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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사사기 13장~16장 : 삼손 (Samson), 이미지 메이킹

by R.H. 2011. 2. 21.
머리카락에서 힘이 솟아나온다는 삼손이 데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머리카락이 잘리고 힘을 잃어버린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시금치에서 힘을 얻는다는 뽀빠이는 끼워맞출 영양학적 근거라도 있지.. 머리카락에서 힘이 솟는다고?? 참 황당해 보인다. 하지만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니다. 그의 출생부터 시작해보자.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성경에 나오는 여자들 상당수는 불임이다. 삼손 엄마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날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점지해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들을 평생 나실인으로 키우라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나실의  핵심 규약 중 하나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어렸을때부터 머리 깍아서 종교 교육 시키며 기르라는 것이다.

즉, 머리카락을 기른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는 의미고, 신의 선택을 받은 자이며, 
동시에 신에게 자신을 헌신하는 인물이라는 표식이다. 그의 긴 머리카락이 바로 이런 이미지의 집약이다. 
그래서 그의 긴 머리카락은 그에게 권위를 부여해준다. 

데 그의 실제 모습은 이런 이미지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오늘날 이미지 좋은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이 알고보면, 꽝인 경우인 것과 비슷하다. 부모한테 떼를 써서 블레셋 (Philistines, 팔레스타인) 여자와 결혼하려하질 않나, 결혼식 피로연에서 그 동네 청년들하고 한 판 붙질 않나, 그러고는 열받아서 여자 내팽개치고 집으로 와버리고.. 그 뒤 이야기는 더 가관이다.

시간이 좀 지난 뒤 그 여자네 집에 가서 데려오려고 한다. 이에 장인은 말한다. '우리딸 싫어서 그냥 가버리지 않았나? 그래서 다른데 시집보냈는데.. 둘째 딸이 더 이쁘니, 그 앨 데려가게.' 장인은 나름 삼손을 배려해준 것 같다. 

그런데 삼손은 길길이 날뛴다. 열받은 그는 여우 300마리를 잡아다 꼬리를 묶고, 횟불을 꼬리에 끼워서 들판에 여우를 풀어놓는다. 그 동네를 불질러 버린것이다. 이를 본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장인과 그의 딸을 죽여버린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삼손은 유다지파 구역의 한 동굴로 도피한다. 하지만 유다지파 사람들 손에 이끌려 블레셋인들 앞으로 끌려나온다. 그런데 거기서 당나귀 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들 다 쳐 죽인다. 확실히 삼손이 힘은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삼손의 에피소드는 힘 or 여자다. 결혼하려던 블레셋 여자, 가자에서 창녀랑 논 이야기, 데릴라한테 푹 빠진 이야기..

이처럼 삼손은 성격이 불같고, 앞뒤 분간을 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여자를 좋아했다. 요즘 말로 하면, 룸싸롱 출입이 너무 심한 사람이다. 태어나서부터  나실인, 즉 자신을 신에게 봉헌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기로 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20년이나 사사의 지위에 있었던 것은 그의 긴 머리카락, 즉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이었다는 이미지가 먹혀들어갔기 때문이다. 허나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실망은 점점 커졌을 것이다. 그에 대한 불만도 늘어만 갔을 것이다. 힘 좋다는 거 하나만으로 그의 수많은 경거망동들을 덮어주는데 한계점에 이르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데릴라의 꾀임에 넘어가 함정에 빠졌을 때, 그를 구하려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그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간다. 그의 수많은 실책들과 부족한 성격을 그나마 덮어주고 있던 마지막 이미지마저 날라가 버린 것이다. '성격이 좀 욱하긴 해도, 어렸을 때 부터 나실인으로 산 사람인데..,' 라며 그를 두둔해주던 마지막 지지자들까지도 등을 돌려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두 눈이 뽑히고, 적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P.S. 그의 최후가 이처럼 비극이기는 하지만, 비굴하지는 않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선택받는 자, 또 그렇게 길러진 자가 지녀야할 그 무엇은 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