은 훈장질뿐이다. 뭘 진짜로 가르쳐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누군가를 꾸짖음으로써 자신에게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전형적.. 2017. 7. 1.
아멜리 노통브 <생명의 한 형태, 2010> "모든 작가들 안에는 사기꾼 한 명씩 들어앉아 있어요." 아멜리 노통브가 생각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란 혐오스러운 뚱보이고, 세상과 단절한 자이고, 자기 안에 갇힌 자이며, 거짓말쟁이다. 왜 이 뚱보(자아 비대증 환자)는 거짓말이라는 열정에 사로잡혀 글을 쓰는가. 탈출하고 싶기 때문이다. 맬빈은 부모님 정비소 한 구석탱이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갇혀있는 것이다. 그는 탈출을 꿈꾼다. 그 탈출은 작가에게 편지를 쓰면서 시작된다. 맬빈은 작가, 즉 문학을 향해 글을 바쳤던 것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고, 작품에 대한 자기 나름의 평을 끄적거리고, 자신의 느낌을 쓰다가,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 한탄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하는 바로 그 순서다. 여튼 맬빈은 한참 그러다가 자신의 초라한 모.. 2017. 3. 11.
아가사 크리스티 <인생의 양식, 1930> 음악과 예술, 그리고 천재성에 대한 이야기다. 무겁고 탁한 소재인데, 이 소설은 어딘가 모르게 가볍다. 인물 묘사도 겉도는 느낌이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세바스찬, 언제나 패자들 편에 서 있는 조, 엘리트 코스를 밟다가 음악에 미치는 버넌이 주요 등장 인물이다. 다들 개성 넘칠 듯한 인물인데, 어딘가 김빠진 느낌이다. 되려 주변 인물들이 생동감 있다. 버넌의 엄마인 마이어와 넬 엄마의 계산속과 이기심, 자식을 쥐고 흔들려는 태도는 정확한 필치로 그려냈다. 이들은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주부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이 계층 여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잘 묘사하는 듯하다. 에서도 중산층 가정주부의 자기 기만적 삶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무엇보다 주인공 버넌에게 별 공감이 안 간다. 그는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난 남.. 2017. 3. 4.
도스또예프스끼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1849> 이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면 네또츠까라는 소녀의 성장이다. 이야기는 삼부로 전개된다. 첫 번째 부분은 한때 천재성을 가졌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만 뒷걸음쳐서, 결국 그 천재성을 상실해버린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광기와 절망, 그리고 파멸을 네또츠까라는 8세 소녀의 눈으로 묘사한다.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 다운그레이드 버젼같다. 스트릭랜드는 몸과 마음을 불사르며 경계의 끝까지 자신을 몰아가는데,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중요한 고비마다 주저주저함) 두 번째 부분은 고아가 된 네또츠까가 공작 집에 들어가 살면서 지내는 이야기다. 그 집 딸인, 철부지 동갑내기 소녀와 소소하게 갈등하고 아기자기하게 질투하다 절친되는 내용. 세 번째 부분은 공작과 그의 어린 딸이 다른 지역으로 가버리면서,.. 2017. 2. 17.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1898>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인간을 바라보는 에밀 졸라의 시선은 위험하다. 그의 소설들 속 인물들은 욕망과 공포 사이를 어쩔줄 몰라하며 허우적거리다 파멸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에밀 졸라의 기저를 흐르는 사상은 결정론이다. 인간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고,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얼핏 위험해 보이는 사상이고, 이걸로 욕도 좀 많이 먹으셨다. 특히 진보진영에서. 이렇게 그의 시선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매우 차갑기도 하다. 작가는 무심한 얼굴, 차가운 회색빛 눈으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상황과 인물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차가운 시선으로 뜨거운 욕망에 대해 기록한 느낌이다. 이런 그가 드레퓌스 사건, 애국보수주의와 인종주의가 물결치는 이 사건에, 뜨겁게 뛰.. 2017. 2. 8.
기 드 모파상 <비계 덩어리, 1880> 프로이센이 점령한 지역에서, 간신히 통행 허가증을 받은 마차 한 대가 눈 속을 헤치며 빠져나간다.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10명의 승객을 태운 이 마차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상인 부부, 부르주아 부부, 유서 깊은 가문의 백작 부부, 2명의 수녀, 혁명가, 그리고 불 드 쉬프(비계 덩어리)라 불리는 한 명의 매춘부.. 모파상이 그린 설국 열차다. 여튼,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소상공인 부인, 부르주아 부인, 백작 부인은 마지막 승객의 신분, 즉 매춘부를 알아보자마자 자기들끼리 급하게 친해진다. 마치 건전한 "가정 주부의 위엄" 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다른 승객들 역시 그녀를 외면한다. 어디 감히 천한 것이.. 이런 느낌. 그런데 점심을 먹기로 한 중간 기착지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더디 달려가는 마차. 미처 음식.. 2017. 2. 4.
막심 고리키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1905> "그들은 삶에서 추방당한 사람들, 술과 심술에 절어 있는 사람들, 더럽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은퇴한 대위 쿠발다가 운영하는 여인숙의 장기 투숙객들은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자들이다. 생존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다.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고리키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거짓 묘사를 하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마음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 이런 거 없다. 고리키는 "삶에서 추방당한" 지친 사람들의 추하고 악랄한 모습, 거칠고 폭력적이며 저열한 모습을 숨김없이, 그리고 가감없이 묘사한다. 쿠발다가 여인숙을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그 건물은 자본가이자 공장주인 페투니코프 소유다. 쿠발다는 그저 건물을 빌려 운영하는 전형적인 영세자영업자다. 그나마도 딱히 돈을 벌겠다, 모으겠다는 목적은 조금도 .. 2017. 2. 3.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1954> 소설에는 세 유형의 성인 여성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애인인 엘자. 아버지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안느. 그리고 이웃 별장의 중산층 주부. 이 세 유형의 여인에 대한 1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쎄실의 감정은 제각각이다. "반은 상스럽고 반은 세속적인 쾌락을 즐기는 그런 여자... 상냥하고 너무 단순했으며 건방지지도 않았다." 먼저 아버지의 애인인 젊고 아름다운 엘자를 쎄실은 안쓰러워 한다. 엘자가 상스럽다고는 하지만 경멸하는 감정은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엘자와 쿵짝이 맞아서 친한 것도 아니다. 20대의 젊음을 가졌지만, 그것밖에는 없는 엘자를 안쓰러워하는 것이다. 그 젊음은 곧 종말을 맞이할 테니.. "그녀는 내 머리칼과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이제 그만 져주고 싶은 욕망.. 2017. 1. 30.
프란츠 카프카 <소송, 1914>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게 분명했다.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날 아침 느닷없이 그가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요제프 K는 어느 날 느닷없이 날벼락 같은 기소를 당한다. 무엇 때문에 누구로부터 소송당했는지 알 수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소설이 끝나고 난 후에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막연하고, 애매한 채, 그저 우리의 주인공은 소송을 당했다. 소설 속에서 법원은 도시의 다락방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법과 소송은 그렇게 우리 삶 곳곳에 박혀서 우리를 괴롭히고 옥죄고 있다는 의미다. K는 이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숙부가 소개한 변호사를 만나고, 브로커를 만나고, 법원 공무원을 만나고 다닌다. 법과 소송을 이야기하는데,.. 2017.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