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장 후반부는 이삭의 아들 제이콥(Jacob, 야곱)과 이서(Esau, 에서) 의 출생과 제이콥의 장자권 가로채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쌍둥이인데, 이서가 먼저 나왔고, 제이콥은 이서의 발목을 잡고 나왔다. 그래서 제이콥이라는 이름의 뜻은 "he grasps the heel." 이다. 또한 비유적으로 "deceive" (사기 치다, 속이다, 거짓말을 하다) 라는 의미도 된다. 이는 제이콥이 이서의 장자권과 축복권을 가로채는 모습을 빗댄 의미다.
제이콥의 장자권(birthright) 가로채기
들판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온 이서는 몹시 배가 고팠는데, 이때 마침 제이콥은 붉은 스튜를 만들고 있었다. 이를 본 이서는 그 음식을 요구했고, 제이콥은 음식과 이서의 장자권을 맞바꿀 것을 요구한다. 죽을 만큼 배가 고팠던 이서는 제이콥에게 장자권을 넘기고 붉은 스튜를 먹는다.
이서라는 이름의 뜻은 "털이 많다." 이다. 그런데 이서는 이돔(Edom) 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이돔의 뜻은 "붉다" 이다. 그의 별명이 이돔이라 불린 이유는 나중에 그가 물려받는 땅이 거칠고, 건조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듯하다. 이삭은 제콥에게 기름진 땅을 축복한 뒤, 이서에게는 거친 땅을 축복(?) 하는데서 나타난다. 이서가 물려받은 땅은 건조한 붉은 땅이었다.
"Your dwelling will be away from the earth's richness, away from the dew of heaven above."
<네가 사는 곳은 척박하고, 건조할 것이다>
위 에피소드에서 제이콥이 붉은 스튜를 먹었다는 것은 장자권을 내어주고, 붉은 땅을 차지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25장에는 이서가 죽을만큼 배가 고팠다("I am about die...What good is the birthright to me?") 는 표현이 나온다. 이들이 장성해서 각자의 가정을 이루어 독립된 경제 공동체를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당시 이서의 공동체는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에, 무형자산인 장자권을 포기하고, 유형자산인 붉은 땅을 소유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추측이다.)
제이콥의 축복 가로채기
나이들어 눈이 어두워진 이삭은 이서에게 들판에 나가 음식을 구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오면 이서에게 축복을 내리겠다고 한다. 이를 몰래 엿들은 이삭의 아내 레베카는 제이콥을 부추겨 눈먼 이삭을 속이고 이서의 축복을 가로채게 한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왜 레베카가 제이콥을 편애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창세기 26장 34~36절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이삭 일가는 가나안 지역에 거주했는데, 이 지역 주류민족은 히타이트였다. 그런데 레베카의 첫째 아들 이서는 그 지역 히타이트 여자들과 결혼한다. 그리고 이는 이삭과 레베카의 근심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창세기 27장 46절에서 레베카가 이삭에게 말하는데서도 알 수 있다.
"I'm disgusted with living because of these Hittite women."
(히타이트 여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 넌더리 납니다. 창세기 27장 46절)
고부간의 갈등이 극심했던 모양이다. 이를 통해 유추할 때 레베카가 친아들 이서를 경원시 한게 아니라, 며느리들이 미웠기에 제이콥이 축복 받도록 꾀를 부린 것 같다.
둘째인 제이콥이 장자권과 축복을 받는것에 대해
제이콥의 장자권 에피소드는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사기, 거짓말" 이다. 그런데 왜 이런 사기꾼 제이콥의 이야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전수 되었을까? 또 불의로 획득한 후계자 자리를 차지한 제이콥이 그들 민족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뭘까?
첫째, 혈통성 문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삭의 첫째 아들 이서는 이민족인 히타이트 여자들과 결혼했다. 한마디로 이서의 후손들은 혼혈이기에 유대민족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둘째,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성격에 대한 기술이다. 이서는 활을 가지고 사냥을 하는 자라고 했는데, 그는 매우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다. 위에서 붉은 스튜를 먹기 위해 장자권을 판 이야기는 이서의 성격이 급하고, 사려 깊지 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이런 성격의 사람은 보통 화끈하고 의리있어서 일상에서는 친구하면 즐겁다. 그러나 지도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모습이다.)
반면에 제이콥은 생각이 많고 사색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로 장막에서 지냈다고 한다. 또한 제이콥이 이서의 장자권과 축복권을 획득하는 모습은 그가 꾀가 많고, 영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모습이다. 지도자는 백성에게는 자비로울 지언정 외교에서는 제이콥처럼 꾀를 부려야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서와 제이콥의 상반된 성격과 부모의 편애 이야기는 창세기 초반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도 있다는 점이다. 카인은 활동적인 사람이었고, 아벨은 사색하는 사람이었으며, 신은 아벨을 편애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왕조에도 성격 화끈한 양녕대군이 사색하는 동생 충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기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文은 무武 보다 중요시된다. 성경을 보존, 전수한 자들이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들은 은연중에 "붓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셋째, "계급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차지하는 것이다." 는 논리가 은연중에 실려있다. 우리는 이서의 장자권과 축복권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첫째라는 이유에서 말이다. 사실 말이 첫째지 그들은 쌍둥이로 한날 한시에 태어났다. 이는 모든 인간은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등하게 태어 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서의 장자권을 당연시 하는가. 이서가 간발의 차로 먼저 나왔다는 것이 어찌 그의 상위 계급을 차지하는 타당한 이유란 말인가. 계급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노예근성의 생각이 얼마나 우리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성경은 단순히 종교적인 기록이 아니다. 수천년간 서양의 지식인들은 성경과 함께했다. 그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건 교육기관에서는 성경이 핵심 과목이었고, 특히나 중세 시대의 지식인이라는 말은 종교인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모든 지식인이 신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믿음의 인간들이었을까? 상당수는 지식에 접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경을 품어야 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된 오늘날도 "매직 스틱" 이 심의에 걸리거늘 서슬 퍼런 이단 심문관이 존재했던 봉건 질서의 중세 시대에 누가 감히 " 계급 타파" 를 입에 올렸겠는가. 어쩌면 그들은 진보적 사상을 에둘러 곳곳에 숨겨 놓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건 일종의 지식인의 본능이다. 자신들에게 별 이득이 되지 않는데도 이런 짓을 하는 것 말이다. 여하튼,
우리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 혹은 " 사람의 상하는 능력으로 좌지된다." 라고 말하면서도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타고난 계급 질서를 당연시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제이콥은 이서보다 생각이 깊고, 지혜로웠던 모양이다. 이후에 제이콥이 외삼촌 집에서 재산을 늘리는 모습을 볼 때 말이다. 그런데 왜 이삭은 능력이 뛰어난 제이콥이 아닌 이서에게 축복을 내리려 했을까?
우선은 이삭이 "눈이 멀었다" 라는 말을 비유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삭의 사리판단 능력이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냉철하게 생각할 때 제이콥을 후계자로 세우는 것이 그들의 공동체를 위해 합리적임에도 이서가 먼저 나왔다는 단순논리에 집착하는 이삭의 막힌 생각을 "눈이 먼" 것으로 비유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삭도 이서의 능력에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무조건 축복하지는 않고, 들판에 나가 음식을 가져오라는 숙제를 내준 것이다. 즉, 이서의 능력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제이콥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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