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결말까지 적어놓은 스포일러>
식당에 모여 앉아 음담패설을 늘어 놓으며 낄낄대는 녀석들의 수다로 영화는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마돈나의 "Like a virgin", 남자의 거대한 물건, 섹스 머신을 운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첩에서 "토비" 라는 여자의 전화번호를 찾고 있다. (그가 토비의 전화번호를 찾은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음담패설을 별 생각 없이 듣거나, 같이 웃고 있다.
식사를 마친 이 녀석들이 이제 식당을 나서려 한다. 밥 값은 두목인 죠가 낸다면서, 나머지 녀석들에게 각자 1불씩의 팁을 내라고 한다. 그런데 "핑크" 라는 놈이 그 1불을 내지 않겠다고 버틴다. 물론 그가 팁을 내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데는 그만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사회가 강요해서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녀석들이 한 마디씩 해대기 시작한다. 이 나라에서 교육받지 못한 여성(un-educated female) 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직업은 웨이트리스라느니, 이 여자들이 얼마나 뼈빠지게 일하는지 아느냐느니.. 관객인 우리 역시도 그 1불을 못 내겠다는 핑크라는 놈이 거슬린다. 쩨쩨하고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스크루지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함정이다.
다시 영화의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밝히는 여자, 중국 년, 일본 년(Jab) 등의 비속어를 내뱉던 녀석들이 웬 "교육받지 못한 여성" 운운? 관객인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시작의 음담패설 수다에 스스럼없이 동참한 우리는 1불 팁을 못 내겠다는 저 핑크란 놈을 쩨쩨하게 보고, 한심하게 본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사실 다른 녀석들과 우리가 한심한 것이다. 갑자기 웬 착한 척이란 말인가? 여기 모인 이 녀석들은 보석상을 털기 위해 모인 악당들이다!!
Mr. Blond 나쁜 놈, 그냥 나쁜 놈
"미스터 화이트" 말에 의하면 미스터 블론드" 는 사이코 패스에 완전 맛 간 미친 놈이다. 화이트가 말하길 블론드는 보석상에서 불필요한 미친 총질로 자신까지도 죽을 뻔 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이코패스 블론드는 미친 총질 뒤에 햄버거 가게에 들렀나 보다. 콜라를 빨대로 마시며 유유히 창고에 들어서는 미스터 블론드는 인질로 잡아 온 경찰의 귀를 잘라내고. 산 채로 불태워 죽이려 한다. 이유는 없다. 그는 이런 잔혹 행위를 즐기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역시 총 맞아 죽는다.
Mr. White 좋은 놈, 그러나 원래는 나쁜 놈
총에 맞은 "미스터 오륀지" 를 데리고 창고로 향하는 " 미스터 화이트" 그는 힘들어하는 오렌지를 격려하고, 위로한다. 창고에 들어서서는 그를 안아주고, 얼굴 닦아주고, 머리를 빗으로 넘겨준다. 오렌지는 자신을 병원 앞에 던져만 놓으면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단다. 그리고 절대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미스터 핑크" 역시 오렌지를 병원 앞에 데려다 놓고 오자고 한다. 그런데 화이트는 이에 반대한다.
식당에서 열심히 사는 웨이트리스를 옹호하고, 총 맞은 오렌지를 친아들처럼 보살핀 화이트. 그는 이 악당들 가운데 가장 동정심 많고, 온정적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된 것이다. 그는 오렌지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과 출신지를 말해 버렸다.
화이트 역시 악당이다. 원래는 나쁜 놈이다. 그런데 가끔가다 좋은 놈이 된다. 사실 우리의 모습과 제일 비슷하다. 어쩌다 한번씩 착한 우리.
Mr. Orange 좋은 놈 2, 그러나 "선" 은 쉽게 무너지고.
화이트와 도망치던 도중 차를 강탈하는 오렌지. 그런데 차 안의 여자가 그를 총으로 쏘자 그 역시 반사적으로 그 여자를 총으로 쏜다. 그리고 그는 당황한다. 왜? 그는 원래 악당이 아니라, 언더커버 경찰인 것이다.
그가 무엇 때문에 언더커버 일을 하는지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목숨을 담보로 한 일을 하는 경찰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그는 사회질서와 정의을 추구하는 인간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 목숨이 위협받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총을 쏜다. 차 안의 여자가 총을 빼어 든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였다.
경찰은 선량한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 그의 원래 일은 그 여자를 총으로 쏘는 것이 아니라, 보호 하는 일이다. 그런데 생존 본능 앞에서 윤리와 가치, 대의명분은 너무도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
Mr. Pink 이상한 놈, 합리주의자
1불 팁을 안 내겠다는 쩨쩨한 이 놈, 일이 틀어지자 그들 가운데 첩자가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놈이 바로 이 놈이다. 그는 앞뒤 정황을 논리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모든 것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몸에 벤 녀석의 장점이다.
그는 악당이지만,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가로 막아서 어쩔 수 없을 때만 총을 빼든다는 것이다. 그는 목적 의식이 뚜렷하다. 지금 여기 창고에 모인 녀석들의 목적은 다이아몬드다. 그렇다면 보석상에서 창고로 이들이 가져 온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보자.
보석상에서 블론드는 경찰을 인질로 챙겨왔다. 경찰을 데려와서 뭐하게? 이 녀석은 원래 이유 없이 행동하는 놈이다. 미스터 화이트는 부상당한 오렌지를 챙겨왔다. 이 아저씨는 원래 온정적이다. 그리고 핑크는 다이아몬드 가방을 챙겨왔다. 거리에서 목숨이 위협받고, 총질하면서 내달리는 상황에서도 그는 다이아몬드 가방을 챙겼다. 이 이상한 놈이 일처리 하나는 확실히 한다.
죽거나 상처받거나. 단 한 놈만 빼고.
영화의 마지막은 어이없는 난장판이다. 사실 이 역시도 화이트의 어설픈 온정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목인 죠는 오렌지가 첩자라는 걸 알아낸다. 그런데 화이트는 이를 믿지 않고, 오렌지를 보호하려 든다. 그리고 지들끼리 총을 난사해서 모두가 총맞아 쓰러진다. 그리고 이 틈을 타서 다이아몬드를 들고 튀는 핑크.
핑크는 창고를 빠져나가고, 총에 맞은 화이트는 오렌지를 부둥켜 안는다. 그런데 오렌지가 실토한다. 자신이 경찰 맞다고...괴로워하는 화이트, 그는 오렌지를 총으로 쏘고, 창고에 들이닥친 경찰이 그를 총으로 쏜 듯하다. (이 장면이 약간 헷갈려서 두어 번 다시 돌려 봤는데, 첫 총성이 울릴 때 화이트는 화면에서 움직임이 없었고, 두 번째 총성에서 화이트가 화면에서 쓰러지는 것 봤을 때, 첫 발사는 화이트가 했고, 두 번째 발사는 경찰이 한 것 같다.)
영화에서 가장 상처받은 인간은 화이트이다. 육체적으로는 총상을, 정신적으로는 배신의 상처를...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상처받지 않은 인간은 핑크이다. 창고 밖에서 경찰에 설령 붙들렸다고 하더라도, 그는 총상도 입지 않았고, 배신의 상처도 받지 않았다. 합리주의가 괜히 합리주의인 게 아니다. 그리고 제일 위험한 것은 어설픈 온정주의다.
'영화리뷰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 : 그리하여, 절벽 아래로 떨어지다 (0) | 2009.08.18 |
---|---|
데졸레이션 사운드 (Desolation Sound) : 6주간의 일탈 이야기 (0) | 2009.08.18 |
혈의 누 : 인간에의 절망... (8) | 2009.08.18 |
디파티드 (The Departed) : Rising or Falling (0) | 2009.08.18 |
인도차이나 (Indochine, 1992) : 제국주의와 자유 평등 이념, 그리고 베트남 (0) | 2009.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