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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막심 고리키 단편 <거짓말 하는 검은 방울새와 진실의 애호가 딱따구리>

by R.H. 2018. 1. 2.

 

 

 

 

"어느 작은 숲에서 생긴 일이다. 숲속에서 지저귀던 새들 중 한 마리가 갑자기 희망과 확신에 찬 노래를 불러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숲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는 절망과 우울, 패배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구원은 없다'는 패배주의에 물든 노래는 까마귀가 주도하는 것으로, 거기에는 나름 아름다운 구석도 있다. 절망을 이야기하는 노래 특유의 센치한 아름다움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희망의 노래, 승리의 노래, 일어섬과 전진의 노래가 숲에 울려퍼진다. 이 희망의 찬가를 노래하는 자 누구인가. 이 용감한 노래를 하는 새는 분명 아름다우리라, 위풍당당하리라.. 그 새를 찾아가자, 그에게 환호와 감사를 바치자. 그런데 이게 웬일. 새떼들이 몰려가서 보니, 그것은 숲에서 가장 작고 볼품없는 검은방울새다. 카리스마 넘치는 독수리나 매가 아니었어?? 새들은 당황하는데.. 

 

 

이들중 기자님이신 오색방울새, 그렇다. 검은방울새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방울새면서, 색깔 좀 들어갔다고 지가 잘난 줄 아는 오색방울새가 튀어나와 딴지를 건다. '이거 니가 부른 거 맞아? 증명해봐' 네. 기자님이 증명하시랍니다.. 검은방울새는 자신의 노래를 군중들 앞에서 다시 한번 힘차게 부른다. 맞습니다. 맞구요. 그러자 이번에는 검은방울새인 너한테 무슨 권리가 있냐고 따져 묻는다. 도대체 뭔 권리?? 아마도 '하필이면 왜 너냐' 는 심리가 깔려있나 보다. '너처럼 작고 별볼일 없는 새가 왜 우리를 대표해서 마이크를 집어 들었느냐. 너에게 우리를 대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짜증이 담긴 말이리라. 하지만 검은방울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 자유, 그리고 그 자유를 얻기 위해 벌어야하는 저항과 승리, 용기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이에 모든 새는 감명을 받는데..

 

 

그러자 이번에는 딱따구리가 튀어나와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하면서..  딴지를 건다. 그러면서 검은방울새더러 또 증명하랍니다. '이 숲을 벗어나면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증거가 어디있냐? 집 떠나면 고생이지. 이 숲 너머에는 머리가 벗겨질 듯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소름끼치는 겨울 들판뿐이다. 그 들판 너머에는 또 그런 들판뿐.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 아니, 새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다. 돌고 돌아 결국 이 숲으로 올 게 뻔하다. 결국에는 제자리 걸음 할 게 뻔하다. 싸워서 무슨 보상이 있는데??', 라면서, 대중을 현혹하는 검은방울새는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라고 주장한다. "근엄한 눈으로 청중들을 내려다보고" 일장훈계를 펼치며 회초리를 휘두른 꾀꼬리의 이 휘황찬란한 말에 사람들은 동조한다. 그리고 새들은 검은방울새를 떠나버린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난다...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여러분은 물론 검은방울새가 고결한 성품을 지녔지만 확고한 근거가 없어 그 주장이 빈약하고, 딱따구리는 분별력이 높지만 비굴하며, 듣고 있던 청중 새들은 그저 호기심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냉담한 가슴을 지닌, 수치스럽게 비루하고 허접스러운 자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그렇게 생각하시라, 그렇게 하여 위로가 된다면, 그렇게 생각하시라!..."

 

 

작가의 저 마지막 말은 쿨병 걸린 양비론자들에 대한 비웃음이다. 꿈과 희망, 저항과 승리?? 그래 말은 그럴싸하죠, 근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순진하시네요...혹은 딱따구리 말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네, 근데 좀 비굴한 듯. 혹은 대중들은 냄비야 냄비. 국민개쌔끼론이 진리지...라며 모두까기를 시전하면서 '이런 나는 참 차갑고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임' 이라고 자위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생각하셔요. 그래서 위로가 된다면 속편하게 그렇게 생각하시라구요' 라고 비웃음을 날려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