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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사무엘하 9장-나는 관대하다

by R.H. 2016. 1. 27.




다윗은 뜬금없이 사울 집안에 남은 자가 있느냐면서 호의를 베풀고 싶어한다. 그래서 찾아낸 자가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다. 다윗은 그를 찾아내어 사울의 땅을 다 되돌려주고, 앞으로 다윗과 겸상을 허하는 어마어마한 은혜를 베푼다.



므비보셋 입장에서 이 상황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멸문지화 당한 자의 자손을 현재 권력이 찾아낸 것 자체가 공포와 전율이다. 다윗 앞에 나왔을 때 얼마 사시나무 떨들 바들바들 떨었을까.. 그런데 막상 다윗 앞에 나오니, 완전 자비로운 처사다. 이건 더 무섭다. 함정인가, 자신을 떠보는 것인가, 조롱하는 것인가..



므비보셋이 엎드려 말하였다. "이 종이 무엇이기에, 죽은 개와 같은 저를 돌보십니까?"<사무엘하 9장 8절>



스스로를 '죽은 개'라고 칭하는 비참한 자. 목숨을 구걸하는 것보다 더 치욕스럽고 모욕적인 자기비하.. 이런 그에게 다윗은 한업는 자비를 베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걸까?



다윗 입장에서 이 상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첫째로는 진짜로 호의를 좀 베풀고 싶은 마음이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인 것이다.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는 우정 그 이상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겉과 속이 다른 처신을 많이했던 다윗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요나단에 대해서만은 일관성 있게 진심으로 대했던 다윗이다. 두번째로는 선전 효과다. 자신의 관대함을 홍보하는 것이다. 이 장면을 아름답다 칭하는 자들이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보면, 홍보는 정말 제대로 한 셈이다. 셋째로는...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식탁에서 먹으니 예루살렘에 거하였다. 그는 절름발이였더라. <사무엘하 9장 13절>



므비보셋이 땅과 종을 하사받으면 뭐하는가. 그는 "예루살렘"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뒤에서 몰래 자기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절름발이였다. 



식사때마다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므비보셋. 자신의 거처에서 왕의 식탁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를 쳐다보는 수많은 눈길. 그 조롱과 경멸의 눈빛. 식탁에 앉은 므비보셋의 구부린 어깨, 내리깐 눈, 떨리는 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는 했을까.. 동물원의 원숭이보다도, 쇠사슬에 묶인 포로보다도 못한 처지. 그리고 이런 그를 바라보는 다윗의 얼굴이 떠오른다. 승자의 여유만만한 표정, 입가에 번지는 야릇한 미소, 교활한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