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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막심 고리키 단편 <이제르길 노파>

by R.H. 2018. 1. 6.





"그때까지 나는 힘들게 노예처럼, 더럽고 음란하고 가난한 여자들, 아니면 반은 죽은 듯이 그저 저속하게 배만 가득채우고 사는 여자들만 보아왔다...나는 이제르길 노파의 인생 역정이 분명 여자들 마음에 들 것이고 그들에게 자유와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가장 가까운 여자가 전혀 감동받지 못하고 그냥 잠들어 버린 것이다!" -막심 고리키, <첫사랑>



<이제르길 노파>는 개인적으로 읽은 막심 고리키 소설 중에 젤 별로였는데, 정작 고리키는 작정하고 야심 차게 썼나 보다. 고리키가 자전적 소설인 <첫사랑>에서 <이제르길 노파>를 언급한 걸 보니 말이다. 현실에서든 다른 소설에서든 고리키가 보아온 여성 캐릭터는 '음란하고 가난한 여자들' 즉 창녀거나, '저속하게 배만 가득채우고 사는 여자들' 즉, 중산층 이상의 속물 여성이었다. 두 유형의 여자 캐릭터들은 모두 수동적이고, 저속하며, 함부로 다뤄진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사랑을 적극적으로 행하면서 세상을 떠돌아다닌 진취적인 여성, 자기 주도적 삶을 산 여성, 그리고 나이들어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던 듯하다. 



그런데 <이제르길 노파> 읽으면서 이 할매 허언증인가 싶고... 이야기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이음새도 이상하고.. 고리키는 수동성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여성 캐릭터, 그리고 삶을 깨달은 멋진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자부했겠지만, 리플리증후군에 걸린 할매같았다는.. 



고리키는 '내가 이렇게 멋진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내 사랑하는 여인이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다니!!! 너무 자존심 상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라고 당황해하는데...<첫사랑>의 그녀가 <이제르길 노파>를 지루해하며 잠든 거 난 이해한다. 그래도 "여성을 인격체로 묘사하는데 서툴다" 면서 -자기가 서툰 거 알면 쓰질 말던가- 악착같이 비릿한 음부의 냄새, 젖무덤 타령하며 세미포르노 쓰는 김모씨같은 사람에 비하면, 시무룩해하는 고리키는 귀요미귀요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