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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창세기 4장 카인과 아벨

by R.H. 2009. 8. 15.

"If you do what is right, will you not be accepted? But if you do not what is right, sin is crouching at your doors, it desires to have you, but you must master it." 
 
네가(카인) 옳은 일을 한다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그러나 네가(카인)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죄가 네 집 앞에서 포효하고 너를 사로잡으려 할 것이다. 너는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잘 아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신이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만 기쁘게 받아, 카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살인해서 추방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카인의 제물이 왜 신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에 대한 이유가 정확히 나와 있진 않다. 기독교인들은 카인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제물이 아니어서라고 하지만, 분명 창세기 4장에 구체적인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창세기 4장에 나온 말들을 토대로 추론에 들어가는 상상 놀이를 이제부터 시작해 본다.


 
카리스마 리더 카인

 
이야기의 앞뒤 정황을 볼때 카인의 성격은 불같았던 것 같다. 그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매우 감정적인, 즉 쉽게 격정에 휘말리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카인은 농업을 하는 자였다" 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카인이 그냥 평범한 땅 한떼기 가지고 있는 가난한 농부였다면, 성경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단순한 농부가 아니라 농사를 짓는 공동체의 우두머리였을 것이다.

 
농업은 계급 사회의 출발점이다. 이는 규범, 법규같은 사회 시스템을 갖추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수렵 생활은 내일은 염려하지 않지만. 농업은 내일을 걱정하고 대비한다. 농업 사회, 즉 계급 사회에서는 질서 유지가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책임지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카인이 그 역할을 하는 농업 공동체의 리더였을 것이다.
 

어떤 틀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위압적인 통제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공동체 사회를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도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이런한 농업 공동체 설립과 유지 과정에서 카인은 권력을 위임받고 소유하고 사용했을 것이다. 

 

사상가 아

 


아벨은 "가축을 치는 자" 다. 그는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기 보다는 개인주의자에 가깝다. 카인이 하루 종일 일꾼들을 통제하고 내일의 일정을 계획하느라 정신없이 지낸다면, 아벨은 상대적으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목동이 할 일이 뭐 그리 많겠는가? 염소나 양을 아침에 끌고 나가 풀받에 풀어놓고 집에 갈때까지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양치기 소년 이라는 동화에도 양치기 소년이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거짓말하면서 놀겠는가?)
 


불같은 성격의 카인과 달리 아벨은 쿨했을 것이다. 카인이 정력적인 활동가라면 아벨은 조용한 사색가다. 그의 이름 아벨의 뜻은  "공허, 허무" 다. 대체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시니컬하거나 허무주의적이다.


 
억울한 카인, 용서를 빌지 않다.


 
그래서 카인은 억울하다. 아벨은 지 몸 하나만 챙기면 그만이기에 고함 지를 일도, 인상 쓸 일도, 화낼 일도 없다. 그러나 카인은? 사회 틀을 유지하고,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인상도 써야하고, 욕도 하고, 고함도 질러야 한다. 카인이 화 나는 건 당연하다. 카인도 지 몸 하나만 생각하고 살면 아벨처럼 쿨할 수 있다. 그런데 카인은 공동체를 책임지고 있지 아니한가.
    


권력자의 사상가에 대한 질투, 억압, 탄압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히틀러도 그랬고, 진시황도 그랬다. 근대의 언론 통제, 지식인 탄압도 정도의 차이 뿐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지속 되는 현상이다.


 
신이 카인을 이해한 이유는


 
자, 그렇다면 왜 신이 카인의 제물을 못마땅해 한 걸까? 카인의 제물인 농작물은 계급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착취의 산물이다. 이것을 어찌 기쁘게 받아 들인단 말인가? 그러나 신은 카인을 이해한다.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자에게 권력은 정당하고, 통제와 질서를 위해서는 물리적 힘과 강제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신은 이해한다. 그렇다해서 착취의 산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신은 카인에게 표시를 주었고, 그를 해하는 자는 7배에 달하는 보복을 당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카인의 표시는 책임감을 수행하는 자이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부정적 모습들을 신은 이해하겠다는 뜻이며, 그를 해치지 못하게 엄중히 말한 것은 리더의 고달픔과 딜레마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혈육을 살해한 자를 완전히 사면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카인은 추방 당한다. 하지만 카인이 누구인가? 카리스마 리더 아니던가. 그는 추방 당한 후에도 에녹이라는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창세기 4장 후반부에 보면 그 도시는 매우 번성했던 것 같다. 그의 자손들이 가축을 치고, 음악을 하고, 동과 철로 연장 도구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라멕이라는 카인의 후손은 자신을 해하는 자는 70배에 달하는 보복을 당하리라는 말을 한다. 이는 아마도 라멕의 세대에 이르러 그 도시가 카인이 건설했을 당시보다 70배 정도 규모가 커졌지기에, 리더의 권력과 책임도 초창기보다 10배 정도 커졌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