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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959>

by R.H. 2017. 12. 31.



로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40대 중반 남자다. 물질적으로 여유롭고,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에든 능수능란한 그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중년 남성이다. 사람들은 종종 가부장적 사고방식이라는 걸 고함지르고 꽥꽥대고 폭력적이라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다.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 챙기고, 자기 여자의 행복을 원하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모습도 많다. 정해진 위계질서가 주는 편안함도 있는 거고.. 여튼 로제가 바로 이런 긍정적인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다. 그런데 이게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악랄한 모습만 있다면, '이건 아니다, 참을 수 없다', 생각하고 뛰쳐나갈 수 있지만, 좋은 모습이 꽤 있으면, '세상에 좋기만 한 게 어디 있나'..라는 생각으로 되려 그냥 주저앉기 쉽다. 



로제는 이런 식, 즉 보수적이긴 하지만 따뜻한 가부장적 사고방식으로 폴르를 사랑한다. 그는 폴르의 행복을 원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폴르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그리고 폴르가 행복하다고 하면 안도한다. 하지만 이것은 폴르와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관심에도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행복을 수혜하는 자신의 우월적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제 자신이 수여하는 행복이 만족스럽냐고 묻는 것이다. 로제는 능력 있고 자상한 남자지만, 그 자상함 속에는 분명 불쾌한 압박이 있다. 소프트하게 누르는 그 무엇인가가 있고, 그래서 폴르는 분명하게 그 불편함을 설명할 수가 없다. 



"아니다. 그녀는 자기가 지쳐 버렸고 그들 사이에 법률처럼 자리잡고 있는 이 자유,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혼자뿐인 이 자유, 그녀에게는 다만 고독감만을 자아내는 이 자유를 더이상 견딜 수 없노라고 로제에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폴르는 39세의 성공한 여성 사업가로, 지적이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자다. 폴르는 로제와 오랫동안 교제해왔고,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그가 주는 안정감을 편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불쾌하다. 또한 로제가 젊은 여자들을 따로 만나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로제의 바람기는 육체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다. 폴르만의 착각이나 합리화는 아니다. 로제는 실제로 어린 여자들과 자주 얽히면서도 그런 여자들의 천박함에 대해 비웃으니까.. 장녹수와 놀아나면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윤씨가 보고 싶다.. 라고 하는 연산군의 따뜻한 버전이라고나 할까..여튼,



"그리고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당신을 나는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그대로 지나가게 하고, 행복해지는 의무를 소홀히 한,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당신을 나는 고발합니다. 당신은 사형에 처하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이때 나타나는 25세의 젊은 인턴 변호사 시몽. 그는 부잣집 아들로 젊고 매력적이지만, 천성이 게으르다. 진취적이지도 않고,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나갈 의지도 생각도 없다. 직업만 변호사일 뿐이지, 그의 사고방식은 예술가적이다. 사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사강의 등단작 <슬픔이여 안녕>의 등장 인물과 똑같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남성 로제는 <슬픔이여..>에 나오는 쎄실의 아버지, 폴르는 안느, 시몽은 쎄실과 판박이다. 19세 소녀 쎄실을 25세 청년 시몽으로 바꾼 것 빼고는 같은 성격의 인물들이다. 심지어 로제의 정부(情婦) 역시 <슬픔이여..>에서 쎄실의 아버지가 만나는 젊고 아름답지만, 싸구려인 여자와 똑같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 뒤에서 거대한 탄식이, '이미' 라는 거대한 합창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여튼 폴르는 이 젊은 남자 시몽의 적극적인 구애에 응한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길게 지속되지 못한다. 짧은 동거를 뒤로하고 폴르는 다시 로제에게로 돌아간다. 로제로 대변되는 구질서, 보수적인 가부장적 질서로 회귀한 것이다. 짐을 싸서 나가는 시몽의 등 뒤에서 자신은 늙었다고 말하는 폴르의 모습은 이전에 시몽이 장난스럽게 일갈한 '핑계와 편법과 체념' 으로 사는 사람의 모습이다. 폴르는 자신은 새로운 생각들에 적응하기에는 늙었다고, '이미' 늦었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이런 폴르의 자조적인 포기의 말을 시몽은 들었을까.. 못 들었을까.. 그는 그저 떠난다.  



<슬픔이여 안녕> 에서 쎄실이 작가의 분신이었듯,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시몽은 작가인 사강의 분신이다. <슬픔이여..>의 쎄실은 안느를 사랑한다. 그녀의 아름다움, 지성, 단호함.. 그럼에도 안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것은 쎄실로 대변되는 작가의 의지였다. 안느나 폴르는 모두 지적이고 아름다우며 자기 영역에서 성공을 이뤄낸 여자들이다. 하지만 구질서와 완전히 등지지도 않은 여자들이다. <슬픔이여..>에서 쎄실은 가부장적 구질서에 안주하여 편히 사는 여자들을 경멸했다. 아버지의 젊은 애인을 매춘부 취급하는 것은 그렇다쳐도, 이웃한 중산층 가정의 전업주부 역시 매춘부 취급한다. 아니, 매춘부보다 더 나쁘다며 악담을 퍼붓는다. 구질서 속에서 ,하드한 방식으로든 소프트한 방식으로든, 핍박받으면서도 그것을 견뎌내고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키워낸 것을 훈장으로 삼고 있는 여성을 아버지의 천박한 애인보다 더 증오한다. 



그런데 안느는 그런 여자들과 다르다. 독립적이고 진취적이며,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이뤄낸, 이른바 신여성이었다. '그럼에도' 안느는 쎄실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결혼하려 한다. 즉, 구질서에 편입되고자 한다. 안느와 폴르는 모두 가부장적 구질서와 신질서 사이에 있는 하이브리드형 여성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쎄실은 안느를 사랑하면서도 안느를 미워한다. 안느의 독립성과 지성, 아름다움에 매혹당하지만, 구질서에 안주하려는 안느의 사고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쎄실은 안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데 간접적으로 일조한다. 이것은 작가의 자기 선언이었다. 자신은 구질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브람스를..>에서는 소녀 쎄실이 청년 시몽으로 겉옷을 바꿔입고 등장한다. 여기서는 성별을 바꾸어서인지 적극적으로 중년 여성 폴르를 사랑하고 유혹하고 동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폴르는 떠난다. 이건 마치 작가가 폴르로 대변되는 중간 지대의 여성을 설득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에는 설득할 수 없다는 한숨처럼 들린다. 그렇게 폴르는 안정감이라는 가시 울타리로 둘러싸인 고독 속으로 제 발로 돌아간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소설 제목은 참 서정적이다. 소설 내용 역시 잔잔하다. 삼각 관계인데 격렬한 치정극은 전혀 없다. 세명의 주요 인물 모두 조용하고 세련되게 자기 감정을 드러낼 뿐,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 하나 없다. 그 흔한 악다구니 하나, 고함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다. 줄거리랄 것도 없다. 로제와의 관계에서 답답해하던 폴르가 젊은 남성을 잠깐 만났다가 다시 이전 남자에게 돌아가는, 어찌 보면 중년 여성의 잠시 잠깐의 일탈을 간략하게 그린 뻔한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거칠다. 급진적이다. 마치 잔잔한 호수 속에서 들끓는 활화산과도 같다. 작가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