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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막심 고리키 단편 <첼카시>

by R.H. 2018. 1. 7.





"항구 사람들에게 아주 잘 알려진 노련한 늑대이자 지독한 술주정뱅이에다 솜씨가 훌륭한 대담한 도둑"인 첼카시는 부스스한 머리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더러운 부랑자 꼴로 되는 대로 살아가는 놈이다. 오늘도 그는 한탕 하려고 항구 주위를 어슬렁거려 본다. 종종 그의 일을 보조해 주던 놈을 찾아보는데, 보이질 않네.. 넉살 좋게 세관 병사에게 접근하여 그놈 근황을 알아보니, 쇳덩이에 다리에 짓이겨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단다. 젠장. 



주위를 다시 둘러본다. 같이 한 탕 뛸 놈을 찾아야겠는데.. 옳커니. 저기 멍 때리며 부둣가에 앉아있는 "어린애 같은 맑은 눈빛을 한 건강하고 순진한 젊은이" 즉, 꼬붕삼기 딱 좋은 촌뜨기 한 놈이 보이는구나. 은근슬쩍 접근해서 말 붙여보니, 역시나 신체 건강한 얼뜨기다. 시골에서 상경해서 돈 좀 벌어보려 막노동으로 고생하다, 에이, 그냥 고향으로 갈란다..하시는 중이라고.



"이 건강한 시골 젊은이가 왠지 그의 마음 속을 헤집어 놓았다. 마음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뭔지 모를 분노의 감정이 서서히 꿈틀거려....돌아갈 고향집이 있고, 집이 있고, 데릴사위로 갈 만한 부잣집도 있다는 사실이, 다시 말해 그의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 등등 그 모든 것이,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 새파랗게 어린 놈이 그 가치와 의미도 모르면서 자유를 사랑합네 어쩌네 하고 감히 입을 놀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증오심을 더욱 부추겼다."



근데 그 젊은 놈의 말을 듣다 보니 은근히 불쾌하다. 아무리 없이 산다, 없이 산다 하지만, 돌아갈 고향이 있고, 거기에는 집이 있고, 땅이 있다. 이번 생은 망했어요...라며 푸념하는 그 젊은 놈의 말이 첼카시 귀에는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니가 삶을 알아? 운명을 알아? 진짜 망한 인생이 뭔지 알아? 뭐, 됐고. 이 촌뜨기 데려다가 오늘 밤 한탕 하는데 부려먹자. 첼카시는 촌놈에게 오늘 밤 일일 노동을 제안한다. 촌놈이 묻는다. 무슨 일인데요?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인데요? 첼카시는 자신은 어부라며 낚시 일이라고 대충 얼버무린다. 뭐, 따지고 보면 쌩거짓말도 아니다. 얼뜨기 하나 낚았잖아. 물건을 낚는 거잖아. 건수를 낚는 거잖아. 첼카시가 2018년을 살아간다면 피싱 사기를 치겠지. 여튼,



밤이 되자 첼카시는 촌놈을 데리고 배를 탄다. 노를 저어라, 이놈아. 노를 저어!! 근데 수상하다. 분위기가 영 이상하다. 컴컴한 바다에서 불빛이 보이자, 첼카시가 낮은 소리로 외친다. 엎드렸!! 조용히 해!! 촌놈 드디어 눈치깠다. 이건 불법적인 일, 위험한 일, 까딱하다간 감옥에 갈 일. 아이고 이 일을 어쩌면 좋단말인가...



"저기요, 절 보내주세요!...아이고, 아이고!...내가 완전히 어떻게 이런 데에...전 이런 일 못해요!.. 하느님, 맙소사! 난 망했어!..."



울며불며, 좌불안석에, 나 집에 갈래, 찡얼찡얼.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거 어떡하나. 부들부들 떨면서 노를 저을 수밖에.. 이 상황이 어서 끝났으면..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무사히 돌아가기만 했으면.. 그렇게만 되면, 아침 일찍 교회로 달려가 감사 기도를 드리리라.. 여튼 여차저차해서 일이 다 끝나고, 540루블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첼카시는 촌놈에게 40루블을 건네고는 '우리 이젠 안녕!' 하는데...촌놈이 이상하다. 우물쭈물 머뭇머뭇.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그러다 갑자기 첼카시 앞에 엎어지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아저씨!...그 돈을 제발 제게 주시면 안 돼요 제발, 부탁이에요. 아저씨에겐 별 거 아니잖아요. 아저씨에겐 그저 하룻밤이면, 그냥 단 하룻밤이면...하지만 저는 일 년을 벌어도 안 돼. 제발요,...오, 제발 제게 돈을 주세요!"



바로 몇 시간 전만해도 돈이고 지랄이고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던 그 순진한 청년은 돈을 더 달라며 비굴하게 첼카시 앞에 엎드렸다. 첼카시는 이런 그를 연민과 증오로 바라본다. 첼카시는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약속한 사례비를 받으면서도 쭈뼛쭈뼛하던 그 순진한 청년이 정작 돈을 보는 순간, 돈을 직접 만지는 순간, 돌변할 것임을... 그래서 첼카시는 그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듯이, 뭔가를 꾸미고 있는 듯이.. 그러면서 일부러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폐를 만지며 바스락 소리를" 냈던 것이다.  



첼카시는 애원하는 촌놈에게 옜다 먹고 떨어져라, 하며 지폐 몇장을 더 준다. 그러자 촌놈은 기분이 째진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이미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서일까.. 아니면, 방금전 첼카시 앞에 엎드려 애걸하던 자기 모습이 떠올라 자존심을 챙기고 싶어져서일까... 촌놈은 안 해도 될 소리를 한다.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우리가 여기 오는 중에... 노로 저자를, 아저씨를요, 그냥 한 대 확 갈기고...돈을 뺏고...바닷속에...누가 찾아다니기나 하겠어? 찾는다 해도 누가 왜 그랬는지 무슨 상관이겠어?...세상에 쓸모없잖아! 누가 저런 놈 때문에 걱정하겠어?"



나, 너 죽여버릴라고 했어. 너 세상 쓸모없는 놈이잖아....이에 첼카시는 촌놈의 멱살을 잡고 돈 도로 내놓으라고 고함을 지르고, 이 둘은 뒤엉켜 엎치락 덮치락하게 된다. 순식간이다. 촌놈은 돌멩이로 첼카시의 머리통을 내리찍는다. 첼시카가 쓰러진다. 피가 흐른다. 사지가 경련을 일으킨다...촌놈은 놀라 도망간다.



그런데 촌놈은 얼만 되지 않아, 되돌아온다. 아저씨 괜찮아요? 괜찮나구요...용서해주세요...다행이다. 첼카시는 살아있다. 일어선 첼카시는 돈은 가져갔냐고 묻는다. 그러자 촌놈은 안 가져갔단다. 그러자 첼카시는 무심하게 가슴팍에서 돈뭉치를 꺼내 지폐 한 장만 빼서 자기 주머니에 넣고는 돈뭉치 전부를 촌놈에게 준다....첼카시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끝나리라는 것을.. 



순진하기도 하고, 돈에 눈이 뒤집히기도 하고, 욱하는 순간 사람을 쳐 죽일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인간이란 이렇게 복잡하다. 그래서 첼카시는 보통의 인간을 대표하는 그 촌놈을 바라보며 증오하면서도 연민하였던 것이다. 순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에 있을 때, 사람은 순진할 수 있고, 욕망이 들끓는 상황에 있을 때, 사람은 욕망하는 것이다... 그 뿐이다..



"바다는 포효하고 거대한 파도는 백사장을 덮치며 포말로 부서지고 물보라를 일으켰다. 폭우는 쉼 없이 바다와 대지를 때리고...바람은 울부짖었다...세상은 온통 울부짖음과 아우성, 굉음으로 가득찼다. 이제 바다도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