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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열왕기하 16장 ~ 20장 : 남유다 왕 아하스, 히스기야

by R.H. 2018. 4. 18.



아하스 왕  : 20살에 왕위에 올라 16년간 통치



"아하스는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임금님의 신하이며 아들입니다. 올라오셔서, 나를 공격하고 있는 시리아 왕과 이스라엘 왕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그런 다음에 아하스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금과 은을 모두 꺼내어, 앗시리아의 왕에게 선물로 보냈다. 앗시리아의 왕이 그의 요청을 듣고, 다마스쿠스로 진군하여 올라와서는 그 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그 주민을 길로 사로잡아 가고, 르신은 살해하였다" <열왕기하 16장 7절~9절>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연합 공격을 받은 아하스는 앗시리아의 다글랏발레셀 왕에게 전령을 보내 자신은 앗시리아 왕의 신하이자 아들이라며 바짝 엎드려, 와서 구해달라고 애걸한다. 이때. 있는 보물 없는 보물 다 끌어다가 갖다 바침. 그래서 앗시리아 왕이 도와준다. 위기를 넘긴 아하스는 고마움을 표할 겸 해서 앗시리아 왕을 만나러 다마스쿠스로 가는데, 거기서 다마스쿠스 스타일의 제단을 보고는 그것을 본  설계도를 우리야 제사장에게 보낸다. 우리야 제사장은 다마스쿠스 스타일의 제단을 만들어 번제를 올리고, 아하스 왕은 앗시리아 왕 비위를 맞추려고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왕의 전용 통로 싹 다 없애버린다. 제사장들은 좀 이렇다. 같은 종교 엘리트지만, 반골 기질이 강한 예언자 집단과는 완전히 다른 기득권층이다. 



"그리하여 주 그의 하나님께서 그를 시리아 왕의 손에 넘기시니, 시리아 왕이 그를 치고, 그의 군대를 많이 사로잡아 다마스쿠스로 이끌고 갔다. 또 주님께서 그를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니, 이스라엘 왕이 그를 크게 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이스라엘의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 왕이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들을 십이만 명이나 죽였다. 유다 사람들이 조상의 주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가 마아세야 왕자와 아스리감 궁내대신과 엘가나 총리대신을 죽였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의 동족인 유다 사람들을, 아내들과 아이들까지 합쳐 무려 이십만 명이나 사로잡고, 물건도 많이 약탈하여 사마리아로 가져 갔다" <역대하 28장 7절~9절>



여기서 잠깐 살펴볼 점은...역대하의 기록은 열왕기 기록과 살짝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공격에 아하스 왕이 개박살났다. 저렇게 처참하게 사마리아로 유다인들이 끌려가는데, 이 모습을 보다 못한, 사마리아의 오뎃이라는 예언자가 이들은 한민족이고 형제자매인데, 어찌 이렇게 학대할 수 있냐고 막아서고, 에브라임 자손의 여러 지도자들 역시 이건 아니라며, 브레이크를 걸어서, 헛벗은 남유다 포로들을 먹이고 입히고, 치료해줘서 남유다로 돌려보내 줄 지경이었다.



여튼, 역대하 기록으로는 이 사건은 남유다가 완전 쳐발린 걸고 끝나고, 나중에 에돔, 블레셋 사람 등등이 남유다를 공격해서 그 백성을 사로잡아가니, 아하스 왕이 앗시리아의 다글랏빌레셀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와서 도와주기는커녕, 아하스를 곤경에 빠뜨렸다고 한다. 음... 열왕기하에서는 앗시리아왕이 도와주고 아하스가 앗시리아 왕을 만나러 행차까지 하였다는데..(역대하 28장) 여튼 기록은 살짝 다르고, 뉘앙스는 완전 다르다.



열왕기하의 기록을 토대로 보면...아하스 왕은 자기 아들을 불태워 제물로 바치고, 산당과 언덕과 나무 아래(성황당인가..)에서 제사를 지내고 분향 하는 등, 우상을 숭배하고, 야만 풍속도 따르고, 다마스쿠스 스타일로 제단도 만들고,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왕이 소홀히 함을 앗시리아 왕에게 어필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시리아의 공격도 막고, 앗시리아한테도 군사적 공격을 당하지는 않는다.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하고, 아하스 왕의 다음 왕인 히스기야는 아하스와 다른 행보를 하면서 앗시리아한테 좀 뚜들겨 맞은 것과는 다른 결과.. 어쨌든 아하스 왕은 비굴 모드, 완전 친앗시리아 행보로 자기 임기 동안에는 어찌어찌 넘어간다. 이게 잘 한 건 아니고.. 그냥 폭탄 돌리기고, 다음 세대에 떠넘기기는 무사안일 뿐.. 뭐 여튼 본인은 곱게 죽으신 듯.



근데, 역대하의 기록을 토대로 보면...여기저기서 무지막지하게 뚜들겨 맞고, 이상한 짓거리만 한 왕임. 뭐, 열왕기하의 기록만으로도 못난 왕인 건 맞지만, 역대하의 기록으로 보면, 못났고 또 못난 왕. 그래서...왕실 묘지에도 못 묻힘.



"아하스가 그의 조상과 함께 잠드니, 그를 왕실 묘지에 장사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 안에 장사했다" <역대하 28:27>



히스기야 왕 : 25에 왕위에 올라 29년간 통치



"그는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 그는 산당을 헐어 버렸고, 돌기둥들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렸다. 그는 또한 모세가 만든 구리 뱀도 산산조각으로 깨뜨려 버렸다" -열하 18장 3~4절



히스기야는 선왕 아하스와는 180도 다른 행보를 보인다. 산당을 헐고, 돌기둥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리는 것은 그들 민족의 적폐 청산. 자신들의 신만 섬기는 것은 민족 자긍심을 되찾는 일이자, 그들의 역사 바로 세우기다. 선왕이 친앗시리아 정책을 보인 것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행보다. 



특히 역대하에 보면, 히스기야가 자신들의 민족 종교 재건 사업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노력했는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사업을 크게 벌려서 유월절을 국가기념일로 선포하고, 남유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 파발을 보낸다. "브엘세발에서 단까지".. 우리로 치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근데 남북 분열 상황에서, 게다가 전임 왕인 아하스 때에는 북이스라엘 공격에 초토화가 되고, 수많은 백성이 사마리아까지 포로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했던 걸 생각해보면, 히스기야의 행보는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다. 뭐, 북이스라엘이 우리는 한민족!!하면서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비웃고 조롱만 했지만..(역대하 30장) 하긴 뭐, 바로 얼마 전 북이스라엘이 아하스 치세의 남유다를 쳐바른 거 생각하면, 남유다의 행보가 가소롭긴 했을 듯. 



하여튼 히스기야의 종교를 기반으로 민족 교류와 민족 대통합의 시도는 거대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근데 이게 대제국 앗시리아의 비위를 거스른 듯하다. 히스기아 왕 제 14년에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침략해 온다. 



"우리가 잘못하였습니다. 철수만 해주시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앗시리아 왕은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은을 있는 대로 다 내주었다" -열하 18장 14절 15절



이렇게 비굴하게 굴면서 요구한 것을 다 내주었는데도 산헤립 왕은 병력을 보내서 유다를 치러 올라온다. 돈이 문제가 아닌 것.



"전쟁을 할 전술도 없고, 군사력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전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지금 누구를 믿고 나에게 반역하느냐? 그러니 너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 같은 이집트를 의지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믿고 붙드는 자는 손만 찔리게 될 것이다. 이집트의 바로 왕을 신뢰하는 자는 누구나 이와 같이 될 것이다. 너희는 또 나에게, 주 너희의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겠지마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이 제단 앞에서만 경배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산당과 제단들을 모두 헐어 버린 것이, 바로 너 히스기야가 아니냐!' -열하 18장 20~22절



앗시리아 왕은 히스기야의 행보가 불쾌했던 것이다. 일차적으로 다른 믿을 구석(이집트)를 찾고 있었고, 이차적으로는 산당과 제단을 허물어버림으로써 기존의 친앗시리아 정책에서 돌아섰음을 전시한 것이다. 산당과 제단을 모두 헐어버린 것은 단순한 우상 숭배 척결 작업이 아니다. 정책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행위다. 



이렇게 위기 상황에 몰린 아하시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사야 왈, 앗시리아 왕이 뜬 소문을 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며, 거기서 칼 맞아 죽을' 거 란다. 이게 가능?? 이빨 빠진 호랑이 이집트가 도와줬을리는 없고.. 뒤에 나오는 문장을 통해 상상해보면, 앗시리아 내부 권력 투쟁을 지렛대 삼았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전쟁 중에 자기 아들한테 살해 당했다고 했으니.. 선지자 집단은 이 정보를 입수해서 이용했을 가능성.. 뭐 그냥 상상이다.



"그 날 밤에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서, 앗시리아 군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쳐죽였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을 때에 그들은 모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그 곳을 떠나, 니느웨 도성으로 돌아가서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예배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다.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열하 19장 35절~37절



어찌어찌 위기는 넘기고, 히시기야가 병에 걸렸을 때의 일이다. 바빌로니아의 므로닥발라단 왕이 사절단을 보내 병문안을 하는데, 히스기야는 사절단에게 궁궐과 나라 안에 있는 금은 보화를 몽땅 구경시켜준다. 이 소식을 들은 이사야는 노발대발한다. 바빌론한테 모든 보물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며... 이사야는 그 사절단이 병문안을 핑계 삼아 염탐하러 온 스파이들이란 것을 안 것이다. 



이에 히스기야는 예언자님 말씀이 맞는 거 같네요.. 라며 시무룩.. 그러면서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전이 계속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열하 20장 19절)했다고 하니.. 바보짓에 무사안일 쩌는구만.. 민족 주체정 회복에 노력한 것은 그의 최대 치적이지만, 이런 부분을 보면, 히스기야도 뭐.. 성경 기록자들은 이방 종교 배격하는 왕은 그냥 좋은 왕이라고 시작부터 동그라미 치고, 이방 종교 수용하는 왕은 그냥 나쁜 왕이라고 시작부터 엑스 표 쳐놓는 듯. 그렇다고 히스기야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히스기야 정도면 아주 많이 괜찮은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