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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75

식스틴 블럭 (16 Blocks, 2006) : 모든 것을 바꿀 바로 이 순간 반쯤 감긴 눈꺼풀, 지친 어깨, 무거운 발걸음. 잭 모리스(브루스 윌리스) 는 피곤하다. 지난 밤 야근이 피곤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피곤하다. 경찰인 그는 만사가 귀찮다. 어쩌면 자기 자신이 귀찮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 일에 열의 따윈 눈곱만큼도 없다. 주변 사람들 역시 이런 그를 잉여 인력 취급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 8시. 그는 법정에 증인으로 서는 에디를 오전 10시까지 호송하는 임무를 맡는다. 거리는 고작 16블락 떨어진 법원. 넉넉잡고 두어 시간이면 끝날 간단한 업무. 그러나 이 짧은 거리, 짧은 시간은 잭 모리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에디가 법정에서 증언하려는 것은 경찰 비리와 공권력 남용에 대한 것이다. 이와 관련된 비리 경찰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에디를 .. 2009. 9. 13.
렛미인 (Lat Den Ratte Komma In, 2008) : 결코 끝나지 않을 외로움 흑과 백 어두운 밤하늘, 새하얀 눈이 내린다. 그리고 눈처럼 새하얀 소년 오스칼이 어둠 속에서 단도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눈처럼 빛나는 미소년 오스칼, 그러나 그의 마음은 밤하늘처럼 어둡기 그지없다. 오스칼이 수집하는 엽기적인 살인사건과 흉기 사진이 실린 기사 스크랩은 새까맣게 멍든 그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단서다. 오스칼의 하얀 얼굴과 달리 그의 마음이 이처럼 어두침침한 것은 학교 불량배들 때문이다. 학교에서 급우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오스칼에게는 친구 한 명 없다. 그의 가정 역시 불안 불안하다.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직장생활로 바쁘며, 아버지 집에서는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로운 소년이다. 이런 그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는 소녀 이엘리. 그녀는 며칠 전 .. 2009. 8. 18.
스노우 워커 (The Snow Walker, 2005) : 담대히 걸으라, 형제여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건방지고 자만심 가득한 백인 비행사 찰리는 북극해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에스키모인들에게서 아픈 소녀를 병원에 데려다 줄 것을 부탁받고, 비행하던 중 사고로 추락한다. 그리고 허허벌판에서 생존하는 과정에서 에스키모 소녀 카날라와 교감을 통해 정신적 성장을 이룬다는 이야기. 찰리의 깡통 음식과 설탕물 음료. 이것들이 문화적 우월감에 차 있는 찰리의 우월한(?) 물건들이다.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먹는 에스키모인을 경멸하는 찰리, 그러나 그가 먹는 스팸과 콜라, 초콜릿이야 말로 경멸스러운 정크 푸드다. 또한, 초콜릿을 선심 쓰듯 건네는 그의 태도는 전형적인 북미인의 오만방자함이다. “네가 퇴원하면, 스테이크 식당에 데려갈게." 라는 찰리의 소박하고 따뜻한 소망.. 2009. 8. 18.
뱀파이어의 키스 (Vampire's Kiss, 1989) : 고독한 현대인 제목 : 낚였어요. 뱀파이어라는 단어를 보고 이 영화가 전형적인 뱀파이어 공포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키스라는 단어를 보고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그것도 오산이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블랙 코미디? 그보다는 작가주의 독립영화 같은 느낌이다. 한마디로, 제목을 보고 이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면, 확실히 낚인 것이다. 게다가,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인 것을 보고, 그간 흥행에 성공한 그의 영화 분위기를 생각했다면, 정말 제대로 낚인 것이다. 주제 : 현대인의 고독 영화의 오프닝에서 보이는 무미건조하고 각박해 보이는 회색 빛 도시의 모습은 도시라는 섬에 고립된 주인공의 고독과 소외를 나타낸다. “도시 속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다. 주인공 "풀"은 이 도시에 있는 거대한.. 2009. 8. 18.
마이클 클레이튼 (2007) : We're summoned 영화는 흥분한 미치광이같은 자의 격앙된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사무실을 가득 메운 변호사들과 화장실 구석에서 진땀 흘리는 한 여자. 같은 시각, 마이클 클레이튼은 도박을 하고 있다. 밤새 도박을 한 마이클은 뺑소니 사고를 낸 거물 고객의 억지 소리를 새벽 내내 들어준 뒤, 한적한 도로 위를 내달린다. 그리고 그는 멈춘다. 그는 왜 거기서 차를 멈추었을까. 왜 말들에게로 다가 갔을까. 그런데 이때 그의 차가 폭발한다. 이제 영화는 4일전으로 돌아가, 흩어진 이야기를 재배열하기 시작한다. 마이클은 전직 검사고, 현재 대형 로펌 변호사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하는 일은 거물 고객의 뒤치닥거리나 하며, 뺑소니 친 놈의 적반하장 억지소리를 참고 들어주는 것이다. 그는 자조적인 말투로 자신을 일컬어 Janitor.. 2009. 8. 18.
웨이킹 더 데드 (Waking the Dead) : 죽었으되 죽지 아니하였도다. 영화는 1972~1974년 필딩과 사라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1982~1983년 필딩의 상원의원 출마라는 두 시점을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필딩(Fielding) : 현실과의 타협은 불가피하다. 1972년 베트남전이 한창인 때, 주인공 필딩은 해안 경비대원이다. 그가 해안 경비대에 있는 건 징집을 피하기 위해서다. 필딩은 베트남 전쟁이 부당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병역 거부로 감옥에 가고 싶지도 않고, 거리에 뛰쳐나가 피켓을 들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일종의 현실과의 타협. 하지만 그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 The thing about Harvard, for somebody from the working class, like, us, coming from that background.. 2009. 8. 18.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 : 그리하여, 절벽 아래로 떨어지다 델마(지나 데이비스) 와 루이스(수잔 서랜든) 는 피해자다. 델마는 성폭행을 당할 뻔 했고, 루이스의 살인은 분명 정당방위였다. 또한, 좀도둑 제비(브래드 피트) 에게 당하지 않았다면, 델마가 편의점에서 강도 짓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녀들은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피해자인데, 법 앞에서 그녀들은 범죄자다. 세상은 그녀들의 손을 잡아줘야 하는데, 되려 세상은 그녀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주차장 강간미수 사건 직후, 그녀들이 자수를 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정당방위로 받아들여졌을까? 루이스의 말대로, 델마가 그 놈과 껴안고 춤추는 걸 수십 명이 보았다. 그녀들이 자수했다면, 그녀들은 수사와 판결이라는 지리한 시간 속에서 또 한 번 발가벗겨지고, 또 다른 형태의 치욕과 굴욕을 견뎌야 했을 것.. 2009. 8. 18.
데졸레이션 사운드 (Desolation Sound) : 6주간의 일탈 이야기 쳇바퀴 돌리는 쥐 : 복선 영화는 로렐의 딸이 쳇바퀴 돌리는 쥐를 철창 안에서 놓아주며 시작한다. 쳇바퀴 돌리는 쥐는 바로 주인공 로렐의 삶이다. 그녀는 쳇바퀴 돌리는 쥐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답답하다. 평온한 마을, 그리고 평온해 보이는 그녀의 삶. 하지만 평온하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듯, 그녀의 삶은 어딘가 모르게 짜증스럽고, 어수선하다. 사실 그녀의 딸은 몽유병을 앓고 있고, 손버릇도 나쁘다. 게다가 로렐은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남편에게 상당히 불만이 있는 듯 하다. 로렐은 이 "데졸레이션 사운드"라는 동네로 이사 온 것도 불만인 모양이다. 이유가 뭔지는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남편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이곳으로 온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다음날 아침. 이 쥐.. 2009. 8. 18.
저수지의 개들 (Reservoir Dogs, 1992) : 어설픈 온정주의 식당에 모여 앉아 음담패설을 늘어 놓으며 낄낄대는 녀석들의 수다로 영화는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마돈나의 "Like a virgin", 남자의 거대한 물건, 섹스 머신을 운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첩에서 "토비" 라는 여자의 전화번호를 찾고 있다. (그가 토비의 전화번호를 찾은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음담패설을 별 생각 없이 듣거나, 같이 웃고 있다. 식사를 마친 이 녀석들이 이제 식당을 나서려 한다. 밥 값은 두목인 죠가 낸다면서, 나머지 녀석들에게 각자 1불씩의 팁을 내라고 한다. 그런데 "핑크" 라는 놈이 그 1불을 내지 않겠다고 버틴다. 물론 그가 팁을 내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데는 그만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사회가 강요해서 내.. 2009. 8. 18.
혈의 누 : 인간에의 절망... 이원규 : 합리주의 엘리트 차사를 보좌하며 섬에 들어오는 이원규. 그가 처음 등장할 때 들고 있는 물건은 망원경이고, 살인사건 현장에서는 안경을 꺼내 든다. 이 물건들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망원경은 멀리 내다보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고, 안경은 사물을 명확히 들여다보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다. 그는 멀리보고, 명확히 보고자 하는 논리형 인간인 것이다. 이원규는 절제된 몸가짐과 예를 지니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차갑다. 그가 섬주민을 대해는 태도는 온정적인 듯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거만하고, 냉정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이 기묘한 느낌의 거만한 온정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의 아버지가 낸 수수께끼를 풀며 오가는 대화 속에 답이 있다. 흉년에 소작농에게서 쌀을 거두지 않는 이유는.. 2009. 8. 18.